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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죽음과 나의 거리? 고작 1㎜

중앙일보 2018.03.10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의식의 강

의식의 강

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메멘토 모리’ 왜 중요한가
말기암 뇌신경학자·작가의 고백
죽음은 인간에 남은 유일한 문제

연명치료는 과연 필요한가
무에서 와서 무로 끝나는 세상사
추한 모습으로 이별 고할 수 있나

내세를 믿을 이유가 있나
삶은 경이로운 현재진행형 모험
천당행·지옥행 칸막이 부질없어

양병찬 옮김, 알마
 
죽을 때 추억하는 것
코리 테일러 지음
김희주 옮김, 스토리유
 
이 두 사람은 요절(夭折) 남녀는 아니다. 미국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는 82세에, 호주 작가 코리 테일러는 61세에 죽었다. 살 만큼 살았다고 볼 수도 있고, 100세 장수 시대에 좀 이른 죽음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색스는 전이암(轉移癌)으로, 테일러는 피부암으로 투병했는데 둘 다 저술가였던 만큼 말기 환자로서 다가오는 사신(死神)을 바라보며 최후의 순간까지 글을 썼다. 색스의 『의식의 강(The River of Consciousness)』, 테일러의 『죽을 때 추억하는 것: 어느 소설가가 쓴 삶을 되돌아보는 마지막 기록(Dying: A Memoir)』은 각기 세상에 남긴 마지막 책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이 인간의 유일한 문제임을 역설한다.
 
죽을 때 추억하는 것

죽을 때 추억하는 것

“이 모든 일이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다루는 공통 의식과 공통 언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좋든 싫든 관습에 따라 임시변통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죽을 때 추억하는 것』 39쪽)
 
테일러는 “우리는 죽음을 한곳에 치워 두고, 삶에서 지워 버리려 했고, 감추려고 애썼다”며 홀로 이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 한없이 외로워질 누군가를 위해 이 책을 쓴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그리고 견딜 만한 죽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려주려.
 
그녀는 한 TV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질문에 답한다. ‘죽음 앞의 삶에 관한 12가지 생각’이다. 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는 갈망보다는 한 일에 대한 기억이 소중하기에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는 없다, 호주 법률이 조력사(助力死)를 인정한다면 친구와 가족을 초대해 웃으며 이별주를 마신 뒤 인사하고 안락사 약을 삼키겠다, 천당행과 지옥행으로 그들과 우리를 분리하는 종교에 귀의하지 않겠다, 죽는 게 무섭지만 더 두려운 건 불필요한 연명 치료에 말려들어 추하게 죽는 거다, 무(無)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기에 내세는 믿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의 실패와 어두운 가족사를 적나라하게 돌아보는 글을 읽다 보면 책의 표지를 장식한 의자 덕인지 이정록 시인의 ‘의자’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강운구 사진작가가 1984년 찍은 ‘경주 노동동 고분군(古墳群)’. 그는 ’시간과 겨루기에서 슬프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강운구 사진작가가 1984년 찍은 ‘경주 노동동 고분군(古墳群)’. 그는 ’시간과 겨루기에서 슬프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색스는 인간의 진화와 창의력을 긍정했던 유쾌한 인본주의자다. 국내 번역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고맙습니다』에서 빛나는 호기심과 재기 넘치는 글솜씨는 그의 저서에 ‘따듯한 의학’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자신이 겪은 체험을 바탕에 깔고 찰스 다윈·지그문트 프로이트·윌리엄 제임스 등 그가 독창적이라 여긴 과학 영웅들과 대화를 나누듯 펼쳐가는 에세이는 다음 구절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때때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저절로 체계가 잡히고, 즉석에서 단어들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나의 성격과 신경증을 상당 부분 우회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 상태의 나는 내가 아닌 동시에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며, 최상의 부분임에 틀림없다.” (161~162쪽)
 
인간의 불가사의한 행동을 이해하는 일을 평생 즐겼던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에 이 책의 출판을 준비하고, 제목을 『의식의 강』이라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한다.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 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삶은 경이로운 ‘현재진행형 모험’이고, 인간의식에는 ‘나만의 개성과 정체성이 가미되어’ 있으니, 태어나자마자 죽음으로 흘러가는 전 생애를 굽이굽이 그대로 살아나가자고 그는 손을 내민다.
 
불어오는 죽음의 바람을 피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잘 죽는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공부이고, 죽음과 정직하게 직면하는 법이 삶의 기술이 아닐까 가리킨다. 죽음으로부터 불과 1mm 떨어져 있는데도 알지 못하고 사는 우리에게 그들이 하고 싶었던 한마디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가 아닐는지.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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