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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시각각] 안희정 낙마와 민주당 위기의 본질

중앙일보 2018.03.09 01:23 종합 34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지난해 5·9 대선 직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당선 기념행사에서 안희정은 옆에 선 문 대통령을 갑자기 껴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 국내 언론은 물론 주요 외신 1면을 뒤덮은 ‘사건’이었다. 안희정은 “오늘부터 (문 대통령과) 사귄 지 1일”이라며 자신과 문 대통령을 입맞춤하는 연인으로 그린 그림을 페이스북 계정에 올리기도 했다.
 

친문 독주로 청와대 거수기 전락 가속화
비문 키워주고 대통령에 직언하는 용기를

시간이 흐른 뒤 안희정은 사석에서 “왜 그랬냐”는 질문을 받자 “(문 대통령이) 두려웠다”고 했다고 한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내내 문재인 후보와 죽자 사자 싸우면서 감정의 골이 커졌고, 문팬들의 문자폭탄에 맹폭당해 “질린다”는 비명을 질렀던 안희정이다. 그런 마당에 문 대통령이 대권을 잡았으니 두려움이 커졌을 것이다. 대통령이 된 문재인과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 ‘오버’한 이유일지 모른다.
 
그 뒤 안희정의 행보를 봐도 친문의 견제를 받은 징후가 적지 않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안희정이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문 대통령의 지원을 얻기 위해 청와대에 독대를 신청했지만 답이 없자 뜻을 접었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안희정이 대표가 되면 2년 뒤 총선 공천을 좌지우지하게 돼 청와대 힘이 확 빠질 터이니 친문들이 막았을 것”이란 설이다. 안희정은 6·13 송파을 재·보선 출마도 고려했지만 역시 친문의 견제로 여의치 않았다는 소문도 나온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안희정을 지난해 가을 만났는데 ‘지사도, 재·보선도, 대표도 다 접고 공부를 하겠다’며 문 대통령이 자신을 해외 특사로 보내주길 바라더라”고 했다. 이 꿈도 무산됐다. 민주당 대선 경선 준우승자요 차기 대권 주자 1순위인 그가 6월 지사 임기가 끝나면 ‘무직자’가 될 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행 추문이 터진 것이다. 안희정은 정치인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재기가 불가능하다시피 한 처지가 됐다.
 
그의 수치스러운 낙마는 지방선거를 앞둔 민주당에 큰 악재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비문의 급속한 위축과 친문, 그것도 청와대 친문들의 독주 가속화다. 당장 안희정계 의원들이 친문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안희정을 지지해 온 중도·온건 보수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이탈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희정은 지난해 12월 6일 서울에 올라와 “이승만·박정희의 긍정적 요소만 기록하자. 이제 정파적 싸움은 극복해야 한다”며 정부에 날을 세웠다. 친문들은 귀가 거슬렸겠지만 적폐청산 공정에 피로감을 느껴 온 중도·보수 유권자들에겐 사이다 발언이었다. 여당은 이래야 한다. 정부를 밀어주되 잘못된 정책엔 제동을 걸고 반대파에 손을 내밀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10개월 동안 새누리당 뺨치게 청와대 거수기 노릇만 했다. 야당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불러 따지려 하면 결사적으로 막고, 대통령 칭송에만 올인했다. ‘임비어천가’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당 대표는 공석이 된 지역위원장 인선조차 친문들 압박에 눌려 힘을 쓰지 못했다. 김진표·송영길 등 차기 대표 주자들도 “청와대가 나를 민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이런 마당에 친문들의 독주가 심화되면 민주당은 외연을 확장하고 잠룡을 키우는 대신 대통령 국정이나 보좌하는 관리조직으로 전락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래서 망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꽁무니만 쫓았고 유승민 같은 당내 야당은 찍어내기 급급하다 민심의 버림을 받고 당정이 공멸했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계파를 가리지 말고 인재를 키워 스펙트럼을 넓히고 청와대에 할 말은 하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 안 그러면 언제든 한 방에 훅 가는 신세가 대한민국 여당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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