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윤호 도쿄 총국장
남북대화에 보인 냉랭한 반응은
외교 고립에 대한 불안감 탓
한반도 이해관계자 자처하는 일본
북핵 해결 위해선 협조 꼭 필요
대북제재 재확인해 안심시켜야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도 섭섭해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동안 대북제재의 한 전선을 담당해 온 일본을 제쳐 뒀다는 불만이다. 이는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 자민당 총재 외교특보가 7일 워싱턴 강연에서 한 말에 진하게 묻어 난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쇼로서 긴장이 완화된 것처럼 연출될 게 틀림없다.”
미국에 대해선 싫은 소리를 못하지만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고립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이 부쩍 많이 쓰는 말이 ‘아타마고시(頭越し)’다. 모르는 사이에 자기들 머리 위에서 뭔가 일이 진행된다는 뜻이다. 우리식 표현으론 ‘재팬 패싱’이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예민한 반응들이다.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감지된다.

남윤호칼럼
북한 핵·미사일에 관해 일본은 스스로 중요한 플레이어 중 하나라고 본다. 미사일과 핵의 위협 반경에 들어 있으니 자기들 이슈로 간주한다. 반면 한국은 일본을 큰 변수로 감안해 주지 않는 양상이다. 제재 국면에선 플레이어로 인정해 주다 협상에선 옵서버로 나가 있으라 한다. 재팬 패싱을 오히려 통쾌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당장엔 별문제 아닌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세한 균열이 나중엔 메우기 어려운 간격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본의 우경화 분위기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하면 지하철을 멈추고, 대피 사이렌을 울리는 게 일본이다. 열도 침공 시나리오를 그린 공상소설 같은 책들이 서점의 국제안보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복귀를 노리는 일본 우파의 구미에 딱 맞는 환경이다.
북한 핵을 다루는 데엔 국제사회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다. 그게 현실이다. 대화 국면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부의 노력이 부각되곤 있지만, 이게 어디 우리 혼자 힘만으로 이룬 것인가. 유례없이 강력한 국제적인 대북제재의 성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 당국자들도 잘 알 것이다.
곧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를 예정이다. 이때 지금까지의 대북제재 공조엔 미동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일본이 우리와 다른 궤도로 북한에 대응하거나 접근하면 우리에게도 부담이다. 북핵 폐기를 달성하는 일은 우방국이 거들어도 모자랄 판이다. 이웃이 등을 돌리면 힘들어지는 건 우리다. ‘우리끼리’라는 감격은 짧고, ‘국제 공조’라는 현실은 길다.
남윤호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