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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아웃사이더, 세계적 명성, 그리고 성폭력

중앙일보 2018.03.08 00:51 종합 21면 지면보기
지난달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한 김기덕 감독. [EPA=연합뉴스]

지난달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한 김기덕 감독. [EPA=연합뉴스]

김기덕(58) 감독이 함께 일하던 여배우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주장이 공개되며 충무로 안팎이 충격에 휩싸였다. 김 감독은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국내 대표적 감독이다. 한국영화가 베니스·베를린·칸 등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은 지금껏 ‘피에타’가 유일하다. 김 감독은 2004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같은 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빈 집’으로 각각 감독상을 받는 진기록도 세웠다. 칸영화제에서도 2011년 ‘아리랑’으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
 

김기덕 감독 충격 일파만파
영화촬영 현장 추문 전부터 돌아
억압된 여성, 파괴적 남성에 집중
세계 3대 영화제 수상 진기록도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매번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페르소나 조재현과 다시 만난 ‘뫼비우스’는 성기절단을 묘사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매번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페르소나 조재현과 다시 만난 ‘뫼비우스’는 성기절단을 묘사했다.

6일 방송된 MBC ‘PD수첩’에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거나 촬영 도중 하차당한 여성 배우 세 사람이 A씨, B씨, C씨 등 익명으로 나와 그동안의 고통을 들려줬다. 성관계 요구나 성추행은 물론이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PD수첩’ 제작진에 보낸 장문의 문자를 통해 “미투 운동이 갈수록 자극적이다. 나는 영화감독이란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 없다”면서 “일방적 감정으로 키스한 적이 있고 이에 반성하고 용서 구하지만, 동의 없이 그 이상의 행위를 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본지는 ‘PD수첩’ 방송 전후로 김기덕 감독의 입장을 직접 듣고자 했지만 휴대전화가 꺼져 있는 등 연락이 닿지 않았다.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피에타’에는 근친상간 요소가 있다.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피에타’에는 근친상간 요소가 있다.

김기덕 감독은 세계적 감독인 동시에 국내에서는 충무로의 이단아로 불려왔다. 대자본이 장악한 한국영화계에서 저예산 독립 제작 체제로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왔다. 경북 봉화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려서 가족들과 서울로 이주, 10대 시절 공장에 다니다 20대에 해병대로 복무한 뒤 1990년대 프랑스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다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 레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 등에 영향받아 영화감독을 꿈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영화 ‘야생동물보호구역’(1997)에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주연한 프랑스 배우 드니 라방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빈 집’은 궁지에 몰린 주부의 고통을 다뤘다. [사진 각 영화사]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빈 집’은 궁지에 몰린 주부의 고통을 다뤘다. [사진 각 영화사]

데뷔작은 1996년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악어’다. 한강에서 자살한 시체를 숨겼다가 유가족에게 돈을 뜯어내 먹고 살아 ‘악어’라 불리던 깡패가 집단강간 충격으로 자살하려던 여성을 살려내 욕망을 채운다는 이야기다. 김 감독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된 배우 조재현과 김 감독이 처음 만난 것이 이 영화다. 이후 조재현은 ‘나쁜 남자’(2002)부터 ‘뫼비우스’(2013)까지 모두 여섯 작품을 함께하며 김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게 된다.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사마리아’는 궁지에 몰린 여고생의 고통을 다뤘다. [사진 각 영화사]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사마리아’는 궁지에 몰린 여고생의 고통을 다뤘다. [사진 각 영화사]

김 감독은 미군 사생아 문제를 조명한 ‘수취인불명’(2001), 간첩 오인 사살 사건을 그린 ‘해안선’(2002), 원조교제 여고생 이야기 ‘사마리아’(2004),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부를 내세운 ‘빈 집’(2004) 등 사회에서 성적·정신적으로 착취·유린당하는 여성과 강압적이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남성들을 파격적인 영상으로 다뤄왔다. 그의 연출작 과반이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까닭이다. ‘섬’(2000)에선 여성이 성기에 낚싯바늘을 넣는 장면으로, ‘뫼비우스’에선 외도로 가정이 파탄 난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는 장면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대부분 잔인하고 어두운 내용이지만, 소외된 이들의 폭력적이고 분노에 찬 자화상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늘 뒤따르는 논란에 김 감독은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사마리아’ 개봉 당시 영화가 극단적이라는 일부 비판에 그는 공식 석상에서 “이창동 감독이 만들면 사회를 보는 시선이고 내가 만들면 ‘지가 하는 짓’인가”라고 말한 적 있다.
 
조폭이 평범한 여대생을 창녀로 만드는 ‘나쁜 남자’ 김 감독 영화 중 가장 흥행했다. [사진 각 영화사]

조폭이 평범한 여대생을 창녀로 만드는 ‘나쁜 남자’ 김 감독 영화 중 가장 흥행했다. [사진 각 영화사]

그의 영화 현장이 폭력적이라는 소문은 전부터 나돌았다. 평범한 여대생 선화가 조폭에 의해 강제로 매춘부로 전락하는 ‘나쁜 남자’는 관객과 평단에서도 ‘여성 혐오’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주연을 맡은 배우 서원은 영화 전문 잡지 ‘씨네21’ 인터뷰에서 “촬영장에서 거의 자폐였다”며 “선화로 있어야 하는 제 모습이 끔찍했다. 영혼을 다쳤다”고 말했다. 상대역 조재현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화가 순결을 지키려 발버둥 치는 장면을 찍을 때 감독 외에 다 나가달라 했지만, 감정이입을 위해 나도 지켜보겠다고 버텨 실감 나는 연기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23번째 장편영화이자 최신작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으로 지난달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스페셜 부문에 초청됐다. 현지 언론에서는 최근의 여배우 폭행 사건과 관련해 그를 초청한 영화제 주최 측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영화가 폭력적이라도 내 삶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PD수첩’에 나온 A씨는 ‘뫼비우스’에서 하차하기 전 촬영 당시 시나리오에 없는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고, 수차례 뺨을 맞았다며 지난해 김 감독을 고소한 바 있다. 올해 1월 법원이 폭행에 대한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리는 데 그치자 A씨 측은 검찰의 기소 당시 무혐의로 처리된 강제추행, 명예훼손 등에 대해 재정신청(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타당성을 가려달라고 하는 것)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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