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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청원

중앙일보 2018.03.07 01:52 종합 28면 지면보기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며칠 전 청와대 홈페이지에 중요한 국민청원 하나가 올라왔다. 정신치료를 목적으로 전문심리상담가에게 심리상담을 받을 때 건강보험공단의 지원과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 또는 제정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불안장애나 불면증과 같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제적인 부담 없이, 나라에서 지원하는 치료과정의 일환으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면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단절·고독·피로·불안으로 물든 우리의 현실
미국·영국처럼 국가가 심리상담도 건강보험으로 지원하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급증하는 고독사, 1인 가구의 빠른 증가와 갈수록 낮아져만 가는 출산율에서 볼 수 있듯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단절과 고독, 피로와 불안으로 물들어 있다. 이런 현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여러 치료사 선생님들과 함께 마음치유학교를 만들고 운영해오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현장에서 느낀 몇 가지 안타까운 점과 바람을 나누고 싶다.
 
우선, 많은 이들이 육체적 고통과는 달리 심리적 문제를 경시하고 제때 치료하지 않아 병을 키운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아직도 정신적 질환에 대한 낙인효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우울증이나 불안증세를 경험할 수 있음에도 ‘정신병’이라고 낙인 찍힐까 두려워 치료를 꺼린다. 또한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치료하는 것에는 많이 인색하다. 혼자서, 굳은 의지로,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고 만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용기와 결단으로 정신과에 간다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건강보험 구조상 많은 환자를 볼수록 수익이 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심리적인 문제가 있어 정신과를 찾아도 대다수의 경우 의사와 3~10분 이내로 이야기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약물 처방이 위주가 되고, 환자들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수용해주고 치료해주는 깊이 있는 상담은 소수의 상담전문 정신과 의사를 제외하고는 하기 어렵다. 또한, 치료를 위해 여러 번 방문해 상담을 받아야 하니 고액의 상담료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과에서 인지행동치료 상담을 할 경우 보험처리가 될 수 있도록 관련법이 개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하지만 문제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의 숫자에 비해 상담을 통한 인지행동치료를 할 수 있는 정신과의사의 숫자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양 심리상담 분야 학자들의 연구와 활용으로 발전한 인지행동치료를 이미 우리나라 심리상담사들도 많이 적용하고 있음에도, 개정안에는 정신과의사만 의료보험 처리를 할 수 있다 하니 논란이 되는 것 같다.
 
또한 안타까운 점은 정신과의사와 심리상담가가 환자를 위해 존중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아닌 이익집단화 되어 종종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신과의사는 전문심리상담가가 전문적인 교육이 부족하다고 상담가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인 양 비판하고, 반대로 전문심리상담가들은 정신과의사들이 상담에 대한 교육과 수련이 부족해 오히려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비판한다.
 
문제의 원인이 단순히 이 두 집단에게만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선 정신보건에 대한 투자와 예산 분배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매우 적은 수치로 책정되어 왔다. 이것은 OECD가 한국인의 정신건강에 대한 조사 후 권고한 사항에도 나와 있다. 더불어 약물과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들 위주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지다 보니 많은 사람이 겪는 경증 증세에 대한 치료 공백이 생겨왔다고 보고되었다. 그 공백을 지금까지는 전문심리상담가들이 채우려 노력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심리상담의 관리 감독을 미국이나 유럽처럼 국가가 하는 것이 아닌 민간학회들이 주도하고 있어, 엄격한 관리하에 꾸려지는 전문적인 학회가 있는가 하면 기준에 미달하고 실력을 갖추지 못한 상담가를 양산해내는 학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나는 정부가 나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만족시키는 심리상담가들을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음에도 그들을 제도권 밖에서 방치하는 것은 고급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뿐더러 치료 공백을 키우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40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하는 이 현실에서 미국이나 영국처럼 심리상담도 보험이 되어 국민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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