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딸 같다며 바지 내린 의원님” … 국회 게시판에도 미투

중앙일보 2018.03.07 00:52 종합 10면 지면보기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에 분개한 한 시민이 6일 충남 홍성읍 도지사 관사에 야구방망이를 던져 유리창이 파손됐다(아래 사진). [연합뉴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에 분개한 한 시민이 6일 충남 홍성읍 도지사 관사에 야구방망이를 던져 유리창이 파손됐다(아래 사진). [연합뉴스]

정치권에도 미투(#MeToo) 파문이 몰아닥쳤다. 5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성폭행 폭로와 국회에 재직 중인 여성 비서관의 첫 성추행 실명 증언이 겹치면서다.
 

보좌진 채용은 의원이 전권 행사
고용 불안정한 성폭력 사각지대
“의원 사무실도 연극판과 마찬가지”
8·9급은 여성 70%, 보호장치 필요

6일 국회 투고 게시판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새로운 폭로가 이어졌다. “이 의원님 안녕하세요, 저는 잘 지내지 못합니다”로 시작하는 글에는 “제가 딸 같다며 며느리 삼고 싶다던 의원님, 따님분들 앞에서도 제 앞에서 그랬듯 바지를 내리시는지요”라며 성폭력을 암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에 분개한 한 시민이 6일 충남 홍성읍 도지사 관사에 야구방망이를 던져(위 사진) 유리창이 파손됐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에 분개한 한 시민이 6일 충남 홍성읍 도지사 관사에 야구방망이를 던져(위 사진) 유리창이 파손됐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어 “얼마 전 의원님께서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며 가해자를 비난하는 기사를 보았다”며 “그 기사를 본 날 저는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의원님의 더러운 성욕 때문에 저희 부모님은 딸에게 더러운 말을 하는 의원님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어야만 했고, 저는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죄인이 됐다”고 했다.
 
한편 첫 미투 고백의 가해자로 지목된 보좌관은 이날 면직 처리됐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우리 사무실로 오기 전 민주당 의원실 재직 당시 일어난 일이지만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며 자신의 의원실 소속 보좌관을 서둘러 내보냈다.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자 여야는 경쟁적으로 미투 관련 법안을 냈다. 바른미래당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등 7건을 발의하고 ‘이윤택 처벌법’이라 명명했다. 형량·공소시효 등을 늘리는 내용이었다. 민주평화당 역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규정 삭제 등을 내용으로 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정작 국회 보좌진은 성폭력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좌진은 입법 등에 관여해 일종의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용 불안정에 시달린다. 의원 1인당 9명의 보좌진(4급 보좌관 2명, 5급 보좌관 2명, 6~9급 비서와 인턴)을 둘 수 있는데, 별도의 공채 시스템이 없이 해당 의원이 인사권을 100% 행사한다. 의원 한명을 정점에 두고 폐쇄적인 피라미드 구조를 띠고 있는 셈이다. “형태만 다를 뿐 대학로 극단이나 의원 사무실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근로기준법상 보장되는 해고예고제(최소 30일 전 통보)도 국회에선 무용지물이다. 아무 때나 뽑고, 아무 때나 자를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전직 보좌관은 “국회의원이 감정적으로 보좌진을 해고하는 경우도 많다”며 “해고예고제를 적용하는 건 물론, 해고 사유가 타당한지 심의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좌진의 남녀 비율 불균형도 심하다. 국회 사무처 등에 따르면 4급 보좌진 중 남성은 93%인 반면, 8~9급의 여성 비율은 60~70%에 이른다. 한 여성 비서관은 “사실상 인사권에 영향을 미치는 남성 상급 보좌진이 평판도 쉽게 만들어낸다. 바닥도 좁은 터라 ‘싸가지 없는 비서’라는 소문이 나면 다른 의원실로 옮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토로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교수는 “성폭력 피해를 신고 한 후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히 하급 보좌관에 대한 권익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며 “보좌진협의회 차원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건 물론 국회도 정기적으로 성폭력 실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김준영 기자 amator@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