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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군사작전이 구호작전으로 바뀐 이유

중앙일보 2018.03.06 11:22
Focus 인사이드
 

고아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곧바로 구호 작전이 시작되었다. [http://cid169.kwva.org]

 

1.4 후퇴로 평택-삼척선까지 밀려난 아군은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를 앙양하기 위해 1951년 1월 15일부터 제한적인 수색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중공군의 상태가 몹시 나빠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들다는 의외의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자신감을 회복한 미 8군 사령관 매튜 리지웨이는 전선을 38선 인근으로 다시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대대적인 반격 이전에 강력한 제해권을 발판삼아 먼저 물류 거점인 인천항 확보에 착수했다.
 
정보에 따르면 인천에 주둔 중인 공산군은 소규모여서 국군 단독으로 장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2월 초 상륙을 목표로 한국 해군과 해병대가 준비하는 동안 이들을 지원할 미군 95기동부대가 경기만 일대에 먼저 진입했다. 그중에는 화력을 책임지는 중순양함 세인트 폴(USS-73 St. Paul)호도 있었다. 인근에 정박한 세인트 폴은 인천 외항의 상황을 살피고자 은밀히 소수의 정찰대를 파견했다.
 
6.25전쟁 당시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작전을 펼치는 중순양함 세인트 폴. [National Archives]

6.25전쟁 당시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작전을 펼치는 중순양함 세인트 폴. [National Archives]

 
정찰대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인천항 부근의 만석동, 월미도 그리고 영종도 사이에 놓여있는 작약도(芍藥島)였다. 월미도 선착장에서 배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약도는 둘레가 1킬로미터 불과한 작은 섬인데, 당시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지도에는 일본식 지명인 Fushi-To로 표기되었다. 이곳은 인천 외항을 감제하기 좋은 위치여서 공산군이 배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상륙한 수병들은 해변에 위치한 수상한 가옥을 발견하고 경계를 강화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런데 거기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공산군이 아니라 놀랍게도 피골이 상접한 고아들이었다. 무인도라고 여기던 작은 섬 안에는 전쟁으로 인해 제대로 먹지도 못해 굶고 추위에 떨고 있던 무려 45명의 고아들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수병들이 애처로움에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상황이 비참했다.
 
원래 작약도에는 해방직후 인천의 독지가였던 이종문 씨가 건립한 ‘성육원’이라는 고아원이 있었다. 그런데 전쟁 발발 후 인천을 점령한 공산군이 이종문 씨를 비롯한 관리인들을 반동이라는 죄명으로 끌고 가 감금하면서 원생들이 그냥 방치되었다. 9.28수복 후 곽선영 씨가 관리인으로 다시 배치되었지만 전쟁 통에 지원이 끊겨 고아들은 바다 가에 떠밀려온 상한 음식 등을 수거해 겨우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고아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군의관. 당시 원생들은 세인트 폴의 승조원들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천사라고 생각했다. [http://cid169.kwva.org]

고아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군의관. 당시 원생들은 세인트 폴의 승조원들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천사라고 생각했다. [http://cid169.kwva.org]

 
 
이를 목도한 순양함 세인트 폴은 원래 예정대로 군사 작전을 펼치는 것과 별개로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질병으로 고통받던 고아들의 구호 작전을 즉시 전개했다. 원산, 흥남, 청진 등에서 적진에 무시무시한 불벼락을 퍼부어 공산군에게는 공포의 사신이었던 세인트 폴은 절망에 빠져있던 작약도의 고아들에게는 천사였다. 이곳 출신 고아였던 김광훈 씨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들은 두 달 동안 매일 20명씩 조를 짜서 보육원을 찾아왔다. 쌀과 통조림 등 식량을 갖다주고 부서진 건물을 고쳐줬다. 드럼통을 반으로 쪼개 간이 욕조를 만들어 목욕도 시켜줬고, 군의관들은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줬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그네, 시소 같은 놀이기구도 만들어줬고, 생전 처음 본 축음기를 가져와 팝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어느 날 그들은 긴 뱃고동 소리를 뒤로하며 인천 바다를 떠났다.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임무 교대를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 배가 떠나자 우리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전쟁은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특히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아픔이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고립된 작은 섬에서 전쟁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숙명으로 여기며 고통받던 수많은 고아들의 이야기는 그냥 잊히기에 너무나 큰 역사의 아픔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처럼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순간에 보여준 순양함 세인트 폴의 선행이 더욱 빛나는 것 같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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