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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의 공감의 과학] 암호화폐 기술표준의 딜레마

중앙일보 2018.03.03 01:27 종합 24면 지면보기
최성우 과학평론가

최성우 과학평론가

암호화폐는 최근 대중들의 가장 뜨거운 관심 거리로 떠오른 바 있다. 암호화폐가 앞으로 투기 수단이 아닌 실질적인 거래 수단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해결돼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기술 표준에 대한 것인데, 어느 분야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기 위해선 규격 및 기술 방식의 표준화가 선행돼야만 한다. 텔레비전, 이동통신 서비스 등 우리에게 익숙한 첨단기술제품들은 거의 대부분 유관 국가기관이나 국제기구 등에 의해 기술 표준이 정해져 왔다.
 
현재까지 선보인 암호화폐의 종류만 천여가지가 넘는다고 하는데, 표준화 등을 통하여 매우 적은 개수로 걸러지지 않는다면 대중적인 거래 수단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이다. 그러나 개방형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암호화폐는 은행과 같은 중개자가 필요 없는 탈중앙화, 분권화 등을 지향하여 탄생한 취지와 특성에 비추어, 국가기관이나 세계기구 등이 기술 표준을 강제한다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공감의 과학 3/3

공감의 과학 3/3

물론 복수의 방식과 제품이 경쟁할 경우 소비자들의 선택에 의해 표준 방식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비디오 가게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대여해서 영화를 즐기는 용도 등으로 자주 사용되었던 가정용 비디오기기(VCR)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지난 1970-80년대 소니(SONY)의 베타맥스 방식과 마쓰시타(松下)가 주축이 된 비디오 홈 시스템(VHS)방식 간의 격렬한 표준 경쟁에서도 할리우드의 주요 영화사들이 최종 ‘심판관’ 역할을 하였다. 녹화 시간이 길어서 한 영화를 하나의 카세트에 담을 수 있었던 VHS방식을 영화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더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현행 암호화폐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전력 낭비적 채굴 방식 및 시스템 문제 등으로 인하여 거래 수단으로서의 전망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제반 문제를 해결한 획기적인 새로운 암호화폐가 장래에 출현한다고 해도, 과연 기술 표준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암호화폐는 당초 이상과는 달리 특정 금융기관이나 기업, 국가 등이 주도하는 폐쇄형 블록체인 기술로 만족해야 할 지도 모른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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