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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무술변법, 시진핑 변법

중앙일보 2018.03.03 01:22 종합 26면 지면보기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5년 전이었다. 중국 출장 중 중국 공산당 18기 3중전회가 열렸다. 60개 항목의 강력한 개혁안이 나왔다. 대만의 한 신문은 ‘시진핑(習近平) 변법(變法)’이라며 호평했다. 변법은 120년 전에도 있었다. 올해와 같은 무술(戊戌)년이었다. 밀려드는 외세에 캉유웨이(康有爲)·량치차오(梁啓超) 등 개혁파가 입헌군주제를 주장했다. 헌법으로 황제 권력을 통제하겠다는 시도였다. 그해 4월 광서제(光緖帝)가 개혁을 시작했다. 과거제는 유지했지만 적폐인 팔고문은 폐지됐다.
 
그러자 보수세력이 결집했다. 변법파 담사동(譚嗣同)은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서태후 제거를 요청했다. 조선에서 12년간 단련된 위안스카이는 따르지 않았다. 서태후의 개입으로 광서제는 유폐됐고, 개혁파는 망명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변법은 103일 만에 무산됐다.
 
변법의 실패는 혁명을 불렀다. 이어진 신해혁명이 2000여 년 이어온 황제 통치를 끝냈다. 하지만 혁명의 과실은 위안스카이가 차지했다. 그는 대총통에 만족하지 못했다. 1916년 1월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 후폭풍은 거셌고 83일 만에 하야했다.
 
시진핑 변법 시즌2의 막이 올랐다. 이번에는 개헌이다. 국가주석 임기 철폐가 포인트다. 인민일보는 “당·국가·군 삼위일체 영도체제의 완성”이라며 종신제 언급은 삼갔다. 중국 정부 인사는 “결정적 순간을 대비한 중국의 선택”이라며 “지금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할 때”라며 옹호했다. 대신 “주위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구 언론은 비판 일색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구도 나온다. 경제에 끼칠 영향은 부정론과 긍정론이 엇갈린다. 중국 현대 정치에 정통한 안치영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덩샤오핑이 개혁을 통해 성장시킨 사회와 정치 개혁의 전통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접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민심 이반과 새로운 질서를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베이징은 지금 태풍 속의 고요함 그 자체다. 위안스카이는 금지어가 됐고, 개헌안 속보를 타전한 신화사는 문책을 받았다고 한다. 보도 금지 위반인지, 속보 항목 선정 문제인지 판단은 어렵다. 대신 언론 보도처럼 반대 일색은 아니다. 서구적 가치와 중국의 현실은 차이가 크다. 역사 속 중국인은 계몽(啓蒙)과 구망(求亡)이 경합할 때 언제나 후자를 선택했다. 역설이지만 시 주석의 선택은 불확실성을 높였다. 문제는 한국이다. 다양한 중국 시나리오를 그려야 할 때다. 단, 희망과 가치는 빼자. 냉정하게 관찰한 사실에만 기반해야 한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이 옳을 수 없어서다. 중국에 수업료는 이미 충분히 지불했기에 하는 말이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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