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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립스틱효과, 메뉴비용

중앙일보 2018.03.03 01:10 종합 27면 지면보기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때론 경제용어가 정치 현실에 들어맞는다. 불황기의 특이한 소비 패턴을 설명하는 용어로 ‘립스틱효과’가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의 미국에선 적은 돈으로 화려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립스틱이 유독 많이 팔렸다. 사치하고 싶은 욕구를 저가품으로 채우려다 보니 생긴 기현상을 경제학자들이 립스틱효과라 불렀다.
 
야권은 지금 선거불황기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경우 지지율이 한창때의 3분의 1(10%대)로 토막 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현역 의원들의 소비가 급감소해 출마 선언보다 불출마 선언이 도드라진다. 2일부터 6·13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했지만 이주영·박완수(경남)-김세연(부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을 비롯해 곳곳에서 ‘미투’(나도 불출마)다. 이런 불황기에 광역 17곳 중 무려(?) 6곳에서의 승리를 장담한 홍준표 대표다. 고가품(현역 의원) 대신 서울에는 오세훈 전 시장, 충남에는 이미 도지사를 지낸 이완구 전 총리에, 이인제 전 의원의 이름까지 나온다. 의식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립스틱효과라도 구하려는 거 아냐?’라는 인상을 준다. 다만 복고 성향이 약간 짙은 명망가 카드로 최대 만족을 누릴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야당과 달리 여권은 자리 값이 마구 뛰고 있다. 통화량(문재인 대통령과 당 지지율) 증가에 따른 총수요 증가가 원인이다. 한마디로 선거 경기 과열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태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시 발생하는 ‘메뉴비용’이다. 라면 값이 1000원에서 2000원, 2500원으로 오를 때마다 식당은 메뉴판을 갈아야 하고 바뀐 가격에 대한 광고비, 신상품 포장비를 지출해야 한다. 고객 이탈에 따른 비용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추가 비용 일체를 ‘메뉴비용’이라 한다. 여권의 지방선거 메뉴 교체비용은 간단치 않을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광역이건 기초건 3선에 도전하는 단체장이 즐비하다. 여기에 우상호·박영선(이상 서울) 의원을 비롯해 다수의 현역 의원이 도전장을 냈다. 신상품으로 메뉴를 교체하면 해당 지역에 새로 출마자를 구해서 광고도 하고, 표도 모아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원래 상품보다 질이 떨어지면 고객(표)이 이탈한다.
 
그렇다고 메뉴비용을 줄이려고 기존 얼굴, 특히 3선 도전자들을 시장에 내면 당장은 아닌 것 같지만 선택의 시점에선 소비자들이 식상해할 수 있다. 아직은 여권 전체가 헤드테이블에 한 상 크게 차려 올리는 데만 골몰해 메뉴비용을 계산하지 않는 것 같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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