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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소설 『태백산맥』은 교양물? 이적물? 문인 50명으로 돌아본 80년대 우리들

중앙일보 2018.03.03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정규웅 지음
책이있는마을
 
과거 우리는 어떻게 살았던 걸까. 이런 궁금증이 이는 시절이다. 요즘 한참 뜨거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세월의 어떤 단면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오랜 세월 일간지 담당 기자로, 데스크로 문학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저자의 1980년대 문단 회고록이다.
 
저자는 과거에도 비슷한 책을, 그것도 두 차례나 낸 바 있다. 60년대 문단 풍경을 되살린 1999년 『글동네에서 생긴 일』, 70년대를 회고한 2010년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이다. 시리즈의 세 번째 격인 이번 책을 쓰면서는 형식을 고민했다고 ‘후기’에서 밝혔다. 연도별 연대기 형식으로 쓰면 시대를 조망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객관성에 치우쳐 건조해질 수 있고, 그렇다고 문인 개개인에 쓰자니 재미는 있겠지만 자칫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는 거다.
 
저자의 선택은 후자. 독자로서는 다행스러운 결정인 것 같다. 저자의 주관적인 인물평이 그 사람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다를 수 있겠지만 인물에 입체감과 실물감을 부여한다. 가령 애송시 ‘낙화’를 쓴 시인 이형기(1933~2005)에 대해서는 이런 인물평을 했다. “이형기는 저돌적이라고 할 만큼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라는 아름다운 문장의 시 작품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평이다. 지근거리에서 시인을 목격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인물평이다.
 
일종의 인물 열전이다 보니 내키는 대로 펼쳐보면 된다. 기일(7일)이 임박한 기형도에 관해서는 이런 대목이 인상적이다. 기형도와 저자는 신문사 문화부에서 기자와 데스크로 일했었다. 죽기 몇 달 전 신문사 내부 문제로 다른 부서에서 일하게 된 기형도가 한가한 시간이면 저자를 찾아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 가곤 했다는 얘기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이적성 논란이 시끄러울 때 작가 조정래가 했다는 발언은 기민함에 있어 ‘역대급’이다. 92년 검찰은 민주화의 기운에 떠밀려 『태백산맥』을 문제 삼지 않기로 하면서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일반 독자가 교양으로 읽으면 상관없지만, 학생이나 노동자가 읽으면 의법조치하겠다는 거였다. 조씨의 발언은 이랬다. “안방에서 어머니가 읽으면 교양물이고, 건넌방에서 대학생 아들이 읽으면 이적 표현물이란 말인가?”
 
책은 50개의 짧은 글로 구성됐다. 한수산·기형도를 빼면 대개 한 명씩 다룬 글들이다. 문인 50명으로 본 80년대 글동네 풍경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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