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
위험한 사례
심리학자 27명의 트럼프 진단
충동성·편집증·자기도취 강해
지난해 말 미국 출간 당시 화제
개인 정신건강 공개 논란 일어
정지인·이은진 옮김
푸른숲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이후 입만 열면 평지풍파를 일으켜왔다. 미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규범파괴자이며 이단아로 평가받았다. 자질과 업무수행 능력도 의문을 낳아왔다. 미 대통령은 자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는 핵 단추를 누를 권한까지 있지 않은가.
미국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 27명이 트럼프의 정신을 분석한 글을 써서 책으로 펴낸 이유다. 한국계 미국인 밴디 리가 엮었다. 간접 관찰과 진단(글쓴이 중 트럼프를 직접 만나 상담하고 진찰한 이는 없다)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출간된 즉시 상당한 반향을 불렀다. 트럼프의 정신을 살펴봤더니 충동성·무모함·피해망상 등 폭력성과 관련한 여러 특성과 함께 자기도취증·반사회적증세·편집증세·착각증세가 관찰된다는 게 요지다. 이는 트럼프가 과도한 성적 표현을 쓰고, 국민과 국제사회를 편 가르기 하며, 지지자들을 폭력적으로 선동하고, 무엇보다 김정은과 핵과 관련한 막말을 교환해 세상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배경일 수 있다.

미국 LA ‘여성들의 행진’의 한 장면. 트럼프 사진 위에 ‘독재와 싸우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자가 과대망상에 빠지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이 트럼프를 향해 목소리를 내게 된 명분이다. 정계는 물론 모든 조직사회 구성원들이 새겨야 할 권력의 정신 건강학이다. “아직도 저 대통령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변덕스러운 행동을 억제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 사람이 있지만, 전문가로서 해온 경험에 비춰 보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는 내용에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항하는 미국 지식인·전문가들의 결연한 태도와 용기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의료윤리 논쟁을 촉발했다. 미국정신과학회(APA) 의료윤리 원칙에는 ‘골드워터 규칙’이 있다. 정신과 의사가 직접 진단하지 않은 공인에 관해 전문가로서 의견을 밝히거나 동의받지 않은 개인의 정신 건강에 관해 공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비윤리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이다. 1964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 린든 존슨 대통령과 맞붙었던 공화당 배리 골드워터(1909~1998) 후보에 대해 ‘팩트’라는 잡지가 정신과 의사 1000여 명의 설문 내용을 바탕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라고 보도한 게 계기다. 골드워터는 대선 패배 뒤 잡지를 고소해 배상금까지 받아냈다. 이와는 반대로 ‘의료 비밀 보호보다 공공 이익이 우선’이라는 판결을 바탕으로 하는 ‘타라소프 규칙’도 있다. 이 책에는 ‘골드워터 규칙’과 ‘타라소프 규칙’ 사이에서 고뇌했던 지은이 27인의 ‘마음의 행로’도 함께 담았다. 이 책이 단순히 ‘트럼프 때리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적인 품위와 전문가적인 지성을 갖춘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