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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현대차는 괜찮은가

중앙일보 2018.03.02 01:58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차를 바꿀 때가 됐다. 9년 탄 현대 소나타가 슬슬 노화 증상을 보인다. 어떤 차로 갈아탈까 시장조사를 하고 주변의 조언도 구한다. 그러고 보니 사회생활과 함께 마이카를 가진 뒤 30년째 현대차만 굴렸다. 엑셀을 시작으로 아반테·트라제·소나타로 갈아탔다. 좀 더 크고 성능 좋은 차를 갖게 될 때의 기쁨은 아파트 평수를 넓혀 이사할 때에 버금갔다.
 

한국GM 이어 현대차도 위기 맞을 징후 폭넓게 노출
강남 사옥 계획 접고 R&D·M&A·노사협력 매진해야

내가 가장 만족한 차는 9인승 SUV 트라제였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 우리 네 식구와 부모님, 형제들까지 타고 휴가를 다녀올 때의 추억은 잊을 수 없다. 지금 굴리는 소나타의 품질은 미국 연수 때 1년 탔던 도요타 캠리와 비교해 손색이 없다.
 
그런데 현대차 라인업에서 내가 소나타 다음으로 갖고 싶은 차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랜저 아니면 제네시스인데, 나에겐 필요 이상으로 크고 연비도 확 떨어진다. 나는 세련된 고급 사양에 컴팩트한 차를 찾고 있다. 하지만 소나타 위의 현대 차종은 여전히 덩치만 키운 업무용차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산테페 위의 고급 SUV 라인업도 이렇다 할 게 없다.
 
최근 차를 바꾼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대다수가 “이젠 외제차로 바꿔보라”고 권한다. 실제 꼽아보니 열 중 일곱~여덟이 벌써 그렇게 했다. 그들은 현대·기아차를 떠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중소형차 라인의 품질은 세계 수준에 올랐지만 대형 고급차는 아직 멀었다. 성능과 연비, 디자인 모두 그렇다. 둘째, 외제차의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셋째, 외제차를 타면서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다. 넷째, 현대차의 이미지가 좋지 않아 여전히 2류 브랜드 같다. 강성 노조의 마이웨이도 악영향을 줬다.
 
현대차는 지금 중대 기로에 서 있다. 글로벌 경쟁 업체 중 유일하게 판매량과 순익이 줄고 있다. 앞서 달리는 유럽·일본차와 추격해 오는 중국차에 끼여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국내에서까지 고급차시장을 외제차에 속수무책으로 내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래의 반전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 먹거리의 기술력이 뒤처지면서도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은 경쟁 업체 중 최하위권이다. 부족한 부분을 글로벌 인수·합병(M&A)으로 메우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노조의 강경투쟁으로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됐지만 생산성은 미끄러지고 있다. 현대차는 더 이상 싸지도 좋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차로 변해가고 있다.
 
아직 현금이 15조원 쌓여있고 연 4조원의 순익을 올리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라도 노사가 위기의식을 갖고 투자와 품질개선,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결단과 추진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현대차의 진짜 문제다.
 
현대차는 지금 서울 강남 요지에 국내 최고 높이의 호화 신사옥을 올리는데 그룹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땅값만 10조원에 건축비가 수조 원 더 들어가는 대역사다. 쌓아놓은 현금은 그곳으로 계속 빨려들게 돼 있다. 미래형 친환경·SUV·고급차 등에 대한 투자는 아무래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 특유의 상명하복식 조직문화에 비추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는 자성의 소리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제껏 현대차가 세계 5위 자동차업체로 우뚝 서는 데는 빠른 의사결정과 추진력이 한몫했다. 하지만 최고 경영진이 고령화되면서 시장 변화의 맥을 짚지 못하고, 결단력과 추진력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살길은 하나다. 최고 경영진의 세대교체와 더불어 위기감으로 뭉친 협력적 노사관계를 이끌어내야 한다. 강남 신사옥 건립 계획을 접고 미래를 향한 투자에 매진해야 한다. 때마침 신사옥의 건축허가가 지연되고 있다. 강남 땅값 급등으로 포기해도 큰 손해를 보지 않게 됐다. 만약 그런 결단을 보이면 나는 현대차를 다시 사고 현대차 주식에도 투자해볼 생각이다.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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