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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직격 인터뷰] “미투가 시작됐다 …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중앙일보 2018.03.02 00:07 종합 27면 지면보기
시 ‘괴물’ 실은 김명인 황해문화 주간
동갑인 아내와 환갑 기념으로 이집트 이스라엘 여행을 막 마치고 돌아온 김명인 교수를 인하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고은 시인이 주례를 설 만큼 가까웠지만 ’범죄는 범죄로 반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상선 기자]

동갑인 아내와 환갑 기념으로 이집트 이스라엘 여행을 막 마치고 돌아온 김명인 교수를 인하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고은 시인이 주례를 설 만큼 가까웠지만 ’범죄는 범죄로 반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상선 기자]

“이제는 목소리 좀 내고 살아야겠다.”

‘작은 두목’이 분점한 문단 권력
성추문 사건으로 시험대에 올라
성폭력은 예술가 일탈 아닌 범죄
94년 이문열 고발 순수하지 못해

‘내로남불’ 진보도 말 안되는 행태
범죄 인정하고 기득권 내려놔야
탁현민 기용은 문 대통령의 한계
현 정권 시련에 직면할 가능성 커

 
최영미(57) 시인이 지난해 4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대로 정말 목소리를 냈다. 문학 계간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 페미니즘 특집에 유명 원로시인 En선생을 겨냥해 쓴 ‘괴물’이라는 시 한 편이 석 달이 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번졌고, 최 시인은 TV에 나와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다. 이 불씨가 사회 곳곳의 치부를 들춰내며 거목이라던 성범죄자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의 출발이 ‘황해문화’, 다시 말해 페미니즘을 정면으로 다루기로 한 김명인 주간(60·인하대 교수)이었던 셈이다. 공교롭게도 고은 시인은 김 교수 주례를 선 인연이 있다. 김 교수는 2017년 11월 한 신문에 실린 ‘문단 유감’이라는 칼럼을 통해 “문단 내 성추문의 대부분은 권력 관계에 기생한 약자에 대한 수탈 형식”이라며 “판도라의 상자가 바야흐로 열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를 인하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서지현 검사 폭로 전인 지난해 11월 신문 기고와 잡지 특집 등 동시다발적으로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지금의 미투운동 같은 빅 픽처를 그렸던 건가.
“페미니즘은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몇 번 시도하고 여성계 내부 흐름 등도 고려한 끝에 나오게 됐다. 사실 여성혐오(여혐)가 수면 위로 드러난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 계속 고민해왔다. 일종의 숙제 같은 거였다. 나같은 구(舊) 진보의 시각에서 볼 때 문단 뿐 아니라 소위 ‘1987’ 주체라는 진보진영 인사들의 전반적인 권력화가 큰 문제다. 70~80년대 독재정권과 싸웠다는 명분을 쥐고 기득권화했다. 그런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 중 하나가 권력관계에서 기인하는 성폭력 사건이다. 문단 내 성폭력과 성추문은 꽤 오랫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좀더 나쁘게 표현하자면 (권력에게) 허용되고 (피해는) 무시되어 왔다.”
 
성범죄가 가능한 배후엔 문단 권력이 있다는 얘기인데 그 핵심, 혹은 정점은 누구일까.
“그런 건 없다. 작은 두목이 많다. 중앙 뿐 아니라 지방 등 작은 섹터 안에서도 촘촘하게 위계가 작동한다. 문단 뿐 아니라 어느 집단이든 위계가 생기면 좋은 권위와 나쁜 권력이 만들어지고 자본이 개입한다. 창비나 문학과지성사(문지)·문학동네 같은 문학 관련 출판자본이 대표적이다. 문단이 단순히 문학적 자격을 획득하는 통로 역할 뿐 아니라 작가 개개인의 생계와 곧바로 연결되는 금력(金力)까지 쥐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작품 발표 지면이나 출판 기회와 직결되니. 창비의 창립자 백낙청 선생은 분명 권위주의적인 측면이 있지만 문지를 설립한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은 또 다르다. 권력이 개입하는 걸 보지 못했다. 또 강한 권력이 곧 성추문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단 내 추가 폭로 가능성도 있을까.
“2년 전 김현 시인의 문제제기를 비롯해 범죄 수준의 성폭력 사건은 이미 알려질만큼 알려졌다고 본다. 물론 성희롱 정도는 여전히 부지기수지만. 문단이 젠더 감수성이 부재하고 가부장적 문화가 뿌리깊은 탓이다. 게다가 예술가에게 허용되는 일탈과 자유분방함의 경계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작가란 고도로 도덕적인 존재인 동시에 도덕을 넘어서는 존재다. 잘못 해석하면 위법이나 탈법도 괜찮다는 식의 낮은 윤리의식으로 흐른다. 기성 윤리체계나 사회를 짓누르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같은 명분이 있어야만 예술가의 일탈이 용인된다. 권력에 기대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건 아무리 예술가라도 용납될 수 없다.”
 
통념에의 저항이라면 뭐가 있을까. 결혼한 상태에서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젊은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다고 밝힌 홍상수 감독을 말하는 건가.
“맞다. 사회적으로 또 가족으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둘만의 관계만 놓고보자면 권력이 작동한 것도 아니고 상대(김민희) 의사에 반한 폭력 행사도 아닌 연애 아닌가. 그건 범죄가 아니라 그냥 예술가의 일탈이다.”
 
연출가 이윤택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게 이번에 드러났다. 문단은 다른가.
“연극계는 여러 명이 협업하는 구조 아니냐. 연극이나 영화나 배제되면 끝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반면 문단이라고 해봐야 결국 작품은 개개인이 혼자 쓰는 것이다 보니 독자성이 크다. 권력의 질이나 힘의 크기 차이가 전혀 다르다.”
 
최영미 시인은 문단 권력에 고분고분하지 않아 왕따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문학적 역량을 문제 삼는다. 2차 가해일까, 조직적 왕따일까.
“문학적 역량은 엄청난 성취를 이루고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압도적 작가가 아니라면 늘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문학 외적인 걸로 소외 당하고 저평가 받는 것인지는 모호하다. 만약 다른 작가가 채워줄 수 없는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었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독자 생존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최영미가 그 선을 확실히 넘었는가는 다시 봐야 한다. 일부에서 비난하는 것 같은 노이즈 마케팅은 분명 아니지만…. 다만 이런 점은 있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정도 수준의 작가가 많다면 다른 작가로 채우면 되니까. 문학지 섭외 리스트를 놓고 한 편집위원이 반대하면 굳이 다른 편집위원이 싸우면서까지 원고 청탁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게 쌓이다 보면 결국 불러주지 않는 작가가 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문단은 왜 과거와 똑같을까. 바뀐 세상을 작가들이 정말 모르는 건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건가.
“문단의 폐쇄성에서 기인한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우리 시스템은 따로 있다’는 식의 자족성이 창비 신경숙 표절사건이나 성추문 사건으로 불거지며 시험에 든 셈이다.”
 
문단이 바뀔 수 있을까.
“물론. 그런 면에서 난 이번 성추문 사건을 긍정적으로 본다. 우리 사회가 지닌 낮은 수준의 젠더 감수성은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도전 받을 수밖에 없다. 문단이란 양심과 도덕을 고민하는 집단이다. 빠르게 교정이 가능할 거라 본다. 사건 일으킨 사람은 소수다. ‘나는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더 많다. 자기 명예를 중시하는 작가라면 최소한 동시대의 젠더의식과 비슷한 수준은 갖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여전히 성희롱은 다반사다. 하지만 성폭력으로 나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건 범죄다.”
 
이문열 작가가 이미 1994년에 단편 ‘사로잡힌 악령’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폭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그때는 오히려 이문열 작가를 비난했다. 결국 『이문열 중단편전집』 개정판에서 작품을 빼야 했다. 뭐가 달라졌나.
“당시 이문열 작가는 성폭력에 분노해서 윤리성에 문제제기를 한 게 아니다. 창작 의도가 스스로는 ‘우상 파괴’라고 했지만 민족민주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흠집내기였기에 반응도 달랐다고 본다.”
 
최근 국면에서도 고은 시인이 속한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해 이른바 진보 지식인은 침묵하거나 떠밀리듯 뒤늦게 한마디 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아닌가.
“그런 행태는 정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건 범죄의 문제 아닌가. 누구는 과거엔 다들 젠더 감수성이 낮았는데 지금의 높아진 기준으로 단죄할 수 없다고 한다. 아니다. 범죄는 범죄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남의 인격을 말살하는 행위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게 반성할 부분이다. 진보 진영이 말 아끼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 다들 이런저런 네트워크로 엮여 있으니 주저되는 것이다.”
 
최영미 시인의 폭로는 오래 전 일이다. 성범죄 특성으로 볼 때 최근에도 이어지지 않았을까. 문단 내에선 알지 않나.
“난 최근 일은 목격한 바 없다. 이런저런 소문은 들려오지만…. 사실 고은 시인 뿐 아니라 진보 쪽이 전반적으로 비슷한 문제가 있다. 70~80년대 독재와의 싸움, 다시 말해 남성적인 것들이 충돌하다 보니 더 남성적으로 무장하고자 했다. 소위 ‘큰 일 하는 남자’라는 레토릭, 그 과정에서 여성은 쾌락의 대상이었다. 성녀든 창녀든 여자는 그렇게 소비됐다. 그 맥락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비난받아야 한다. 전근대적 관습이 이어져 오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보 갱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진보 갱생이라니.
“사실 갱생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세대가 나오면 된다.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지는 못할 망정 방해물은 되지 말아야 할텐데 현실은 이 지경이다. 페미니즘은 어렵다. 단순히 양성평등을 주장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최소 1000년을 끌어온, 그리고 근대 이후 더 강요돼온 오랜 가부장제가 어디 그리 쉽게 해결 되겠나.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존립 방식이 비주류를 만든다. 착취하고 차별하면서 존립하는 구조다. 19세기 불거진 노동자 착취는 이젠 문제점이 드러났고 어느 정도 자본과 동행하는 상태가 됐다. 이제 가장 차별받는 집단이 여성이다. 가부장 기득권이 지난 1000년의 오류를 인정하고 완전히 자기를 바꿔야 한다.”
 
기득권이 스스로 내려놓을 리 없는데.
“버티고 유지하려고만 하면 다른 많은 부분에서 역사가 보여줬듯이 당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혼이 나고서야 하게 된다.”
 
진보 정권이라 진보 진영 인사에 대한 폭로가 오히려 가능한 측면이 있지 않나.
“촛불집회는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국정농단은 마중물일 뿐이었고 지난 20여 년의 여러 변화 와중에 누적된 문제들이 표출된 것이다. 억압받았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이 말하는 적폐와는 다른 의미의 적폐에 대한 저항을 한 것이다. 산업화 세력 뿐 아니라 민주화 세력의 국가 점유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그런 힘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기에 억압받은 자를 억압할 수는 없다는 측면에서는 분위기가 좋다고도 볼 수 있다.”
 
집권 세력은 기득권 운동권 세력인데.
“그걸 보여주는 지점이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다. 거기서 부딪힌다. 만약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정권을 잡았다면 탁현민을 기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내보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한계다. 미투운동이 아직 정치권력의 문제로 비화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정치화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권이 시련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김명인(60) 주간은 …
창비로 등단하고 고은 등이 속한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이사를 했음에도 인맥으로 작품을 칭찬하는 ‘주례사 비평’을 비롯한 문단 내 폐습과 권력관계를 비판해 갈등을 빚은 문학평론가. 지난해 ‘시작’ 봄 호에 발표한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남성 작가들은 전부 잠재적 용의자거나 최소한 방조자였다’며 ‘문단이라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해체되어야 할 때’라고 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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