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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천' 초석 다진 최기선 전 인천시장 별세...향년 73세

중앙일보 2018.02.28 19:07
 인천시 마지막 관선 시장이자 초대 민선 시장을 지낸 최기선 전 시장이 2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3세.
 
전 인천시장

전 인천시장

 
경기도 김포 출생인 고인은 보성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고인은 1979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외신 담당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외신을 신뢰했던 YS의 ‘귀’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한때 ‘YS의 양아들’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1988년 4월 경기도 부천에서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자신의 정치 이력을 인천시와 함께했다. 고인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관선 7대 인천 시장으로 부임하며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9월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하지만 1995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초대 민선 인천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199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으로 옮겨 2대 민선 인천시장으로 재선에도 성공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새로운 인사에게 시장직 수행의 기회를 넘겨 주고 싶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인천시장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고인이 2012년 12월 서울 정동 달개비식당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의 손을 잡고 있다. 고인은 당시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왼쪽부터 문정수 전 부산시장, 김덕룡 당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문 후보, 최기선 전 인천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

고인이 2012년 12월 서울 정동 달개비식당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의 손을 잡고 있다. 고인은 당시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왼쪽부터 문정수 전 부산시장, 김덕룡 당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문 후보, 최기선 전 인천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

 
2002년에는 3억원의 뇌물수수로 기속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는 등 위기를 맞기도했다. 그러나 2005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한다.  
 
고인은 인천 발전에 기틀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도신도시와 인천국제공항, 인천항 중심으로 발전 전략을 제시한 후 공을 들였다. 2002년에는 직접 송도신도시 투자유치단을 이끌고 미국 뉴욕으로 가 미국 부동산 투자회사로부터 16조원의 외자를 유치했다. 경기도 강화 ㆍ옹진군과 김포시 검단면 편입도 고인의 재임 기간 이뤄낸 성과다. 분규가 끊이지 않았던 선인학원 산하에 있던 인천대를 시립화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회고록 『최기선, 인천시대를 열다』를 출간했다.  
  
인천시는 고인이 지역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을 기려 ‘시민장’에 준하는 예우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발인일인 4일 오전 시청 앞 미래광장에서 영결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베로니카씨와 장남 강수, 차남 강서씨가 있다. 빈소는 길병원 장례식장. 032-460-9402∼3  
  
안효성 기자 hyoza@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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