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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128조 증발···미국을 바꿨던 GE 어쩌다 망가졌나

중앙일보 2018.02.28 06:07
미국의 아이콘 기업 GE, 어쩌다 이 지경까지  
 
126년 역사를 자랑하는 제네럴 일렉트릭(GE)이 걸어온 길은 화려했다. 전구를 만들어 낮시간을 늘렸고, 전자제품은 생활의 편의를 선사했다. 제트엔진은 거리를 무너뜨렸다. X레이 기기는 의사가 환자의 신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진공관은 초창기 컴퓨터의 브레인 역할을 해냈다. 모든 게 GE가 일궈낸 혁신의 성과물들이다.

웰치 회장 시절 문어발식 사업 다각화가 발목
파이낸스에 기댄 성장, 경제위기때 부메랑으로
신임 CEO, 그룹 쪼개는 분사도 불사

GE 그린빌 공장에서 직원들이 가스터빈을 점검하고 있다. 그린빌 공장은 3D프린터, 로봇, 클라우드 시스템 등을 적용한 스마트 공장이다.

GE 그린빌 공장에서 직원들이 가스터빈을 점검하고 있다. 그린빌 공장은 3D프린터, 로봇, 클라우드 시스템 등을 적용한 스마트 공장이다.

 
위기는 2001년부터 서서히 몰아쳤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곪았던 상처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얘기한 대로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GE다.
 
 2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GE 주가는 장중 한때 14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다. 2008년 경제위기를 딛고 일어서려 바둥거리던 2010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마침 이날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서 GE는 이사회 구성원을 기존 17명에서 12명으로 대폭 축소하고 면면도 대폭 교체했다. 이날 주가는 소폭 반등해 14.65달러에 장을 마쳤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11월 이후 지난달 말까지 다우 지수는 41% 상승했지만 GE는 46% 떨어졌다. 반 토막에 가까운 수준이다. 1200억 달러(약 128조원)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미국의 아이콘 기업 GE는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망가졌을까. 월가에서 만나본 많은 전문가는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진 조직이 역풍을 맞으면서 찢어진 돛을 앞세운 격이라고 표현했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에 이어 지난해 10월 새로운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 오른 존 플래너리는 투자자와 사내 매니저에게 보내는 일성으로 “복잡성이 우리를 헤쳤다”고 말했다.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해진 조직이 결국 어디서 물이 새는지 알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배를 가라앉게 했다는 것이다.  
 
플래너리 CEO는 좀더 작고 간단한 조직으로 GE를 다시 만들어내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룹을 쪼개는 분사도 불사하고 있다. 일단 이사회 구성원 수를 5명 줄인게 출발점이다.
 
GE가 문어발식 경영으로 방대해진 배경엔 1981년부터 2001년까지 CEO로 재임한 잭 웰치 회장의 역할이 컸다. 전구, 기관차 사업을 발판삼아 세계 최대 제조업 공룡으로 성장했지만 금융과 미디어 사업으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거듭했다.
GE의 전 CEO 잭웰치(1981-2001). [중앙포토]

GE의 전 CEO 잭웰치(1981-2001). [중앙포토]

 
 뉴욕대 스턴 비즈니스스쿨의 로버트 살로몬 교수는 “1990년대 웰치 회장은 월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면서 “그런 접근 방법은 당시 다른 회사들에서 이미 실패로 드러난 방법이었다”고 지적했다.
  
불량품 제로에 도전하는 6시그마 운동을 앞세워 제조 현장을 치밀하게 관리하는데 성공했지만 사실은 월가의 금융산업 발전과 함께 파이낸스 분야에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어렵게 돈버는 제조업에 비해 금융업은 보다 손쉽게 더 큰 돈을 벌어들이면서 GE의 몸집은 날로 커졌다.
 
1981년 16억5000만 달러에 달하던 GE의 매출은 2000년 127억 달러로 10배 가까이 뛰었다. 반면에 GE 구성원의 수는 같은 기간 40만4000명에서 31만3000명으로 대폭 줄었다. 생산성을 쥐어 짜낸 것이다.
 
GE의 파이낸스 사업부는 미 정부에서 달러를 빌려 세금이 싼 해외에서 좀더 효율적으로 제조업을 영위했다. 돌아오는 이익은 각종 파이낸스 기법을 활용해 해외 재투자에 쓰였다. 이를 통해 최대 전성기를 누린 GE의 시가총액은 1981년 140억 달러에서 4000억 달러로 크게 뛰었다.
 
파이낸스에 지나치게 기댄 성장은 이멜트 회장이 취임한 2001년부터 서서히 이상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9ㆍ11테러가 발생하면서 주가가 3분의1로 추락했다. 위기감을 느낀 월가가 이멜트 회장에게 무슨 일이든 해보라는 압력을 가했고, 이멜트 회장은 거액을 들여 기업인수에 나섰다.
제프리 이멜트 전 GE 회장(2001-2017). [중앙포토]

제프리 이멜트 전 GE 회장(2001-2017). [중앙포토]

 
55억달러를 들여 비벤디 유니버설의 엔터테인먼트 자산을 사들였고, 95억달러로 영국의 메디컬 이미징 업체인 애머샴을 인수했다. 이밖에도 스페인어 시장을 노리고 인수한 통신업체 텔레문도, 부동산 모기지업체인 WMC 모기지, 빌딩경호업체 에드워드 시스템스 등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GE의 식구로 편입됐다.
 
문제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주고 샀거나, 기존의 GE 사업부와 시너지 효과를 내기 힘들 정도로 연관성이 없는 기업이 많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2008년 세계경제위기가 터지면서 모기지업체가 망가지고, 파이낸스 사업부는 된서리를 맞았다. 결국 연방정부로부터 1390억 달러를 빌리면서 연명할 수 있었다. 멜리어스리서치의 스캇 데이비스 회장은 “이때부터 GE가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오일과 천연가스 가격이 떨어지면서 에너지 사업부의 마진이 박해졌다. 없는 형편에 100억달러를 들여 프랑스 알스톰사를 사들여 천연가스 발전사업을 키우려 했지만, 이익이 전년에 비해 45% 추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멜트 회장이 “할 수 없다, 잘 안 되고 있다”는 실패담을 귀에 담기 싫어하면서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각종 문제를 가렸다고 분석했다. 이멜트 회장은 “GE는 강력한, 매우 강력한 기업”이라고 역설하면서 모든 문제를 희망적으로 보기를 좋아해 현실과 괴리를 키웠다는 설명이다.
 
또 GE가 자랑하는 뉴욕주의 크로톤빌 연수원의 교육방식도 문제로 떠올랐다. 크로톤빌에서 “모든 문제는 매니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으면서 중간관리자급 이상을 키웠는데, ‘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이 문제 해결의 기회를 놓치게 하였다는 지적이다.
존 플래너리 GE 회장(2017- ). [중앙포토]

존 플래너리 GE 회장(2017- ). [중앙포토]

 
이에 대해 플래너리 신임 CEO는 “이제 GE 내에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마법사는 없다”고 말해, GE 내 교육방식이나 조직문화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 것으로 보인다.
 
중책을 맡은 플래너리 CEO의 별명은 ‘수선맨(Fix-it man)’이다. GE캐피탈 출신으로, 헬스케어사업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성공하면서 붙여졌다. 지금으로선 항공ㆍ전력ㆍ헬스케어라는 세 가지 핵심사업에 전념할 뿐이다. 그러나 자신이 몸담았던 GE캐피탈에서 지난해 4분기 62억 달러의 큰 손실이 발생했고, 현재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현금이 쪼들리는 상황에 직면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 보인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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