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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못 땄어도 좋아...평창서 기억할 '아름다운 개척자들'

중앙일보 2018.02.28 05:00
12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슬라이딩센터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가나 스켈레톤 대표 아콰시 프림퐁이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12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슬라이딩센터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가나 스켈레톤 대표 아콰시 프림퐁이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메달을 따지 못해도, 꼴찌로 들어와도, 끝까지 최선을 다 한 선수들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선수들은 메달리스트 못지 않은 '또다른 영웅'들이었다.
 
지난 25일 폐막한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선 메달을 딴 스타 선수들 못지 않게 각광받은 선수들이 있었다. 성적을 떠나서 평창올림픽을 통해 의미있는 첫 걸음을 내딛은 선수들이다. 92개국 2920명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평창올림픽에서 국내외 '개척자들'은 남다른 개척정신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가나 스켈레톤 국가대표 아콰시 프림퐁. 평창=김지한 기자

가나 스켈레톤 국가대표 아콰시 프림퐁. 평창=김지한 기자

지난 15일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스켈레톤 경기에서 노란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3차 주행을 마친 뒤, 흥겹게 춤을 추면서 트랙을 빠져나갔다. 아프리카 가나의 최초 겨울올림픽 선수, 아콰시 프림퐁이었다. 성적은 30명 중 최하위였지만 그의 도전은 대회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미국진공청소기 업체 외판원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 육상, 봅슬레이를 거쳐 스켈레톤 선수가 됐다.
 
평창행을 확정짓고도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프림퐁은 이달 초 한국 기업가가 운영하는 가나의 한 이동통신기업 지원을 통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경기에서 입을 벌리고 어금니를 드러낸 사자의 사진이 담긴 헬멧을 착용했던 프림퐁은 "사자로부터 토끼가 빠져나오는 듯 하게 만든 것이다. 이제 나는 드디어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사자 입에서 뛰쳐나온 토끼가 됐다"며 웃어보였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여자 선수들. 왼쪽부터 은고지 오누메레, 세운 아디군, 아쿠오마 오메오가. 평창=김지한 기자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여자 선수들. 왼쪽부터 은고지 오누메레, 세운 아디군, 아쿠오마 오메오가. 평창=김지한 기자

 
여자 봅슬레이에선 나이지리아와 자메이카 선수들이 눈길을 모았다. 나무 썰매를 타면서 겨울올림픽 출전 꿈을 키웠던 나이지리아의 세언 아디군과 은고지 오누메레, 아쿠오마 오메오가는 선두에 7초15 차 밀린 최하위(20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은 눈조차 보기 힘든 나이지리아의 첫 겨울올림픽 출전 선수로 기록된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해했다. 아디군은 "우리는 나이지리아와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한 준비작업을 했다"고 자평했다. 1988년 캘거리 대회 때 남자팀 이후 30년만에 봅슬레이에 처음 여자팀을 파견한 자메이카는 재즈민 펜라토르 빅토리안-캐리 러셀 조의 분투가 인상적이었다. 성적은 나이지리아보다 한 계단 위인 19위. 빅토리안은 "여기서부터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지난 1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케냐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사브리나 시마더. 평창=김지한 기자

지난 1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케냐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사브리나 시마더. 평창=김지한 기자

17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예선 경기에서 싱가포르 샤이엔 고가 트랙을 돌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17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예선 경기에서 싱가포르 샤이엔 고가 트랙을 돌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알파인 스키에선 케냐의 사브리나 시마더가 자국 여자 선수론 처음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여자 수퍼대회전에서 38위에 올라 가능성을 남겼다. 시마더는 "세계의 많은 나라가 올림픽으로 이렇게 함께 하는 게 무척 즐겁다"고 말했다. 에리트레아는 남자 대회전에 섀넌 아베다가 출전해 출전 선수 85명 중 61위에 올랐고, 코소보의 알빈 타히리는 56위로 분전했다. 둘 다 조국의 첫 겨울올림픽 출전 선수로 기록돼 의미있는 성적을 남겼다.
 
빙상에선 싱가포르의 샤이엔 고가 쇼트트랙 여자 1500m 예선에 출전해 싱가포르 첫 겨울올림픽 출전 기록을 세웠다. 예선 탈락했지만 샤이엔 고는 "싱가포르에 돌아가서도 훈련을 계속해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꼭 출전하겠다"고 말했다. 겨울올림픽 약소국 선수를 육성하기 위한 강원도의 '드림 프로그램'을 받았던 말레이시아 피겨스케이팅 남자 선수 줄리안 즈제 이(21)는 남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 25위에 그쳤지만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동계스포츠가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20일 오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노르딕복합 라지힐 개인 10km 경기에서 한국 박제언이 결승선을 통과한 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20일 오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노르딕복합 라지힐 개인 10km 경기에서 한국 박제언이 결승선을 통과한 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한국에서도 첫 올림픽 종목에 도전한 설상 종목 선수들이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함께 겨루는 종목인 노르딕 복합에선 박제언(국군체육부대)이 빛나는 도전을 펼쳤다. 비록 노멀힐에서 47명 중 46위에 오른 데 이어 라지힐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렀지만 국내 유일의 노르딕 복합 선수로서 소중한 도전을 펼쳤다. 박제언은 "포기하지 않겠다. 평창이 끝나면 힘든 시간이 되겠지만 시작한 김에 열심히 해서 끝을 보겠다"고 말했다. 
 
15일 오전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프리스타일 에어리얼 예선에서 한국 김경은이 점프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15일 오전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프리스타일 에어리얼 예선에서 한국 김경은이 점프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대한민국 정소피아가 17일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여자 4차 주행을 마친 후 미소짓고 있다. [평창=뉴스1]

대한민국 정소피아가 17일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여자 4차 주행을 마친 후 미소짓고 있다. [평창=뉴스1]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에어리얼의 김경은도 '아름다운 꼴찌'로 남았다. 출전 선수 25명 중 최하위였지만 그는 "에어리얼 선수라는 자부심은 항상 갖는다. 1호라는 이름을 달고,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올림픽을 모국에서 했다. 나를 비롯해 후배들이 에어리얼 종목을 알아서 많이 도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스키점프의 유일한 여자 선수인 박규림(상지대관령고)도 최하위였지만 첫 올림픽 출전으로 족적을 남겼다. 여자 스켈레톤 15위에 오른 정소피아(강원연맹)는 "4년 뒤에는 '톱 3'를 노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열악한 환경에 첫 술부터 배부를 수 없지만 이들은 평창에서 굵직한 이정표를 세우고, 4년 뒤 더 빛나는 도전을 기약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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