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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이 새 바람 일으켜주길 … ” 60년 옹기 장인의 바람

중앙일보 2018.02.28 02:00 종합 20면 지면보기
배영화 옹기 장인이 외고산 옹기마을 영화요업에서 찰흙으로 식초병을 만들고 있다. 작업에 온통 신경을 쏟아 미간에 절로 주름이 진다. 수제 옹기는 숨구멍이 있어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최은경 기자]

배영화 옹기 장인이 외고산 옹기마을 영화요업에서 찰흙으로 식초병을 만들고 있다. 작업에 온통 신경을 쏟아 미간에 절로 주름이 진다. 수제 옹기는 숨구멍이 있어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최은경 기자]

“젊은 사람이 옹기업에 많이 뛰어들어 마케팅·판매 부문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울산시 무형문화재 배영화 장인
일본·중국과는 다른 고유의 비법
장 담는 문화 사라지면 옹기 소멸
전통 배우려는 청년 지원책 필요

올해로 60년째 전통 옹기를 만들고 있는 배영화(77) 장인(울산시 무형문화재)은 쇠퇴해가는 옹기산업을 안타까워했다. 옹기는 크게 질그릇(진흙으로 만들어 구운 그릇)과 오지그릇(진흙으로 만들어 유약을 입혀 구운 그릇)으로 나뉜다. 요즘에 생산되는 것은 대부분 오지그릇이다. 장독·젓갈독·질시루·주전자·술병·약탕기 등 다양하게 쓰인다. 플라스틱·유리·스테인리스 그릇에 밀려나면서 지금은 많이 쇠퇴했다.
 
지난 20일 오후 울산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 옹기마을을 찾았을 때 배 장인은 발로 물레를 돌리며 가래떡처럼 생긴 반죽을 항아리 모양으로 쌓고 있었다. 식초병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외고산은 산이 아니라 고산리(里)의 외곽에 있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1960~70년대 이곳의 옹기업 종사자가 400명이나 되면서 전국 옹기의 70%를 생산했다. 지금도 7명의 장인이 전국 옹기의 절반 이상을 생산한다.
 
배영화 장인의 옹기 제작법은 이렇다. 경북 경주·영천 등에서 가져온 찰진 흙을 발로 짓이겨 가래떡처럼 길게 뭉친다. 이를 쌓아 올려 도구로 두드리고 다듬는다. 이어 손잡이·주둥이 등을 붙여 성형을 하고 유약을 입혀 20일 정도 말린다. 말린 옹기는 길이 50m 정도의 전통 가마에서 1200도의 불에 5박 6일 구워내면 완성된다. 배 장인은 매일 10시간씩 옹기를 만든다. 작은 그릇이나 소품까지 더하면 1년에 옹기 5000~6000개를 만든다. “옹기는 구멍이 있어 숨을 쉬어요. 그래서 발효식품인 장·효소를 담아놓으면 썩지 않고 숙성되지요. 깨져도 땅에 두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요.”
 
배 장인은 10대였던 1958년 옹기마을을 조성한 고(故) 허덕만 장인에게 처음 옹기 제작을 배웠다. 처음 2~3년 동안 잡일을 하며 옹기를 배울 때는 먹고 살 기술을 익힌다는 생각이었다. 평생 옹기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온몸의 통증을 참아가며 종일 흙과 씨름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완전히 몰입하니 옹기에 미치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내가 만든 옹기를 평생 쓴다고 생각하면 보람을 느낍니다.”
 
69년 영화요업을 차린 배 장인은 “써 본 사람은 안다”며 수작업을 고집한다. 1990년대 사업이 번창해 도공 10명을 두고 틀로 찍어 대량 생산한 적이 있었지만 보증을 잘못 서 공장 등 많은 재산을 잃었다. 도공들은 모두 떠났지만 그는 물레를 놓지 않았다. 전통 기법으로 옹기를 제작한다는 사실도 인정받았다. 그는 전국은 물론 중국·일본·이스라엘 등 외국에서 강연하고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배 장인은 “장독에 장을 담아 먹는 우리 고유문화가 없어지면 옹기도 사라진다”며 “옹기 만드는 법이 일본·중국과 다른 고유의 기법인데, 이런 고유의 전통을 계승하지 않으면 민족정신을 지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달항아리 모양의 식초병 성형이 끝났다. 그제야 허리를 편 배 장인은 “힘이 있는 한 물레를 돌리겠다”며 “전통 옹기 제작 기술을 보전하기 위해 옹기를 배우려는 젊은이를 지원하는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10월 개인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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