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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글로컬] 디지털 시대에 … 대구시의 황당한 ‘선착순 행정’

중앙일보 2018.02.28 01:59 종합 20면 지면보기
김윤호 내셔널부 기자

김윤호 내셔널부 기자

‘새벽 줄서기에 접수 대행 대리인까지 등장, 출근 시간 차량 정체 현상도-.’ 디지털 시대 아이돌 가수 공연장 앞에서도 보기 힘든 이런 ‘아날로그’한 장면이 최근 대구시청(별관) 앞에서 벌어졌다. 시청 앞에 시민 수천 명이 ‘장사진’을 이루면서다. 이유는 황당하게도 대구시의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 사업 신청 때문이었다.
 
사연은 이달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시는 보도자료를 내고,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 지원 신청을 받는다고 했다. 미세먼지 발생 원인인 자동차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환경 정책 사업이라고 강조하면서다. 세금 32억원을 배정해, 지난 22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 신청을 받아 노후 경유차 2000대를 대구에서 없애겠다고 했다.
 
문제의 발단은 인터넷 신청이 아니라 아날로그 한 선착순 신청 방식이었다. 시청에 먼저 오는 순서대로 신청을 받아 중량 3.5t 미만인 경유차는 최고 165만원, 대형차는 최고 770만원까지 주겠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차를 돈까지 받고 폐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신청 첫날인 22일 시청 별관 앞엔 신청자가 한꺼번에 몰렸다. 대구시 관계자는 “오전 5시쯤엔 이미 긴 줄이 만들어져 장사진을 이뤘고 오전 10시가 넘어선 번호표로 만든 2000대 폐차 신청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고 했다. 신청자가 몰리면서 출근 시간 시청 별관 주변인 신천대로 등엔 심한 차량 정체 현상이 벌어졌다. 경찰관들이 출동해 교통정리를 해야 했을 정도다.
 
단순하게 폐차 대수만 고려한 신청 자격도 문제였다. 개인별 폐차 신청 대수 제한 없이, 대리인 신청까지 받아들였다. 익명을 원한 한 시민은 “5만원, 10만원 돈을 받고 접수를 대행하는 대리인이 등장하고, 폐차 차량을 여러 대 모아 한꺼번에 수십여대를 혼자 신청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며 “시민 세금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일부 업자들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고 불만스러워했다.
 
지금도 대구시청 해당과엔 “왜 신청을 할 수 없느냐. 신청 날짜가 아직 남지 않았느냐”는 등의 민원이 하루 200통 이상 폭주하고 있다.
 
디지털 접수를 하면서 간단히 대리 신청 불가, 차량 신청 대수 제한만 설정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선착순이라는 아날로그 한 방식이 결국 미세먼지 절감 등 칭찬받을 시의 환경 정책 사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셈이다. 대구시 측은 “이만큼 신청자들이 몰릴지 예상치 못했다”며 다음부턴 신청 방식을 손질하겠다고 했다. 이럴 때 초등학교 1학년도 아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쓴다.
 
김윤호 내셔널부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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