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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코피’ 다음은 ‘코마’ 작전?

중앙일보 2018.02.28 01:5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조건’이 핵심인데, 청와대는 조건이 없었다고 한다. 찜찜한 건 그다음 대목이다. “(김영철은)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고 했다.”
 

북·미 모두 북·미 회담 기피, 시간이 없다
남·북·미 3국 특사 머리 맞대는 파격 필요

여기서 ‘여러 차례’가 뜻하는 바는 뭘까. 북한은 그동안 “우린 핵보유국”이라며 미국과의 군축 대화에 응할 뜻을 밝혀 왔다. 한마디로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는 건 새로운 비핵화 대화가 아니라 기존에 요구해 왔던 군축 대화란 말이다. 무서울 정도의 일관성이다.
 
미국은 어떨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일관돼 있는 듯 보인다. 첫째는 메시지 혼돈의 일관성. 취임 1년 동안 일관되게 트럼프 따로, 펜스 부통령 따로, 국무부 따로, NSC 따로였다. 올림픽을 전후해서도 그랬다. 펜스의 김영남·김여정 무시→귀국길 인터뷰에서의 유화 발언(“북한이 원하면 대화할 용의 있다”)→틸러슨 국무장관의 대화 러브콜(“김정은은 우리와 함께 일해야 할 사람”)→“김여정은 악의 가족 패거리”(펜스)→트럼프의 군사 위협(“제재 효과 없으면 ‘거친’ 제2 단계로 간다”)은 불과 보름 사이의 반전 연속극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기 쉬운 진짜 일관성은 오락가락 메시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비핵화가 협상의 전제”란 사실이다. 설령 ‘탐색적 대화’를 하더라도 협상으로 전환하려면 비핵화가 필수 전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엄포를 놓고, 우리가 수위를 낮추려 해도 여기엔 타협의 여지가 없다.
 
또 하나의 일관성은 “여차하면 군사 옵션을 쓴다”는 것. 1년 이상 똑같은 소리를 듣고 있으면 “또 그 소리~”라고 넘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향후 그 가능성은 반비례로 커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 유사시 작전지휘권을 갖는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 지난 9일 호주 대사로 지명됐다. 부임 예정은 오는 6월. 그가 최근 워싱턴 해군기지 ‘네이비 야드’ 공관에서 연 소규모 자축 파티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대북 강경파인) 당신이 태평양사령관에서 빠진다는 건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이 줄어든 것 아니냐?”(지인)
 
“음. 그럴까? 난 생각이 다르다. 내가 없어도 모든 게 가능하게 이미 준비가 다 끝났다는 뜻이다.”(해리스 사령관)
 
트럼프가 말한 ‘거친 2단계’는 ‘예고편’처럼 들리지만 실은 이미 완성형인 것이다. 트럼프는 애초부터 ‘코피’ 따위가 아닌 ‘코마’(혼수상태)를 상정한 전면적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불신과 적의가 넘치는 미국과 북한. 그들의 강철같은 일관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선 특단의 파격이 절실하다.
 
중·장기전 돌입이 불가피한 ‘탐색적 대화’ 트랙으로 가기에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의 인내심이 고갈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남북대화 따로, 북·미 대화 따로 끌고 가기엔 동력도, 동인(動因)도 부족하다. 게다가 북한과 미국 모두 북·미 단독 회담을 주저하는 건 올림픽을 통해 확인됐다. 그렇다면 한국이 참여하는 남·북·미 3자회담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우리도 북·미 간 의사결정에 개입할 공간을 만들어내는 묘수가 될 수 있다. 2014년 박근혜-오바마-아베 3자가 위안부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댄 것처럼 말이다. 전권을 부여받은 3국 특사가 평양과 서울, 워싱턴을 오가며 끝장 담판을 벌인다면 포괄적 북핵 해결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이 호텔에 틀어박힌 김영철을 찾아 2박3일 머리를 맞댔다니, 내놓을 성과가 주목된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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