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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코피 작전이 북한의 급소를 찔렀다”

중앙일보 2018.02.28 01:49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얼마 전 정부 외곽 조직에서 최고의 대북 전문가들을 모아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는 작업을 은밀하게 진행했다. 북한이 올 들어 남북 대화로 급변침한 이유를 살피기 위해서다. 김정은은 임신 중인 여동생 김여정을 평창올림픽에 보냈고 남북 정상회담 카드까지 던졌다. 그만큼 절박한 배경이 있는 것이다.
 

북한 급변침은 코피 작전 공포 탓
남측을 미 공격 방패막이로 활용
압박 강화와 트럼프의 꽃놀이패
우리도 비핵화 목표 잊지 말아야

일부 전문가는 경제제재의 효과를 거론했다. 지난해 북한의 석탄 생산량은 전년 대비 39% 줄었고 대중 수출은 66%나 줄었다. 달러·위안화가 결제 수단으로 쓰이고 장마당이 활성화된 북한 경제엔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기를 쓰고 비축 물량을 푼 탓인지 2월 현재 북한 장마당의 환율·쌀값·휘발유 가격은 매우 안정돼 있다. 경제제재만으론 북한의 급변침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전문가들은 9~10월이 돼야 유엔제재로 북한 경제가 발작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봤다.
 
모임 참석자들은 북한의 경제보다 오히려 안보 불안을 공통분모로 꼽았다. “북한이 미국의 군사옵션에 진짜 공포를 느꼈다”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대목은 지난해 12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북한의 급변 사태 때 핵무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 논의 중”이라는 발언이었다. 뉴욕타임스는 “틸러슨이 중국과 확약한 최고의 군사기밀을 발설했다”고 보도했다. 정작 놀라운 것은 중국이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 등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주저 말고 한·미와 북한의 급변 사태를 논의해야 한다”며 부채질을 했다. 김정은은 기겁할 수밖에 없다. 화염과 분노, 코피 전략 같은 도널드 트럼프의 위협이 빈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피 전략이 섬뜩한 이유는 북한의 치명적인 급소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주체사상 특유의 ‘수령론’을 저격한 것이다. 북한 『조선말 대사전』에 따르면 수령은 절대적이며 신성불가침의 존재다. 수령을 중심으로 결속해야 사회정치적 생명을 얻게 된다는 조물주나 다름없다. 그런데 코피 작전은 이런 수령과 지휘부를 도려내거나 무력화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 작전을 감행하면 김정은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바로 대응에 나서면 북한은 완전 파괴된다. 대응하지 않으면 약점을 잡혀 내부적으로 붕괴 위기에 몰린다. 북한의 최고 목표인 수령 체제 유지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김정은으로선 기를 쓰고 미국의 군사행동 자체를 막을 수밖에 없다.
 
이철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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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것을 걸고 한반도 전쟁을 막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광복절에는 “우리 동의 없이 군사행동은 안 된다”며 가로막았고, 지난해 12월엔 “(미국의) 선제타격은 결단코 용납 못 한다”며 선을 그었다. 김정은의 귀에 속속 들어올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올리브 가지를 흔드는 것은 문재인 정부를 통해 미국의 군사옵션을 막기 위한 포석”이라고 지목한다.
 
국내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를 비난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정원의 핵심 관계자들이 전한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도리어 북한이 남측을 통해 미국과 간접 대화하고 싶어 하는 낮은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북·미 대화 중재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제거하고 미국은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타협책이다. 이럴 경우 북한은 ‘핵을 가진 평화’의 위치에 서게 된다. 미국의 트럼프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미 본토가 북핵에서 안전해졌다. 내가 해냈다!”고 큰소리칠 수 있다. 중국은 “쌍중단 요구가 먹혀들었다”며 만족해하고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았다”고 자랑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핵무기는 묘한 절대무기다. 역사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어김없이 국지도발을 통해 지역 주도권 장악을 시도했다. 1964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한 뒤 69년 소련과 우수리강에서 국경분쟁을 벌였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90년대 핵실험에 성공한 뒤 카슈미르 분쟁이 격화됐다. 북한도 핵무장을 완성하고 나면 무력을 과시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지금은 남북 정상회담이든 북·미 대화든 북핵을 제거하는 것이 본질이다. 꽃놀이패를 쥔 트럼프는 강경한 입장이다. 비핵화 명분이 먹혀드는 만큼 북한이 굽히고 들어오도록 상당 기간 대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북한이 핵을 가진 이후에는 다루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칫 북한이 핵무기로 위협하며 서해 5도 침범 등 국지전을 일으키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북·미 대화를 중재하면서도 비핵화 전까지는 미국과 스크럼을 짜고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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