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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평창 핵심은 한·미동맹 … “오해·불신 푸는 게 최우선”

중앙일보 2018.02.28 01:41 종합 5면 지면보기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오른쪽 둘째)이 27일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을 나서고 있다. 김영철은 2박3일간의 방한 기간에 우리 당국자들과 최소 다섯 차례 공식 접촉했지만 접촉 사진과 동영상은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오른쪽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 [연합뉴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오른쪽 둘째)이 27일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을 나서고 있다. 김영철은 2박3일간의 방한 기간에 우리 당국자들과 최소 다섯 차례 공식 접촉했지만 접촉 사진과 동영상은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오른쪽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 [연합뉴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27일 기자들과 만나 북·미 대화에 대해 “아직은 (북·미 간에) 직접적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우리는 북측과 신뢰 관계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이 전날 정부 당국자들과 논의한 내용에 대해 “북·미 대화를 위한 여러 가지 조건과 어떤 단계를 거쳐야 될지 얘기들이 오갔다. 우리는 중매를 서는 입장에서 북측의 대화 파트너에게 신뢰를 쌓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이 북·미 대화 중재하려면


청와대 “북측과 신뢰 잘 만들어야”
 
이 관계자의 발언은 한·미 간엔 이미 입장이 일치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 카드까지 던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의도에 대한 한·미 간 해석은 동상이몽에 가깝다. 평창 1라운드의 핵심이 북한 끌어내기였다면 2라운드에서는 한·미 동맹 관리를 중심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의 한·미 동맹 떠보기는 평창올림픽 내내 계속됐다. 육로로 내려와도 되는 예술단을 굳이 대북제재 대상인 만경봉 92호로 보내고, 돌아갈 기름이 있으면서도 한국에 급유 요청을 했다. 유엔 회원국 입국이 금지된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굳이 개회식 참석 대표단에 포함했다. 폐회식 대표단장으로 김영철을 보낸 것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의 이런 요청을 한국은 전부 수용했다. 이런 조치들이 궁극적으로는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국의 의심은 커졌다. 최근 미 정부 인사들을 만난 외교소식통은 “워싱턴 내에서 ‘한국 정부가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한·미 동맹은 다소 무시할 수 있는 종속변수로 보고 있다’는 불편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한국이 북한의 의도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드러난 현상을 근거로 판단하는데 미국이 보기에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변한 게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한국, 동맹 무시하나” 의심
 
미국이 굳이 평창올림픽 폐회식 이틀 전 해상 차단에 중점을 둔 최고 강도의 독자제재를 발표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제재 발표가 올림픽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정부 예상(2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국회 외통위 답변)도 빗나갔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목적이 제재 훼손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에 올림픽이 끝나기 전 더 강한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확실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26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의 오찬에서 김영철이 한 발언에서도 북한의 입장은 그대로라는 점이 드러났다. 김영철은 “우리는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김영철의 발언에서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었고, 북·미 대화와 비핵화는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그간 여러 차례 용의를 밝힌 북·미 대화는 비핵화 대화가 아니라 핵군축 대화다. 김영철의 발언에는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전제조건이 이미 깔려 있는 셈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27일 논평에서 “미국이 절대적인 핵 우세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허황한 망상을 털어 버리고 핵 포기에 나선다면 세계의 비핵화 문제도 쉽게 풀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역시 미국과 상호 핵확산 위협을 줄여 나가는 군축 대화를 하겠다는 뜻이다.
 
북·미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사전 조치를 놓고도 한·미 간 온도 차가 감지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류옌둥(劉延東)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전제를 100% 깔고 가면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대화조건에서 서로 공식 양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대화가 더 순조롭지 않겠느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북한이 대화를 원하고 있으나 우리는 오직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만 대화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미 행정부 내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퇴임하는 것도 심상치 않다는 관측이 외교가에서는 나온다.
 

북의 ‘대화’는 비핵화 아닌 핵군축
 
전문가들은 정부가 목표로 세운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의 선순환을 달성하려면 한·미 동맹 사이의 오해나 불신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남·북·미 삼각형을 받치는 밑변은 한·미 동맹이어야 하고 동맹이 단단히 유지돼야 남북 관계 개선도 항구적으로 된다”며 “남북 관계를 제재나 압박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처럼 생각하면 곤란하고, 북핵이 우리를 향할 수도 있다는 위협 인식하에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의 대화 용의를 제재로 인한 고통의 결과로 본다면 압박을 더 가해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끌어내겠다고 판단할 것이고, 한국과 접근법 차이가 생길 수 있다”며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대화로 나올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냉철히 판단해 향후 몇 달간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핵화의 핵심 요소인 인센티브를 대부분 미국이 쥐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부터 어느 단계에서 어떤 인센티브를 북한에 제공해 비핵화로 견인할 수 있을지 한·미 간에 긴밀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지금의 대화 모멘텀이 지속되려면 굉장히 정교한 로드맵과 프로세스가 준비돼야 한다. 매 단계 북한과 미국이 이탈하지 않게 하려면 미국과 공고한 협력을 기반으로 틀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 특사보다 대미 특사 더 급해
 
정부는 평창 동력을 이어 가기 위해 고위급 대북 특사단을 파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대미 특사 파견 등의 적극적 방식으로 미국을 상대로 한 설득작업부터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한 원장은 “우리 정부를 대표하는 인사나 정부에 몸담지 않았더라도 한·미 동맹을 상징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인사 한두 명을 특사단으로 보내 한국의 구상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상당 부분 이를 공유한다는 전제부터 만들어 놓고 북한에 특사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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