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아쉬움 큰 박 전 대통령 재판 … 엄정한 판결 기대한다

중앙일보 2018.02.28 01:29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서 검찰이 징역 30년과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 권한을 사유화해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고 중형 주문 이유를 밝혔다. “헌정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검찰 구형량은 법조계의 일반적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앞서 최순실씨에게 검찰이 25년형을 요청하자 박 전 대통령에게 그 이상이 구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뇌물수수의 공범으로 기소되고 최씨가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통상 이 같은 경우 검찰과 법원이 공무원 신분의 피고인(박 전 대통령)에게 더 큰 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궐석으로 진행돼 실체적 진실 규명에 한계
사실·주장, 불법·무능 구분하는 판결 기대

박 전 대통령은 어제 결심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법원이 구속을 연장하자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며 재판을 보이콧하기 시작했다. 변호인단도 모두 사임해 국선변호인들이 변론을 맡아 왔다. 박 전 대통령은 국선변호인들의 접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변호인이 공소사실과 증언의 사실 여부조차 당사자에게 묻지 못하는 상태로 재판이 진행됐다. 그가 받고 있는 18개 혐의의 시시비비가 재판을 통해 낱낱이 가려지리라는 국민들의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 보이콧 전에도 “나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왜 그토록 최씨에게 이득이 되는 일에 매달렸는지를 국민이나 재판부에 진솔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판은 실체적 진실 규명의 측면에서 허점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법원의 구속 연장이 과연 필요불가결하고 옳았느냐는 따져볼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국민에게 밝히는 전직 국가원수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박 전 대통령이 벗어나기는 힘들다.
 
전직 대통령에게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하는 구형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접한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퇴임한 대통령이 검찰청에 출석하고 법정에 서는 현대사의 비극적 장면은 반복돼 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태우 전 대통령은 17년형을 선고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검찰은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잇따라 부르거나 체포해 조사했다. 조만간 이 전 대통령에게도 소환을 통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 이 땅에는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 없다.
 
비록 박 전 대통령 재판은 피고인 궐석이라는 비정상적 형태로 진행됐지만 판결은 엄정해야 한다. 4월 6일의 선고 때까지 재판부는 확인된 사실과 추측성 주장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불법과 무능도 구분해야 한다. 과도한 증오나 옹호의 여론을 의식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촛불과 태극기로 갈렸던 대립적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국민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역사적 판결을 기대한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