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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겁에 질린 6세 소녀에게 “순교하라”

중앙일보 2018.02.28 00:55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 24일 터키 정의개발당(AKP) 행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군복을 입은 소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아이에게 순교를 언급해 논란이 됐다. [EPA=연합뉴스]

지난 24일 터키 정의개발당(AKP) 행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군복을 입은 소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아이에게 순교를 언급해 논란이 됐다. [EPA=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6살 소녀에게 순교를 장려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집권당 행사서 연설 중 불러올려
SNS “아이를 정치에 이용” 분노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발언은 지난 24일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의 지역 행사에서 나왔다.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하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지자들 속에서 한 소녀를 불러올렸다. 군복을 입고 터키의 특수부대인 ‘마룬 베레’의 베레모까지 쓰고 있던 소녀가 에르도안의 눈에 띈 것이다.
 
현재 ‘마룬 베레’는 시리아 북부 아프린에서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몰아내는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 터키 정부는 YPG를 자국의 쿠르드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 분파 테러조직으로 여긴다.
 
주저하며 연단에 오른 소녀는 에르도안이 양 볼에 뽀뽀를 한 순간부터 울먹이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소녀를 옆에 두고 에르도안은 “이 아이가 순교한다면 터키 국기로 덮일 것”이라고 지지자들을 향해 외쳤다. “아이는 모든 준비가 돼 있다”며 소녀에게 “(순교) 준비가 돼 있지?”라고 거듭 확인까지 했다. 소녀가 일그러진 얼굴로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가운데 에르도안 지지자들은 “우리도 아프린에 데려가달라”며 열광했다.
 
행사 영상은 주말 내내 인터넷을 돌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뒤늦게 확인된 아이의 신원은 올해 6살, 초등학교 1학년인 아미네 티라스. 영국의 BBC 방송은 이 소녀가 왜 군복을 입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트위터 등의 여론은 에르도안 비난 일색이다. 6살밖에 안된 아이에게 순교를 거론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를 정치에 이용한 것, 전쟁을 미화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에르도안은 자신의 손녀에게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분노했다. 명백한 아동학대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 터키 언론들은 소녀가 용기와 단호함을 보였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내내 울먹였다는 사실은 전하지 않았다. 한 신문은 소녀가 에르도안의 팔에 안겨있는 사진을 실으면서, 에르도안의 벌언을 반복해 “소녀는 무엇이든 준비가 돼 있다”는 제목을 달았다.
 
NYT는 “민족주의적 군국주의는 터키의 오랜 문화여서 ‘모든 터키인은 군인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아프린 작전을 시작한 뒤 터키 정부는 전쟁을 지지하는 캠페인에 열을 올리면서 전사자들을 순교자라며 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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