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강찬수의 에코파일

강찬수 기자 사진
강찬수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21세기 밀렵꾼, 유럽 도심 동물원 코뿔소까지 노린다

중앙일보 2018.02.28 00:48 종합 18면 지면보기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 세관에 압수된 코끼리 상아.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 세관에 압수된 코끼리 상아. [연합뉴스]

지난해 3월 6일 한밤중에 프랑스 파리에서 서쪽으로 80여 ㎞ 떨어진 투아리 동물원에 침입자가 있었다. 침입자는 4살 된 흰코뿔소 ‘뱅스’의 머리에 세 차례 총격을 가해 쓰러뜨린 뒤 기계톱으로 잘라낸 뿔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장소·방법 안 가리는 밀렵 실태
파리서 한밤 사육장 침입한 괴한
코뿔소에 총 쏜 뒤 뿔 잘라가
남아공선 연간 1000마리 희생
북한 외교관까지 밀수에 가담

2011년 7월 밤 영국 런던에서 북동쪽으로 100㎞ 떨어진 입스위치 박물관에 도둑이 침입했다. 도둑은 다른 소장품은 그대로 두고 1907년부터 전시돼온 코뿔소 박제 뿔을 훔쳐갔다.
 
10여 년 전부터 유럽의 박물관·골동품상점·경매장 등에서는 코뿔소 뿔 도난사건이 잇따랐고, 급기야 동물원에까지 침입해 코뿔소 뿔을 잘라가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21세기 유럽 한복판에 ‘도시의 사냥꾼’이 출몰하는 것은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밀렵의 또 다른 얼굴이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014년 1215마리의 코뿔소가 밀렵으로 희생됐고, 2015년에는 1175마리, 2016년 1054마리가 희생됐다. 지난해에도 1028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코뿔소. 뿔 때문에 밀렵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립공원 관리 당국이 아예 뿔을 잘라버렸다. [사진 세계자연기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코뿔소. 뿔 때문에 밀렵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립공원 관리 당국이 아예 뿔을 잘라버렸다. [사진 세계자연기금]

밀렵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코뿔소 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밝혀진 적도 없는데 뿔이 암·신경통 치료제로 소문이 났다. 소득이 늘어난 중국·베트남 지역에서는 코뿔소 뿔 1㎏ 가격이 한때 4만5000달러(약 485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WWF가 매년 9월 22일을 ‘세계 코뿔소의 날’로 정한 것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는 코뿔소를 멸종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코뿔소를 마취시킨 뒤 미리 뿔을 제거해 밀렵에 희생되지 않도록 하자”, “코뿔소 뿔에 살충제를 넣어 사람이 아예 먹을 엄두를 못 내게 하자”는 등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많이 내놓는다. 하지만 모든 야생 코뿔소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코끼리 희생도 크다. 2010~2012년 아프리카 전역에서 10만 마리의 코끼리가 희생됐다. 연평균 3만3000마리가 밀렵 된 것이다. 2013년 1월에는 케냐 남동부 차보 국립공원에서는 생후 2개월 된 새끼를 포함해 코끼리 일가족 11마리가 한꺼번에 밀렵꾼에게 희생되기도 했다.
 
밀렵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국제 사회에서는 상아 밀거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코끼리 밀렵을 방지하기 위해 압수한 상아를 불태우고 있다. 2016년 한 해 전 세계에서 압수된 상아도 40t이나 된다.
 
지난달 세계 최대 상아 거래 시장인 홍콩에서도 2021년까지 모든 상아 거래를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홍콩에서 거래된 상아의 90% 이상이 중국 본토로 넘어간다. 상아를 가장 많이 수입해온 중국도 2015년부터 상아 거래가 전면 금지하고 있다.
 
2015년 3월 모잠비크에서 코뿔소 뿔을 밀수하다 적발된 북한 외교관과 태권도 사범의 여권 사본. [연합뉴스]

2015년 3월 모잠비크에서 코뿔소 뿔을 밀수하다 적발된 북한 외교관과 태권도 사범의 여권 사본. [연합뉴스]

남아공 출신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줄리언 로드마이어는 지난해 9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외교관이 코뿔소 밀렵에 관련됐음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에 파견된 외교관이 코뿔소 뿔과 상아 밀수 범죄와 관련됐던 사례가 모두 29건이었는데, 그중 18건에서 북한 외교관이나 북한 여권을 소지한 사람이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5년 남아공 정부는 모잠비크에서 코뿔소 뿔을 밀매하다 적발된 자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을 추방한 적도 있다. 모잠비크 경찰에 체포될 당시 북한 고위 외교관과 태권도 사범의 차량에서 코뿔소 뿔 4.5㎏과 미화 10만 달러가 발견됐다. 직급이 낮은 북한 외교관들은 수입이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데다 평양에 충성자금까지 보내야 하는 사정 때문에 밀렵이나 밀거래에 연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수렵허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수렵허가구역 안에서 수렵 면허를 가진 사람이 정해진 종류와 숫자만큼 돈을 내고 사냥할 수 있다. 그런데도 덫이나 올무(올가미), 공기총 등을 이용한 밀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전북 장수에서는 한 농민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I급 야생동물인 수달 한 마리를 공기총으로 쏴 죽였고, 가죽을 벗긴 뒤 구워 먹은 협의로 입건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1월 이후 전국에서 발생한 야생조류 집단 폐사 32건(사체 633마리)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87.5%인 28건(566마리)에서 살충제 등 농약 성분 14종이 검출됐다. 누군가 새를 잡기 위해 고의로 농약을 묻힌 볍씨를 뿌렸다는 게 환경과학원의 판단이다.
 
국내 밀렵·밀거래 단속 건수는 2000년 819건에서 2012년 480건, 2016년 226건 등으로 줄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 관계자는 “그릇된 보신 문화로 인해 야생동물 밀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지능화되고 전문화된 밀렵·밀거래가 수렵장 개설 기간을 악용해 기승을 부린다”고 말했다.
 
밀렵이 끊이지 않는 것은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이에 환경부도 2013년 7월부터는 상습 밀렵범에 대해서는 반드시 징역형(3년 이하)을 부과토록 하고, 밀렵신고 포상금도 최대 500만원으로 높인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배너

강찬수의 에코파일

이메일 받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