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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210개 막은 신소정 “북한 이봄 ‘일 없습네까’ 걱정”

중앙일보 2018.02.28 00:05 경제 10면 지면보기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골리 신소정. 평창올림픽 5경기에 모두 출전해 상대팀이 날린 236개의 슈팅 가운데 210개를 몸으로 막아냈다. [우상조 기자]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골리 신소정. 평창올림픽 5경기에 모두 출전해 상대팀이 날린 236개의 슈팅 가운데 210개를 몸으로 막아냈다. [우상조 기자]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리자마자 봄이가 제일 먼저 달려왔다. ‘일 없습네까’라고 물으며 걱정해줬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수문장
봄이 가장 먼저 달려나와 안아줘
이별 전날 부둥켜 안고 많이 울어

마스크 아버지 그림 가려야했지만
하늘에서 뿌듯하게 지켜보셨을 것

7년간 끊었던 햄버거 ‘꿀맛 흡입’
포기 않고 도전한 선수로 남고 싶어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골리 신소정(28)이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털어놓은 사연이다. 봄이는 단일팀에서 한달간 한솥밥을 먹었던 북한 골리 이봄(23)을 말한다. 남북단일팀은 평창올림픽에서 5전 전패를 당하며 8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본(세계 8위)에 1-4로 석패했고, 스위스(세계 6위)와 순위결정전에선 0-2로 아깝게 졌다. 국가대표 17년차 문지기 신소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18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5~8위 순위 결정전 1라운드 남북 단일팀 대 스위스 경기. 단일팀의 골리 신소정이 스위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18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5~8위 순위 결정전 1라운드 남북 단일팀 대 스위스 경기. 단일팀의 골리 신소정이 스위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신소정은 평창올림픽 5경기에서 무려 236개 슈팅과 맞닦뜨렸다. 신소정은 그 중 210개를 온몸으로 막았다. 신소정을 가장 걱정해준건 다름 아닌 북한 골리 이봄이었다. 이봄은 26일 북한 선수들과 함께 돌아갔다.
 
신소정은 “헤어지기 전날 봄이, 레베카 베이커(미국) 골리 코치와 함께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눴다. 다시 못 볼것 같아서 부둥켜 안고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신소정은 “봄아, 무릎부상 조심하고 꼭 다시 만나자”고 말했고, 이봄은 “언니도 다치지 말라”고 화답했다. 27일 평창올림픽을 마친 소감을 들어봤다.
 
신소정(오른쪽)이 북한 유수정(왼쪽), 이봄(가운데)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사진 신소정]

신소정(오른쪽)이 북한 유수정(왼쪽), 이봄(가운데)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사진 신소정]

드디어 평창올림픽이 끝났는데.
“훈련을 며칠째 안하니 불안하더니 갑자기 몸살에 걸렸다. 그동안 몸에 안좋을까봐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음식을 멀리 했다. 평창올림픽 기간 선수촌에서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공짜였지만 꾹 참았다. 경기를 모두 마친 뒤 7년간 입에 대지도 않았던 햄버거를 먹었다. 대학교 1~2학년 이후로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 때처럼 꿀맛이더라. 햄버거를 흡입했다(웃음).”
 
매 경기 50개 내외의 슈팅을 막았다. 퍽이 두렵지 않았나.
“두려움은 없었다. 무조건 골을 막아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대회 기간 팬들이 ‘안쓰럽다. 불쌍하다’고 걱정해주시더라. 근데 난 정말 재밌었다. 대회 초반엔 압박감이 심해 내 플레이를 못했는데, 일본과 3차전 이후엔 오히려 슈팅이 많이 날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골리 신소정. 평창올림픽 5경기에 모두 출전해 상대팀이 날린 236개의 슈팅 가운데 210개를 몸으로 막아냈다. [우상조 기자]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골리 신소정. 평창올림픽 5경기에 모두 출전해 상대팀이 날린 236개의 슈팅 가운데 210개를 몸으로 막아냈다. [우상조 기자]

경기 후 통증 탓에 고생하지는 않았나.
“보호대가 있지만 퍽에 세게 맞으면 몸이 붓고 멍이 든다. 뼈에 금이 가고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어릴적 새끼 손가락이 부러진 적도 있고, 쇄골에 금이 간 적도 있었다. 경기가 끝나면 욱신거려서 잠도 잘 안온다.”
 
2007년 일본에 0-29 대패를 당했는데 이번엔 1-4까지 격차를 좁혔다.
“일본의 슛을 다 막고 싶었는데 아쉽다. 사실 일본이 올림픽에서 잘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아시아팀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했다. 우리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만간 일본을 잡고 싶다.”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골리 신소정(왼쪽)이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신소정]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골리 신소정(왼쪽)이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신소정]

북한 선수들과 잘 지냈나.
“북한은 만 나이를 따지더라. 그래서 서로 몇 년생인지 확인해보며 친해졌다. 특히 같은 골리인 이봄과 제일 친하게 지냈다. 골리 코치님과 미팅을 할 때 내가 통역을 해줬다. 남북은 용어 자체가 많이 다르다. 골포스트를 ‘문대’라고 한다. 봄이가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고, 습득력이 좋았다. 경기 부저가 울리면 봄이가 제일 먼저 달려와서 날 안아줬다.”
 
신소정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 기 위해 마스크(오른쪽 사진)에 아버지 그림을 새겨넣었지만 올림픽에선 스티커로 가렸다. [사진 신소정]

신소정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 기 위해 마스크(오른쪽 사진)에 아버지 그림을 새겨넣었지만 올림픽에선 스티커로 가렸다. [사진 신소정]

마스크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문구를 새겼다가 지웠다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특정인물을 마스크에 새기면 안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마스크에 흰색 스티커를 붙여 아버지 그림을 가렸다. ‘Always be with me(항상 나와 함께)’라는 문구도 지웠다. 하지만 스티커를 띄면 지금도 아버지 얼굴이 새겨져있다. 경기가 잘 안풀리면 마음 속으로 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아버지도 하늘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셨을 것이다.”
 
 신소정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 기 위해 마스크(오른쪽 사진)에 아버지 그림을 새겨넣었지만 올림픽에선 스티커로 가렸다. [사진 신소정]

신소정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 기 위해 마스크(오른쪽 사진)에 아버지 그림을 새겨넣었지만 올림픽에선 스티커로 가렸다. [사진 신소정]

어머니는 경기장에 오셨나.
“엄마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후 내 경기를 한 번도 보지 않으셨다. 심장이 떨려서 못보시겠다고 했다. 이번 평창올림픽 때 처음으로 경기장에 오셨다. 5경기 중 4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셨다. 혹시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별다른 얘기는 안하셨다. 그냥 고생했다고 안아주시면서 우셨다. 나도 울었다.”
 
2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8위 순위 결정전 남북 단일팀 대 스웨덴 경기. 남측 신소정(오른쪽), 북측 김향미(왼쪽), 북측 황충금(가운데)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2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8위 순위 결정전 남북 단일팀 대 스웨덴 경기. 남측 신소정(오른쪽), 북측 김향미(왼쪽), 북측 황충금(가운데)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신소정에게 ‘올림픽’은 어떤 의미인가.
“내 인생의 전부다. 평창올림픽만 꿈꿔왔고, 그것만 보고 달려왔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가 있었지만 올림픽은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할 생각인가.
“사실 5~6년 더 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상황을 봐야할 것 같다. 엄마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올림픽이 끝난 뒤 허탈하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2022년 올림픽 자력출전이 가장 큰 목표가 될 수 있다. 언제 은퇴를 하든 항상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노력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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