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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 운전하다 ‘주얼리 주열’로 … 마지막 금리 결정은 동결

중앙일보 2018.02.28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임기 중 마지막으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1.5%로 동결했다. 사진은 이 총재가 2014년 7월 10일 금통위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임기 중 마지막으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1.5%로 동결했다. 사진은 이 총재가 2014년 7월 10일 금통위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4년 임기 중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의사봉을 두드리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활짝 웃었다. 그의 선택은 금리 동결이었다. 한국은행 금통위는 27일 기준금리를 연 1.5%에 묶었다. 지난해 11월 30일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뒤 연속 동결이다.
 

되돌아본 이주열 한은 총재 4년
2014년 취임 후 다섯 차례 금리 내려
시장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 비판

경기부양 정책에 맞춰 금리 인하
“가계부채 급증 부추겨” 비난 표적돼

한국판 양적완화 논의 때 ‘독립’ 지켜
내부에서 실력 인정받고 신망 얻어

이 총재의 임기는 3월 31일까지다. 이번 금통위가 이 총재 임기 중 마지막 회의는 아니다. 다음 달 열리는 금융안정 관련 회의가 의장으로 주재하는 마지막이다. 금리 결정 회의는 이번이 끝이다. 이런 변화는 그가 만들었다. 좀 더 긴 안목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연 12회이던 금리 결정 회의를 지난해부터 연 8회로 줄였기 때문이다.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또박또박하고 느릿하면서도 간결한 화법을 그대로 썼다. 4개의 키워드로 이 총재 임기 4년을 살펴봤다.
 
27일 금통위에 참석한 이주열 총재. [연합뉴스]

27일 금통위에 참석한 이주열 총재. [연합뉴스]

◆절제된 화법 ‘관망 주열’=그는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이 된 1998년 이후 한은 출신으로 이성태 전 총재에 이어 두 번째로 총재직에 올랐다. 이 총재는 통화신용정책 전문가다. 조사국장과 정책기획국장 등을 역임해 수치에 정통하다. 경제지표에 근거한 팩트 위주로 전달한다.
 
때문에 그의 화법은 신중하고 무미건조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임 한 금통위원은 “실무를 담당했던 정통 ‘한은맨’답게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팩트를 말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고 말했다.
 
문맥과 이면의 의미를 캐내려는 ‘한국은행 워처(BOK Watcher)’에게도 그의 언어는 난공불락이었다. 특유의 신중한 태도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언급을 많이 해 ‘관망 주열’로 불리기도 했다. 총재의 발언에 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중앙은행 선언효과’를 의식한 탓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의 말은 계량경제학자처럼 군더더기 없는 ‘절약형 발언’이라며 그런 면에서 ‘Mr. Economy’라고 부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호한 표현으로 시장과의 기 싸움을 즐겼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는 다르다.
 
◆시장과 한 때 ‘불화’=신중하지만 때로 소극적으로도 보이는 그의 발언과 태도는 임기 초 시장과의 소통에 걸림돌이 됐다.
 
이 총재는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올리기 전까지 임기 중 다섯 번 금리를 내렸다. 기준금리는 연 1.25%까지 떨어졌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등으로 경기가 위축된 데다 양적완화(QE)에 나선 주요국 중앙은행의 틈바구니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문제는 ‘금리 깜빡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있었다. 시장에 준 신호와 반대로 금리를 내리거나 예상치 못한 시점에 금리를 인하해 깜빡이 신호와 반대로 핸들을 꺾거나 신호 없이 차선을 옮기는 걸 반복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장에선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한다”는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의도치 않게 이 총재가 ‘난폭 운전자(?)’가 된 셈이다.
 
시장 관계자는 “당시 국내와 대외 상황을 고려하면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 총재가 억지로 금리를 내리는 듯한 느낌을 줬고, 그래서 시장이 당혹스러워했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굴레가 된 ‘척하면 척’=금리 인하 논란은 지난해 10월 한국은행 국정감사장에서 재점화했다. 이혜훈 의원은 “취임 당시 2.5%였던 기준금리가 1.25%로 반 토막이 됐다. 소신을 못 지킨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세월호 사건 당시 유일하게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척하면 척’ 발언 때문에 시끄러워지고 소신대로 행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2014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이 총재와 만난 뒤 “금리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척하면 척 아니겠냐”고 말한 것을 이른 것이다. 당시 그 발언 이후 한 달 만에 한은이 금리를 내리면서 의혹은 더 커졌다.
 
‘척하면 척’ 발언은 그에게 족쇄가 됐다.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 정책에 발맞춰 금리를 인하해 부동산 과열과 가계부채의 급증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450조원을 돌파하며 한국 경제의 불안요인이 됐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그에게 세간의 이런 오해는 아픈 부분이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제적 대응에서 부족했지만 경기 부진 상황에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며 “경기가 나아지는 등 전반적으로 무난한 정책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지난해 국감에서 “그동안의 저금리 정책이 경기회복 모멘텀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2015~2016년 2%대의 저성장 덫에 걸렸던 한국 경제는 지난해 3.1% 성장했다.
 
지난 20일 통화스와프를 맺은 이주열 총재(오른쪽)와 토머스 조던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 [연합뉴스]

지난 20일 통화스와프를 맺은 이주열 총재(오른쪽)와 토머스 조던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 [연합뉴스]

◆외환 안전망 ‘지킴이’=‘주얼리(Jewelry·보석)’는 이 총재의 별명이다. 이 총재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쓴 ‘주열 리’에서 나온 말이다. 조직 내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신망도 얻어왔음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언제나 위태롭다. 경제 위기 때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노리는 정부나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져서다. 2016년 ‘한국판 양적완화’ 논의 때도 기업의 구조조정 펀드 조성에 한국은행이 출자하라는 전방위 압박이 쏟아졌다.
 
당시 그는 “(한은 총재) 직을 걸고 막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자본확충펀드에는 참여했지만 출자 대신 대출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석에서 그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재정 대신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수호한 그는 외환 안전망도 더 튼튼하고 단단하게 짰다. 지난해 10월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 합의를 이끌어 낸 데 이어 지난해 캐나다와 무제한·무기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이달에는 스위스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통화신용정책 담당 부총재보로 일했던 경험 등이 반영된 결과다.
 
4년간 ‘한은 호’를 이끈 그의 여정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한은법상 총재 연임이 가능하다. 그는 연임 여부와 관계없이 “임기 내 마무리 지을 건 확실하게 해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라고 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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