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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빅데이터 기반 책 추천…인문·사회·컴퓨터공학 넘나들며 찾은 아이디어죠

중앙일보 2018.02.26 13:00
컴퓨터공학과 인문학,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분야를 아우르며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책 세상'을 구현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책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 ‘비블리’ 앱을 개발한 스타트업 라이앤캐처스의 허윤 대표(38) 이야기인데요. 광운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 후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으로 데이터마이닝을 전공한 전형적인 공학도처럼 보이지만, 허 대표의 삶에는 인문학이라는 키워드가 관통하고 있죠.
 

빅데이터 기반 책 추천 서비스 개발한 허윤 라이앤캐처스 대표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나부터 시작해서 가족, 친구 등 범위를 넓혀 세상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곧 인문학입니다.”
 
회사 이름 '라이앤캐처스'는 미국 작가 샐린저(J D Salinger)의 대표작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습니다. 허 대표의 원대한 포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죠. 치명적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그는 책을 통해 젊은이들이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펼치며 생길 수 있는 실패와 낙오를 방지하는 파수꾼 역할을 꿈꿉니다.
 
아홉 살부터 논어·맹자 공부…컴퓨터도 책으로 익혀
엔지니어인 허 대표가 인문학적 사고의 기초를 갖추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배운 논어와 맹자 덕분이에요. 한글도 겨우 뗀 아홉 살 때 윤리 교사였던 외숙부는 논어·맹자를 매일 한 장씩 회초리를 들어가며 그야말로 주입식으로 가르쳤죠. 하지만 그는 그 시절 뜻도 모르고 암기했던 논어와 맹자를 통해 생각하는 훈련이 됐다고 해요.
 
컴퓨터를 접한 것도 바로 책을 통해서였는데요. 초등 3~4학년 시절 그림 한 장 없이 텍스트만 빼곡한 MS DOS 매뉴얼을 골방에 틀어박혀 읽고 또 읽었어요. 혼자서 코딩을 할 정도로 컴퓨터에 깊이 빠졌죠. 입시 준비를 하는 동안 잠시 멀어졌던 컴퓨터와의 인연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서 다시 이어졌어요.
 
'느리게 읽기 북클럽'은 일요일 오후 누구나 자기 책을 가져와 읽고 책과 관련된 담소를 나누는, 참여형 읽기 모임이다.

'느리게 읽기 북클럽'은 일요일 오후 누구나 자기 책을 가져와 읽고 책과 관련된 담소를 나누는, 참여형 읽기 모임이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는데, 깊이 들어가 보면 인문학과 컴퓨터공학은 맞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선택한 이유는 컴퓨터를 실습 위주로 공부해서 실생활에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간 허 대표는 여느 공대생들과는 달랐습니다. 1학년부터 창업동아리에 들어가 웹 기획 업무를 담당했어요. 기획 업무를 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생각과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동아리 활동을 위해 휴학까지 하면서 1년간 창업에 매진하기도 했죠.  
 
대학을 졸업하고는 대기업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어요. 6개월 과정을 무사히 거쳐 정직원이 됐지만 대기업 엔지니어 생활은 자신과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요. 5년 후, 10년 후 자신의 미래라 할 수 있는 부장, 수석급 선배들이 타성에 젖어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도저히 그곳에 안주할 수 없었습니다.
 
6개월간 중남미 여행하며 자아 찾기
허 대표는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인공지능, 데이터마이닝 등을 공부하며 새로운 기술에 심취했고, 문화기술대학원에서 교차 강의로 소셜컴퓨팅 수업을 들으며 사회학에 눈을 떴죠.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사회구조를 사회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흥미진진했어요.내면에 잠재됐던 인문학에 대한 학습욕구도 폭발했습니다. 당시 인기 작가였던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의 인문학 책부터 서양 철학사까지 읽기 시작했어요.
 
 허윤 대표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발견하기 위한 중남미 여행을 떠났다.

허윤 대표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발견하기 위한 중남미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여전히 호기심은 풀리지 않았죠. ‘인공지능 같은 공학기술이 실제 세상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학교에서 배운 공학을 비즈니스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졸업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끝없는 물음표가 이어졌어요. 서른 살이 넘도록 IT 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해 정해진 코스를 밟아왔지만 정작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허 대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라는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면 내가 속해 있던 집에서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어요. 6개월 동안의 중남미 여행에서 그는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됐죠. 전 세계에서 온 청년들 사이에서 그들을 이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거예요. 남의 지시를 따르는 팔로어보다 리더로서 역량을 발휘할 때 자신이 에너지가 넘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서른세 살에 그는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책 관련 커뮤니티 운영하다 앱 ‘비블리’ 개발
책을 좋아했던 허 대표는 당시 친구들끼리 서로의 책장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궁금해 하며 책장 사진을 찍어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SNS를 통해 서로의 생활을 꿰뚫고 있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책장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궁금해 한다는 점에 착안, 4명의 친구와 함께 본격적인 창업 준비에 들어갔죠. 
 
먼저, ‘느리게 읽기 북클럽’이라는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했어요. 일요일 오후 누구나 자기 책을 갖고 와서 2시간은 책을 읽고 1시간은 책과 관련된 담소를 나누는 형식으로, 스스로 참여하고,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또 스스로 성장하는 읽기 모임을 지향했습니다. 젊은 층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이에 ‘페친의 책장’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며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성화시켰죠. 서울 홍대 앞에서 시작한 북클럽 모임은 1년도 안 돼 서울 강남, 부산, 창원 등 전국 4곳으로 확대됐고 인원도 늘었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빅데이터 기반 도서 추천 서비스 ‘비블리’를 론칭했는데요. 비블리(BIBLY)는 스페인어로 도서관을 뜻하는 ‘비블리오떼까(Biblioteca)’의 줄임말로, 독자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허윤(맨 왼쪽) 대표와 라이앤캐처스 직원들.

허윤(맨 왼쪽) 대표와 라이앤캐처스 직원들.

4년차 스타트업 대표로서 그의 사업 철학은 무엇일까요. 허 대표는 어린 시절 PC방 아르바이트 경험을 소개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할 때 보통은 맡겨진 일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나 고객 서비스 관점에서 불편한 부분을 개선하고 싶었어요. 내가 일의 주인이 되었을 때, 똑같은 일을 똑같은 시간에 해내더라도 자신이 성장하는 폭은 엄청나게 달라져요. 시키는 일을 겨우 하느냐, 일의 주인이 되느냐 하는 태도의 차이가 삶의 전부를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허 대표는 “기술의 변화가 빠르고 산업이 해체되어 가는 이 시대에 안정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허드렛일이라도 좀 더 스마트하게 해결하는 방법들을 생각하세요. 그러한 메타(meta·'더 높은, 초월한'이란 뜻)적인 방법론과 사고력을 훈련시키는 과정이 결국 강인한 나를 만들어줍니다. 안정성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길은, 어떠한 불안함도 이겨낼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강력하게 만드는 길 뿐입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객원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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