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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났나요? 당신의 진짜 인생을 시작하세요

중앙일보 2018.02.26 12:32
2010년 7월 23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특설링크에서 열린 아이스쇼 `2010올댓스케이트섬머`에서 전 미국 피겨 싱글 국가대표 샤샤 코헨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중앙포토]

2010년 7월 23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특설링크에서 열린 아이스쇼 `2010올댓스케이트섬머`에서 전 미국 피겨 싱글 국가대표 샤샤 코헨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중앙포토]

 
죽음 같은 은퇴···올림픽 이후 삶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토리노 피겨 은메달리스트 샤샤 코헨 NYT에 기고
'세계 최고'였다가 뒤늦은 사회 진출 담담히 술회
"은퇴 이후에도 인생의 목적, 의미 무한하다" 조언

“2006년 2월23일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피겨 프리스케이팅의 첫 30초 간 나는 두 번 넘어졌다. 일순간 관중의 탄식이 음악을 삼켰고, 내 두 번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향한 희망이 날아가버린 것을 알았다.”

 
토리노 여자 피겨 싱글 은메달리스트 샤샤 코헨(33)이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의 서두다. 당시 만 21세4개월에 불과했던 코헨은 이 실수를 극복하고 시상대 두 번째 위치에 오르긴 했지만 좌절감은 컸다. 돌아보면 그때 이미 “이것으로 스케이팅 이력이 끝나가고 있음을, 은퇴를 앞둔 슬픔과 혼란을 얼핏 느꼈던 것”이다. 실제로 코헨은 4년 뒤 2010 밴쿠버 올림픽엔 미국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했고 25살에 피겨 프로 무대에서 퇴장해야 했다.
 
샤샤 코헨.

샤샤 코헨.

‘25살 은퇴에 대한 올림픽 경험자의 안내’라는 이 글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선수들을 위한 조언으로 이뤄져 있다. 글에 따르면 코헨은 은퇴 당시 “20년간 쌓아올린 경쟁력이 산산조각 났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25살에 맞닥뜨려야 했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은퇴란 마치 “죽음”과 비슷한 것으로 “금메달조차 당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게 코헨의 전언이다. 실제로 다섯 번의 올림픽에 참가해 23개의 메달을 휩쓴 미국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조차 은퇴 뒤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코헨은 “올림픽 이후의 삶에 대한 도전이야말로 내가 가장 준비를 못한 것”이었다면서 “한국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이 끝나고 이런 문제에 직면할 많은 선수들을 위한 '안내서'를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풀어갔다.  
  

“처음엔 은퇴가 방학처럼 느껴졌다. 늦잠을 자도 됐고, 쑤시는 몸을 추스르며 훈련에 가거나 내 자신과 나라 전체의 기대에 부담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인생이 심심해졌다. 다음 시즌에 대한 정해진 훈련 목표가 없으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내가 선수일 때 나를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 높낮이들이 그리워졌다.”

 
게다가 수년간 “세계 최고”라고 느끼던 자신이 이제 또래들 사이에서 뒤처진 사람이란 걸 깨닫는 건 이상한 경험이었다. 여느 운동선수처럼 대부분 홈스쿨로 학업을 병행했던 코헨은 26세에야 대학에 입학했다. (코헨은 콜럼비아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해 2016년 학위를 받았다.) 코헨은 29살에 처음으로 기업 인턴십을 했는데 당시 나머지 동료들보다 10살이나 많았다.
 
특히 '일반인' 코헨이 어려워했던 지점은 이런 도전들로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는 사실이다. 
 

“운동선수일 땐 그런 걸 삼키라고, 고통과 두려움을 거부하라고, 힘겨운 부상을 딛고 분노와 좌절을 이겨내라고 배웠다. 그러다보니 이제 어떤 감정이 ‘정상적’인지 어떤 상황에서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실제로 미국 봅슬레이 국가대표로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4인승 금메달을 땄던 스티븐 홀콤은 지난해 뉴욕 올림픽 훈련센터에서 약물 및 알콜 과용으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죽기 며칠 전 그는 인터뷰에서 올림픽 이후의 삶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코헨에 따르면 현재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금메달의 무게’가 제작 중이다.)   
 
25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폐회식에서 기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25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폐회식에서 기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그렇다면 올림픽 이후 선수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코헨은 “하나 확실한 것은 새로운 목표를 찾는 것, 새로운 목적의식의 중요성”이라고 썼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쓰기조차 제대로 안됐고 수학 공식은 상형문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스케이팅에 쏟았던 집중력을 학업에 발휘했고 2016년 졸업식은 내 일생의 가장 멋진 순간들 중 하나였다.”

 
현재 세계적 투자금융회사 모건스탠리에서 파트너로 일하는 코헨은 “올림픽 선수들은 인생의 규칙이 스포츠 규칙과 다르단 걸 알아야 한다”면서 “경쟁에서 신체적 정서적으로 자신을 추스르는 것은 인생에서 기다리는 도전들과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마무리했다. 비단 스포츠 선수만이 아니라 일생의 어느 지점에서 은퇴를 해야 하는 일반 직장인들도 귀기울일 만한 조언이다.
 

“그러니 은퇴 후엔, 여행하라. 시를 쓰라. 당신만의 일을 시작하라. 좀 어슬렁거려도 되고 분명한 목표가 없어 보이는 것에 시간을 내도 좋다. 한마디로 훈련하는 동안 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하라. 올림픽 후에도 목표와 의미를 찾는 길은 무한하다. 단지 당신 자신에게 시간을 좀 줘라.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과정을 위해 사는 법을 다시 배워라. 마치 당신이 맨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처럼 말이다.”

지난해 '대전늘푸른학교 졸업식'에서 중학교 과정을 이수한 한 어르신이 손주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이날 졸업한 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67세이며, 70세 이상이 11명, 83세도 2명이었다. [중앙포토]

지난해 '대전늘푸른학교 졸업식'에서 중학교 과정을 이수한 한 어르신이 손주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이날 졸업한 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67세이며, 70세 이상이 11명, 83세도 2명이었다. [중앙포토]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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