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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구매' 사라지고···유커 취향 변화에 日 관광 비상

중앙일보 2018.02.26 11:47
25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가마쿠라시 '가마쿠라 고교역'에서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학교 주변을 찍고 있다.[사진=서승욱 특파원]

25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가마쿠라시 '가마쿠라 고교역'에서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학교 주변을 찍고 있다.[사진=서승욱 특파원]

 # 휴일인 26일 도쿄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떨어진 가나가와(神奈川)현 가마쿠라(鎌倉)시의 ‘가마쿠라 고등학교 역’ 건널목. 일본인들에게 여름 별장지로 유명한 쇼난(湘南)앞바다를 따라 달리는 4량짜리 에노 덴(江ノ電) 전철이 지나가는 역, 그리고 역 바로 옆 건널목이다.
 

슬램덩크 사진찍고, 위스키 제조하러 日찾는 중국인
'모노'소비에서 '고토'소비로 급격히 취향 바뀌어
싹쓸이 소비 줄고 체험형…여행소비액은 감소
日 크루즈 체험에 스모 관람 체험 상품권도 개발
중국 대신 체류기간 긴 유럽 관광객 유치 노력도

25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가마쿠라시 '가마쿠라 고교역'에서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학교 주변을 찍고 있다. [사진=서승욱 특파원]

25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가마쿠라시 '가마쿠라 고교역'에서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학교 주변을 찍고 있다. [사진=서승욱 특파원]

쌀쌀하고 잔뜩 찌푸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대만인 관광객 5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들은 한 번은 바다쪽을, 한 번은 바다 반대쪽 언덕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고 있다.  
 
25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가마쿠라시 '가마쿠라 고교역'에서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학교 주변과 이곳을 지나는 전철 에노덴을 찍고 있다. [사진=서승욱 특파원]

25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가마쿠라시 '가마쿠라 고교역'에서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학교 주변과 이곳을 지나는 전철 에노덴을 찍고 있다. [사진=서승욱 특파원]

이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건 만화 원작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든 작품 ‘슬램덩크’때문이다. 
가마쿠라 고등학교 농구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원작 만화의 배경이 된 학교와 그 주변을 보기 위해서였다. 
관광객들중 상당 수는 언덕 위 300 m에 위치한 학교까지 ‘성지 순례’하듯 다녀왔다.  

 
기자가 만난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꽤 많다고 한다. 중국의 연휴때는 관광객들이 건널목의 철로까지 점령하는 통에 가마쿠라시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경비원까지 배치한다고 했다.   
가마쿠라와 후지사와는 잇는 에노덴이 일본 쇼난 바닷가 주변을 달리고 있다.[사진=서승욱 특파원]

가마쿠라와 후지사와는 잇는 에노덴이 일본 쇼난 바닷가 주변을 달리고 있다.[사진=서승욱 특파원]

 
# 일본 혼슈 북단 아오모리(靑森縣)현의 아오모리시. 마이니치 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곳에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마쯔리(祭·축제)가 많은 일본내에서도 손끕히는 '네부타(ねぶた)마쯔리'를 체험하기 위해서다.  
 
네부타 마쯔리를 앞둔 지난해 7월 아오모리시 도심에 전시된 네부타의 모습.[사진=서승욱 특파원]

네부타 마쯔리를 앞둔 지난해 7월 아오모리시 도심에 전시된 네부타의 모습.[사진=서승욱 특파원]

 대나무 뼈대에 종이를 발라 커다란 인형이나 동물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불을 켜서 수레에 싣고 행진하는 축제다. 마쯔리는 8월초에 열리지만 아오모리시의 체험관엔 상시적으로 중국 단체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북이나 손뼉으로 네부타 행진의 장단 맞추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체험관과 그 주변에 전시된 네부타들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실제로 8월 마쯔리를 앞두고는 아오모리시의 중앙역 주변거리 어디를 가도 네부타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고조된다.  
 
네부타 마쯔리를 앞둔 지난해 7월말 아오모리시내에 전시된 네부타의 모습.[사진=서승욱 특파원]

네부타 마쯔리를 앞둔 지난해 7월말 아오모리시내에 전시된 네부타의 모습.[사진=서승욱 특파원]

중국인 관광객들의 급격한 여행 취향 변화에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른바 ‘모노(モノ)소비에서 고토(コト)소비로의’변화다. 물건을 뜻하는 ‘모노’의 소비가 '물건을 소유하는데 가치를 둔 소비'라고 한다면, 일 또는 행동을 뜻하는 ‘고토’의 소비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면서 얻는 체험에 가치를 두는 소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중국인들이 일본을 찾는 이유가 ‘○○를 사기 위해서’에서 ‘○○를 하기 위해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관광루트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도쿄와 요코하마,후지산과 오사카 등을 잇는 ‘골든 루트’와 그 주변에서의 ‘폭탄 구매’,'싹쓸이 구매'가 중국인 여행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일본을 두 번 세 번 이상 찾는 중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쇼핑은 인터넷에서,관광은 체험형으로’라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이런 취향 변화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지난해의 경우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서 숙박을 하는 중국인들이 5년전에 비해 8% 늘어나 전체 중국인 관광객의 40%를 넘어섰다. 반대로 2017년 중국인 관광객 1명이 쓰고 간 돈은 2016년에 비해 0.5% 줄어들었다. 쇼핑에 비해 맞춤형 관광을 선호한 결과라는 게 일본 정부의 분석이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은 2869만명, 이중 중국인이 735만명이다. 일본으로선 중국인들의 취향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이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체험형 상품의 확충이다.  
일본의 대형 여행사 JTB오사카의 경우 '주류업체 산토리의 야마자키 위스키 제조 체험', 'JTB를 통해 숙박 예약한 이들의 오사카 코미디언 라이브쇼 체험' 등의 프로그램 등을 늘리고 있다.  

 
일본의 지방 백화점들 역시 ‘스모경기 관람 체험’,‘이바라키 앞바다 크루즈 체험’등이 포함된 상품권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일본 국회내에 ‘닌자 의원협회’가 창설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인들은 물론 서양 관광객들 사이에 관심이 높은 '일본 닌자'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2월22일 닌자의 날’엔 도쿄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닌자 체험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중국인들의 취향변화는 일본 관광계에 여러가지 숙제를 던지고 있다.  
먼저 체험형 여행을 뒷받침할 인프라 정비다. 마이니치 신문은 “에도 시대 상점들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타마(埼玉)현 가와고에(川越)시의 경우 매년 40%이상 씩 중화권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중국어가 가능한 가이드 확보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소비 씀씀이를 줄이는 중국인 관광객들 대신 체류일수가 긴 유럽인 관광객들을 늘리는 관광객 다변화 전략도 세우고 있다. 
 
유럽이나 호주 관광객들의 평균 숙박일수는 12~15박으로 전체평균(9.1박)보다 3일 이상 길고, 중국인들과는 달리 이들의 '체류기간중 1인당 소비액'도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일본 못지 않은 한국의 관광업계에도 시사점이 작지 않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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