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호통 판사’ 천종호의 기도

중앙일보 2018.02.26 01:47 종합 28면 지면보기
조강수 사회 데스크

조강수 사회 데스크

설 연휴 끝날인 지난 18일 휴대폰 문자메시지에 낯선 이름이 하나 떴다. 작년 6월 인천남동서에서 정년퇴임을 한 경찰관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의 문자를 열어봤다.
 

8년간 소년재판 전념하다가 김명수 체제서 인사발령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하는 재판 복귀를 희망함”

“재직시절 범죄로 망가지는 많은 아이를 보면서 위기청소년 업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참으로 훌륭한 분이 천종호 판사였습니다. 병든 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책 인세 수익금 7500만원을 범죄 소년을 위한 자금으로 쾌척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열정을 가르쳐줬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너무도 힘든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린 것 같습니다. 도와주시길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사랑의 유도교실, 위기아이들의 사부 박○○”
 
아마도 ‘소년범의 대부’ ‘호통판사’로 불리는 부산가정법원 소속 천종호 부장판사와 비슷한 뜻을 갖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분인 듯했다. 5일 뒤엔 천 부장판사가 직접 쓴 장문의 페이스북 글이 도착했다. “지난 13일 법원 정기 인사 발표에서 부산지방법원으로 발령(26일자)이 나 8년간 신명을 바쳤던 소년보호재판을 떠나게 됐습니다. 원래 소년보호재판을 계속하려고 부산가정법원이나 울산가정법원으로 가게 해달라고 신청을 했으나 신청하지도, 생각조차 하지 않은 곳으로 아무런 귀띔도 없이 인사발령이 나 공황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신임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 언제 다시 소년재판으로 복귀할지 기약할 수 없게 됐고 평생 소년재판에 매진하겠다고 여러분들과 한 약속을 (타의로) 지키지 못하게 돼 죄송합니다.” 핵심 내용은 이랬다. 지난해 10월 그를 인터뷰했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판사실엔 소년범들이 보낸 편지와 사진들이 즐비했다. 그는 비행 청소년 문제의 원인이 가정의 해체에 있다고 판단, 청소년회복센터(일명 ‘사법형 그룹홈’)를 국내에 도입해 정착시켰다.
 
지난 23일 부산가정법원에서 이임행사를 마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수뇌부가 바뀌더니 정책도 바뀌었나 모르겠다. 가정법원 내 어디에든 남겠다고 했는데 인사 원칙이라며…”라고 말을 흐렸다. 많이 섭섭하냐는 질문엔 “가정법원에서 2년 근무한 판사들에겐 1년 더 근무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고는 8년간 천착해온 저에겐 전화 한 통 없이 발령을 냈다. ‘작년 국정감사 때 노회찬 의원에게 (퇴직 시까지 소년보호재판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거하고 인사하고 무슨 상관있느냐’고 했다. 소년재판이 권력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라고 또 말끝을 흐렸다.
 
인사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인사 원칙은 공정함과 형평성에 따른 ‘순환 근무’이며 누구 한 사람에게 예외를 두면 법관의 독립이 무너진다”고 밝혔다. 이해는 가나 동의하기는 어렵다. 재판에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물론 특허나 세무 등의 사건은 변호사 개업 이후 돈을 버는데 좋은 경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소년, 아동, 가정보호 등 사건은 그렇지 않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인사위원회까지 열어 천 부장판사에게 소년보호재판을 계속 담당토록 허용한 것도 그의 전문성과 그의 존재로 인한 사법부 신뢰도 상승이라는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 아닐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수 정부에서 특정 분야 재판을 맡으며 지명도를 높여온 걸 특혜로 판단해 적폐 청산하듯이 인사 발령을 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천 부장판사는 오늘부터 부산지법으로 출근한다. 그는 여전히 지난해 국회에서 전국 17개소의 청소년 지원센터에 대한 예산 지원 법안이 통과됐지만 정작 예산 편성이 되지 않아 지급이 미뤄지고 있는 현실을 걱정한다. 소년보호재판은 때로는 엄정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처분을 내리고, 때로는 자상스러운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소년범을 위해 기도하던 그는 지금 자기를 위한 기도를 갈구하고 있다. “위기를 잘 이겨낼 지혜와 인내와 용기를 제게 주시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대법원이 응답할지는 모르지만 그의 기도는 간절하다.
 
조강수 사회 데스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