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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사면초가에 몰린 김정은

중앙일보 2018.02.26 01:41 종합 30면 지면보기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한의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쥐게 됐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대남 담당) 겸 통일전선부장이 한국에 오면서다. 그는 인민군 정찰총국장 시절(2009~2015)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배후로 알려져 남북대화의 기피 인물로 지목돼 왔다. 그런 그가 공교롭게도 북한 고위급대표단장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인터넷으로 한국 동향을 파악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김영철 단장 그 자체로 몰고 올 남남 갈등을 모를 리 없다. 김여정 특사로 남북대화가 열리고 북·미 대화의 조짐까지 보이는 마당에 김영철로 ‘점수’를 까먹을 수 있는 우려까지 감수하면서 그를 내려보냈다.
 
김정은은 왜 이런 위험한 선택을 했을까. 남남 갈등이나 문재인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면 자신에게 이로울 게 없다. 미국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사상 최대 규모의 대북제재라고 선전하면서 해상차단을 발표하는 등 압박의 수위를 점점 올리고 있다. 중국은 미국보다 덜 하지만 과거와 달리 제재 수위를 단계적으로 올릴 뿐 아니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은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따라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금은 서로 등을 돌려대고 자기 입장이나 밝힐 때가 아니며 북남 관계 개선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그 출로를 과감하게 열어 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의 속 타는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영철을 대신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방한했던 최용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오면 무난하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조직지도부장을 맡고 있어 대외활동이 어렵다. 조직지도부는 해외에 나가면 자본주의에 오염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해외출장을 금지해 왔다. 따라서 대남 대화를 책임지고 있는 김영철 외에는 대안이 없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는 김영철을 받음으로써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북한의 최근 상황을 고려해 김영철이 남북관계에 있어 전향적인 메시지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고위급대표단에 북·미 관계와 대미외교를 담당하는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북미국) 부국장에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12일 김여정 특사 등 대표단의 보고를 받고 ‘해당 부문’에서 실무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는데 ‘해당 부문’에 통일전선부와 외무성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평창 겨울 패럴림픽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정치적 운명을 걸다시피 한 ‘김영철 카드’가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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