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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김영철, 똑똑히 보라

중앙일보 2018.02.26 01:40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평창 잔치는 끝났다. 이승훈의 역주와 여자 컬링의 은메달, 이상화·고다이라의 경쟁과 우정에서 스포츠의 위대한 정신을 보았다. 여기에 비해 잔치 마지막 날 김정은이 김영철을 내려보낸 건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그는 평창올림픽에 대해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해 놓고 한국인 50명(천안함 폭침 46명, 연평도 포격 4명)을 죽인 사건의 책임자를 평화 메신저로 파견했다. 한국인의 감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김영철이 주범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정부의 저자세 궤변은 화를 더 돋웠다. 청와대는 눈덩이처럼 커 가는 국민의 분노와 불쾌감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김정은 피로감’과 이 정권의 굴욕적 태도에 대한 환멸이 확산돼 6월 지방선거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낭패감도 묻어난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 호응했다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오히려 곤경에 빠뜨렸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한국인 죽인 사실은 안 없어져
‘핵 있는 가짜 평화’ 용납 못 한다

정치적 해석을 빼고라도 ‘김영철의 한국 영토 월경(越境)’은 묵과할 수 없는 국가 문제를 낳았다. ‘나라를 분열시켜 얻는 평화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은 사람들을 외면한 채 얻는 평화는 얼마나 오래 갈까’ ‘앞으로 누가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나’ ‘어려울 때 어떤 나라가 우리를 도와주겠나’ 하는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이 정권은 ‘전쟁 없는 평화’를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지녔다. 하지만 더 많은 한국인은 ‘핵 있는 가짜 평화’를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짜 평화란 김정은의 핵무기와 협박에 굴복해 대한민국의 돈과 자유, 문화와 정체성을 바쳐 얻는 평화를 말한다. 그제 평양의 조선중앙통신은 자기네 식으로 가짜 평화를 우아하게 표현했다. “우리의 국가 핵 무력은 민족공동의 전략자산으로 결코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코앞의 손바닥만 한 남조선을 타고 앉지 않겠다.”
 
거짓말이다. 핵 무력은 한국을 지배하기 위한 북한의 권력 자원이다.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김정은의 품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김영철의 월경을 “큰 평화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여 달라”고 호소하지만 선뜻 그럴 수가 없다. 정부의 평화가 핵 있는 가짜 평화를 용인하는 듯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가짜 평화가 정착되면 한국인의 내부 갈등은 극단화될 것이다. 나라를 둘로 쪼개 놓고 북한한테 얻는 한 조각 평화는 무의미하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김영철 월경의 진실은 “군인들이 자기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라를 지키다 찬 바다에 수장됐는데 죽인 X은 웃으면서 대통령 만나고 유족들은 바깥에서 울부짖나”라는 댓글이 잘 드러내고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의 피해자들에게 한마디 해명이나 사과 없이 가해자를 대접하는 정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사전 논의 없이 위안부 문제를 합의해 줬다고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고 일본 총리와 얼굴을 붉힌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정부의 ‘내로남불’, 분열적인 이중 잣대가 국내외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신뢰 수준이 낮으면 내우외환이 닥칠 때 어떻게 국민한테 희생을 요구하고, 어떤 낯빛으로 인접국에 도움을 요청하겠나.
 
카멜레온이라는 평판을 가진 김영철이 온갖 평화적 주장을 늘어놓는다 해도 그가 한국인에게 저지른 범죄를 그냥 넘길 수 없다. 죗값은 남아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살아 있는 한 변하지 않을 진실이다. 김영철은 서울에 있는 동안 ‘핵 있는 가짜 평화’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를 충분히 느끼기 바란다. 평양에 돌아가 김정은에게 제대로 보고하라.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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