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한국인 죽인 사실은 안 없어져
‘핵 있는 가짜 평화’ 용납 못 한다
이 정권은 ‘전쟁 없는 평화’를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지녔다. 하지만 더 많은 한국인은 ‘핵 있는 가짜 평화’를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짜 평화란 김정은의 핵무기와 협박에 굴복해 대한민국의 돈과 자유, 문화와 정체성을 바쳐 얻는 평화를 말한다. 그제 평양의 조선중앙통신은 자기네 식으로 가짜 평화를 우아하게 표현했다. “우리의 국가 핵 무력은 민족공동의 전략자산으로 결코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코앞의 손바닥만 한 남조선을 타고 앉지 않겠다.”
거짓말이다. 핵 무력은 한국을 지배하기 위한 북한의 권력 자원이다.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김정은의 품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김영철의 월경을 “큰 평화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여 달라”고 호소하지만 선뜻 그럴 수가 없다. 정부의 평화가 핵 있는 가짜 평화를 용인하는 듯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가짜 평화가 정착되면 한국인의 내부 갈등은 극단화될 것이다. 나라를 둘로 쪼개 놓고 북한한테 얻는 한 조각 평화는 무의미하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김영철 월경의 진실은 “군인들이 자기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라를 지키다 찬 바다에 수장됐는데 죽인 X은 웃으면서 대통령 만나고 유족들은 바깥에서 울부짖나”라는 댓글이 잘 드러내고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의 피해자들에게 한마디 해명이나 사과 없이 가해자를 대접하는 정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사전 논의 없이 위안부 문제를 합의해 줬다고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고 일본 총리와 얼굴을 붉힌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정부의 ‘내로남불’, 분열적인 이중 잣대가 국내외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신뢰 수준이 낮으면 내우외환이 닥칠 때 어떻게 국민한테 희생을 요구하고, 어떤 낯빛으로 인접국에 도움을 요청하겠나.
카멜레온이라는 평판을 가진 김영철이 온갖 평화적 주장을 늘어놓는다 해도 그가 한국인에게 저지른 범죄를 그냥 넘길 수 없다. 죗값은 남아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살아 있는 한 변하지 않을 진실이다. 김영철은 서울에 있는 동안 ‘핵 있는 가짜 평화’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를 충분히 느끼기 바란다. 평양에 돌아가 김정은에게 제대로 보고하라.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