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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이스하키 골든골 러시아, 금메달 2개로 마감

중앙일보 2018.02.26 01:02 종합 14면 지면보기
‘레드 머신’으로 불리는 OAR(러시아) 선수들이 아이스하키 남자 결승에서 독일과 연장 접전 끝에 4대 3으로 이긴 후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레드 머신’으로 불리는 OAR(러시아) 선수들이 아이스하키 남자 결승에서 독일과 연장 접전 끝에 4대 3으로 이긴 후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변은 없었다.

도핑 스캔들 여파로 최악의 성적표
강철 조직력에 무표정한 ‘레드머신’
강호 줄줄이 꺾은 독일 돌풍 잠재워

 
‘레드머신(붉은 기계)’ 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이 돌풍의 독일을 물리치고 평창 겨울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정상에 섰다. OAR(세계 2위)은 25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결승에서 독일(8위)을 연장 접전 끝에 4-3(1-0 0-1 2-2 1-0)으로 물리쳤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무려 7차례 우승을 차지했고, 소련 해체 후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6개국 단일팀(EUN)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로 올림픽에 참가한 뒤로는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얄궂게도 도핑 스캔들 때문에 러시아의 우승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온 올림픽 선수(OAR)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이번 대회 OAR의 두 번째 금메달이다. 
 
OAR은 2-3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3피리어드 종료 56초를 남기고 구세프가 극적인 동점 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OAR은 연장전에서 독일 파트리크라이머의 페널티로 결정적인 4대 3 파워플레이(페널티로 인한 수적우위) 기회를 얻었다. 이 찬스를 살려 키릴카프리조프가 서든 데스 골을 터트렸다.
 
올림픽 역사에서도 손꼽힐 만한 명승부였다. 1피리어드 종료 1초를 남기고 선제골을 뽑은 OAR은 2피리어드 독일에게동점 골을 내줬다. 3피리어드 다시 앞서갔지만 내리 2골을 내줘 역전됐다. 하지만 OAR는 경기 종료 직전 동점 골을 뽑았다. 상대가 절대 유리한 파워플레이 상황에서 넣은 골이라 더 극적이었다. OAR은 연장전 서든데스골로 우승을 따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OAR 선수들은 모두 헬멧, 하키스틱, 장갑을 모두 집어 던지고 빙판으로 뛰쳐나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1만석 규모의 강릉하키센터를 붉게 물들인 팬들은 목놓아 ‘러시아’를 외쳤다. OAR 선수들은 국기와 국가명을 유니폼에 달지 못했다. 시상식에선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관중과 선수들은 IOC 규정 위반임을 알면서도 러시아 국가를 불렀다. 
 
남자 아이스하키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들(OAR)이 25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자 결승 러시아 출신 올림픽팀(OAR)과 독일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4대3으로 승리, 금메달을 차지한 후 올림픽찬가 대신 러시아 국가를 부르고 있다. [뉴스1]

남자 아이스하키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들(OAR)이 25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자 결승 러시아 출신 올림픽팀(OAR)과 독일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4대3으로 승리, 금메달을 차지한 후 올림픽찬가 대신 러시아 국가를 부르고 있다. [뉴스1]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훈련복과 단복에 OAR 대신 ‘레드머신’을 적었다. 자신들이 세계 최강이라는 자존심의 발로였다. 레드머신은 1983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투어에서 상대 팀들을 ‘도장깨기’하듯 연파한 소련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상징하는 단어다. “강철같은 조직력에 골을 넣고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선수들이 마치 기계 같다”면서 미국 언론이 붙인 별명이다.
 
OAR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선수의 불참으로 김빠진 남자 아이스하키에 힘을 불어 넣었다. 독일은 우승을 놓쳤지만 이번 대회 파란을 일으켰다.
 
독일은 8강 진출 플레이오프에서 스위스(7위), 8강에서 2006년 우승팀 스웨덴(3위), 4강에서 2010·2014년 우승팀 캐나다(1위)를 모두 1점 차로 꺾었다. 특히 캐나다전 승리는 파장이 컸다. 독일 외무부는 캐나다전 승리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축구 강국) 독일이 만약 축구에서 캐나다한테 졌다면 기분이 어떨지 역지사지로 상상해보라”고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25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자 결승 러시아 출신 올림픽팀(OAR)과 독일의 경기에서 역전에 성공한 독일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뉴스1]

25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자 결승 러시아 출신 올림픽팀(OAR)과 독일의 경기에서 역전에 성공한 독일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뉴스1]

 
기술은 떨어지지만 투지와 근성을 앞세운 독일은 다 잡은 금메달을 놓쳤지만 은메달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렸다. 독일은 1932년과 1976년에 각각 동메달을 딴 것이 지금까지 최고 성적이었다. 경기를 끝낸 독일 선수들은 아쉬움보다는 기쁜 표정으로 기꺼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독일 빌트의 프랑크 슈나이더 기자는 “아이스하키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일 지인들도 새벽에 일어나 경기를 지켜봤더라. 독일 대표팀의 예상 밖 선전에 기뻐하고 있다”고 했다.
 
강릉=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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