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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11초대 … 하루 10끼 먹는 100㎏ 거구들 ‘봅슬레이 기적’

중앙일보 2018.02.26 00:59 종합 14면 지면보기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이 25일 강원도 평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남자 4인승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원윤종·김동현·전정린·서영우 선수(왼쪽부터)가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이 25일 강원도 평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남자 4인승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원윤종·김동현·전정린·서영우 선수(왼쪽부터)가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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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만에 은메달 만든 세계 50위
“몸 불려 사진과 딴판 … 공항서 고생”
브레이크맨 되려 15㎏ 빼도 104㎏
김동현, 청각장애 이기고 값진 메달

25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 4차 주행이 끝나자 모든 관중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한국 남자 4인승 팀이 앞서 선두에 올랐던 니코 발터(독일) 조와 100분의 1초까지 같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1~4차 합계 기록은 3분16초38.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 올림픽 봅슬레이 메달을 따낸 순간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고, 관중석에서 지켜봤던 스켈레톤 남자 금메달리스트 윤성빈(24·강원도청)은 형님들을 향해 “우와!”를 외치며 함께 기뻐했다.
 
파일럿 원윤종(33·강원도청), 푸시맨 전정린(29·강원도청)과 서영우(27·경기연맹), 브레이크맨 김동현(31·강원도청). 지난해 12월 처음 호흡을 함께 맞춘 넷의 레이스는 기적에 가까웠다.
 
한국은 봅슬레이 남자 4인승에선 세계랭킹 50위, 올림픽 참가 29개 조 가운데 최하위였다. 역대 월드컵에서도 2016년 12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대회 때 5위가 최고였다. 그러나 투혼을 담은 레이스로 세계 1위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독일) 조에 이어 은메달을 따면서 발터 조와 함께 시상대에 나란히 섰다. 100분의 1초까지 성적이 같을 경우 공동 순위로 인정하는 올림픽 봅슬레이 규정이 적용됐다.
 
원윤종은 “지나온 많은 시간이 생각났다. 그 힘든 것들을 다 극복하고 달려왔다. 우리는 이 메달을 딸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넷은 우연한 기회에 썰매 종목에 꿈을 실었다. 그리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공포의 외인구단’이 됐다.
 
원윤종과 전정린은 체육교사를 꿈꿨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선천성 청각장애를 겪었던 김동현도 엘리트 선수 경험은 없었다. 단거리 육상 선수 출신인 서영우는 대학 졸업 후 실업팀 입단에 실패하고 미래를 고민했다. 그러다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던 대표팀 선발전 공고를 보고 무작정 지원했다. 2009년 1월 봅슬레이 선수가 된 김동현은 2010년 지인의 소개로 원윤종, 2011년 과 후배 전정린에게 봅슬레이 입문을 권유했다. 운동에 대한 미련을 저버리지 않았던 서영우도 2010년 봅슬레이 강습회를 통해 썰매에 올라탔다.
 
24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 1차 주행에서 원윤종-서영우-김동현-전정린 조가 얼음을 가르며 질주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24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 1차 주행에서 원윤종-서영우-김동현-전정린 조가 얼음을 가르며 질주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봅슬레이 선수가 되기 위해 이들은 하루 10끼 이상 먹는 일도 감내해야 했다. 원윤종은 “봅슬레이 하기 전과 사진이 달라 국제공항 검색대에서 오랫동안 조사받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단순하게 먹는 데만 집중하지 않고 웨이트 트레이닝, 스타트 훈련 등을 통해 근육을 다졌다. 넷의 몸무게는 합쳐 419㎏(원윤종 109㎏, 김동현 104㎏, 서영우 104㎏, 전정린 102㎏)이지만 스타트에선 100m 11초대를 달리는 전사로 거듭났다. 김동현은 2007년과 2011년에 인공 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해 장애도 이겨냈다.
 
원윤종과 서영우, 김동현과 전정린은 2014년부터 봅슬레이 2인승 경쟁 구도를 이어갔다. 그러나 올림픽을 치르는 2017~2018 시즌 고민을 거듭했다. 두 조 모두 경기력이 기대한 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설상가상 원윤종은 지난해 11월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월드컵 연습 도중 두 차례나 썰매가 뒤집혀 목·어깨·허리 등을 다쳤다. 이때 김동현과 전정린이 희생을 자처했다.
 
이용 봅슬레이대표팀 총감독은 “김동현-전정린에게 올림픽 2인승 부문에 출전하지 않고 4인승에 나서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때 김동현이 ‘그러고 싶었는데 먼저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함께 가겠다’고 화답했다”고 말했다. 전정린은 “우리가 힘을 모아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면 그건 포기가 아니라 발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넷은 하루 6~8차례 함께 썰매에 올라탔다. 처음 호흡을 맞춰 힘든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경험 많은 원윤종과 김동현, 발 빠른 서영우와 전정린의 장점은 시너지를 냈다. 6년간 파일럿을 했던 김동현은 맨 뒤에서 빠르게 썰매를 밀고 제어하는 브레이크맨이 되기 위해 120㎏대에서 15㎏을 감량했다. 이용 감독은 지난달 31일 “봅슬레이 남자 4인승 메달도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던 종목에서 ‘은빛 레이스’를 펼친 남자 봅슬레이팀은 한목소리로 “평창올림픽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원윤종은 “유럽·북미가 강해서 도전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우리가 지평을 열었다. 아시아도 우리를 계기로 모든 썰매 종목이 더 발전하는 계기를 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 최종 순위

평창 올림픽 최종 순위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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