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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자 합쳐 기자 100년, 한국현대사 담았죠

중앙일보 2018.02.26 00:16 종합 24면 지면보기
박종권(오른쪽)·종률 형제가 선친과 자신들이 쓴 칼럼을 엮은 『청언백년』 을 펴냈다. [장진영 기자]

박종권(오른쪽)·종률 형제가 선친과 자신들이 쓴 칼럼을 엮은 『청언백년』 을 펴냈다. [장진영 기자]

3부자가 100년간 한 길을 걸었다. 기업을 건네준 상속도, 가업을 물려받은 승계도 아니다. 어긋나기도, 겹치기도 하면서 같은 언론의 길을 걸은 햇수가 모두 합쳐 100년을 넘어섰다. 선친이 42년, 형이 33년, 아우가 27년이다. 3부자가 모두 기자인 것도 드문데 하나같이 주필(선친), 논설위원(형), 논설실장(동생) 등 논설위원실에 몸담았고 처음 입사한 언론사에서 이직한 적이 없다. 선친이 타계한 지 20년째 되는 올해 두 아들은 3부자 기자 100년의 ‘글자취’를 엮어냈다. 500쪽이 넘는 『청언백년(淸言百年)』은 그렇게 탄생했다.
 

칼럼집 『청언백년』 낸 박종권·종률씨
선친 박규덕 신군부 비판하다 고초
“아버지 덕에 저널리즘 놓지 않아”

“아버지가 수십년전 쓰셨던 ‘언론의 양식은 자성과 자괴 위에서 거론돼야 한다’는 칼럼은 지금도 어색하지 않다. 언론의 본령은 시간이 지나도 같다는 걸 새삼 느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신인 형 박종권(60) 칼럼니스트의 말이다.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낸 동생 박종률(52) CBS 논설실장은 “저널리즘이 뭔지도 모를 때 막연하지만 올곧게 서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며 “아버지가 말한 적은 없지만 형과 나는 기자가 됐다. 3부자의 이심전심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고(故) 박규덕

고(故) 박규덕

아버지 고(故) 박규덕(사진) 전 전북일보 주필은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시절 “군은 가시가 많은 울타리가 제격인 탱자나무여야 한다. 땔감이나 건축자재로 쓸 수 없다”는 글로 군의 정치개입을 비판하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집으로 돌아와 장남 종권씨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는 수없이 사표를 냈고, 그때마다 동료들이 찾아와 밤샘 울분의 술판이 이어졌다. 선친은 곡필과 절필 사이에 고뇌하다 종권씨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수건에 싸서라도 들이대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종권씨는 “수건에 싼 비수로 무엇을 자르겠느냐”며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그는 “세월이 흘러서야 선친은 행간이나마 진실을 위해 고뇌했다는 걸 깨달았다”며 “비록 저널리스트와 샐러리맨 사이에 현실적 고민을 했지만 저널리스트의 끈을 놓지 않은 건 아버지 덕”이라고 회고했다.
 
종률씨의 어린 시절은 신문지와 막걸리의 기억으로 점철돼 있다. 형제를 포함한 2남2녀는 주말이면 풀과 가위를 들고 모였다.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신문을 잘라내 스크랩했다. 더 싫은 건 막걸리 심부름이었다. 그는 “매일밤 동료들과 막걸리를 드시며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의 방은 치열한 전쟁터였다”며 “손에 시커멓게 묻은 잉크, 심부름 때 들고다닌 주전자가 정말 싫었지만 그게 나의 길이 됐다”고 털어놨다. 종률씨는 “이 책은 ‘3부자 100년 기자’를 가능하게 도와주고 격려해주신 언론계 동료, 지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펴낸 만큼 책값은 받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책의 제호는 박 전 주필의 친동생이자 형제의 작은아버지인 서예가 하석 박원규씨가 썼다. 출판기념회는 27일 오후5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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