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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전 시민 발벗고 나섰는데" 군산, GM 폐쇄결정에 배신감

중앙일보 2018.02.26 00:01 종합 26면 지면보기

깨어진 '자동차 메카'의 꿈…누가 군산을 울리나
 

GM 공장 폐쇄에 지역 경제 패닉
"전 시민 나서 도왔는데…" 배신감

"부평·창원 살리고 우리만 죽이나"
GM·정부 협상서 소외될까 불안

김우중 시절 자동차 중심지 물망
글로벌 자본의 경영 실패에 휘청

이현상의 세상만사
 
한국GM 문제로 우리 경제의 위기관리 역량이 시험대에 다시 섰다. 한국 시장 철수를 무기로 한 GM과 부실기업 지원의 원칙을 내세우는 정부 간의 협상이 팽팽하다. 부실기업을 왜 국민 세금을 들여 살리느냐는 여론도 만만찮지만, 일자리가 급한 정부는 '조건부 지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문제의 진앙은 한국GM의 군산 공장이었다. 수년에 걸친 20% 이하의 낮은 가동률은 결국 폐쇄 결정으로 이어졌고, 군산 경제는 또 한 번 휘청거리고 있다.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GM 공장 폐쇄 결정으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전북 군산 시내에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GM 공장 폐쇄 결정으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전북 군산 시내에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해안 고속도로 군산IC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는 길 변에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 있다. '피눈물로 지켜온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철회하라' '우리 가족 생명의 터 한국GM 군산공장을 지켜내자'. 전북과 군산의 각종 단체, 공공기관, 기업 명의의 현수막은 시내 곳곳을 덮고 있었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가량 거리인 군산 국가공단 내 한국GM 공장 주변은 평일 낮인데도 적막했다. 지난 8일부터 가동이 중단된 공장 정문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정문 옆 넓은 주차장에는 두어대의 차만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적막한 공기는 GM 공장 주변뿐만 아니었다. 공장 북쪽 군산항 5부두에서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정문까지 가는 5㎞ 남짓한 도로에는 달리는 차를 보기 힘들었다. 2007년 준공된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역시 일감이 부족해 지난해 7월 가동이 중단됐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1650톤 규모의 골리앗 크레인이 처연하다. 지역 경제의 심장인 군산공단과 군산2국가공단은 활력을 잃었다. 2011년 10조원 가까이 되던 생산액은 지난해 5조8000억원으로 떨어졌다. 수출도 3분의 1로 격감했고, 고용 인원도 40% 가까이 줄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한국GM 공장 사이에 원룸과 상가 등이 자리 잡은 오식도동 거리 곳곳에는 임대와 매매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GM 한국 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하면서 군산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 가동이 중단된 한국 GM 군산공장 근로자들이 공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GM 한국 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하면서 군산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 가동이 중단된 한국 GM 군산공장 근로자들이 공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GM의 전격적인 폐쇄 결정에 군산 지역은 충격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22일 찾은 군산시청의 외벽 한쪽에는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붉은 바탕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청사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지금까지 한국GM을 돕기 위해 지역 사회가 발 벗고 나서왔는데, 하루아침에 이런 소망과 열정이 짓밟혔다"고 말했다. 지난해 군산 지역의 한국GM 차 시장 점유율은 17%. 전국 시장 점유율의 두 배 수준이다. 전북도와 군산시가 펼친 '바이(BUY) 전북, 바이(BUY) 군산' 캠페인이 한몫했다.
 
 정부와 GM 간의 협상 테이블에서 군산 공장 폐쇄가 기정사실이 되어가자 군산 민심은 불안감과 섭섭함에 휩싸여 있다. GM은 이미 부평과 창원 공장에 두 종류의 신차 배정 가능성을 언급했을 뿐 군산 공장은 폐쇄 불가피론을 밝혔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마저 "폐쇄 결정을 되돌리기 힘들다"고 말해 군산 시민을 실망하게 했다. 토요일인 24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급하게 군산을 찾아 연 간담회에서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군산 시민과 전북 도민은 왜 우리에게만 불행이 계속되는지 탄식하고 때로는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송하진 전북지사가 24일 오후 전북 군산시 소룡동 자동차융합기술원에서 열린 '군산지역 지원대책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노조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송하진 전북지사가 24일 오후 전북 군산시 소룡동 자동차융합기술원에서 열린 '군산지역 지원대책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노조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식과 분노의 배경에는 냉혹한 글로벌 자본의 논리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을 못 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렸다. 군산 공장 폐쇄 결정이 내려진 9일 한국GM 이사회에서 산업은행 추천 사외이사들이 보여준 행보는 이런 의구심을 더욱 키웠다. 전체 이사진 10명 중 3명을 차지하고 있는 산은 추천 사외이사는 이날 회의에서 모두 기권했다. 안건에 대한 사전 설명이 없었던데다 '공장 한 개 정도 폐쇄' 같은 모호한 언급만 있어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고 기권했다는 것이 산은 측 해명이다. 그러나 노조는 "공장 폐쇄는 이사회 80%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특별결의사항인 만큼 사외이사들이 반대표를 던졌다면 부결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호남 지지 탈환을 노리는 민주평화당은 사외 이사의 결정을 묵인한 산업은행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한다.
 
군산시청 외벽과 정문 주변에 한국GM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현상 기자

군산시청 외벽과 정문 주변에 한국GM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현상 기자

 
 '귀족노조 책임론'에 대해서도 군산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 문용묵 군산시 지역경제과장은 "공장 가동이 한 달 2~3일에 그치면서 경력 23년의 군산 공장 생산직 근로자의 임금 수령액이 5000만원이 채 안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평균 임금 8600만원 이야기는 적어도 군산에서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업일에 임금의 80%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주말특근과 야근 등이 없어지면서 실수령액은 과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80%는 법에 보장된 '회사 귀책으로 인한 휴업 시 평균 임금 70% 지급'보다 10%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낮은 생산성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다. 자동차 공장의 생산성 지표로 흔히 HPU(차 한 대 생산에 드는 시간)가 쓰인다. 글로벌 컨설팅사 올리버와이먼이 발표한 2016년 군산 공장의 HPU는 59.31로, 부평(26.38)과 창원(28.52)의 두 배를 넘는다. 하지만 자동차 전문가들은 공장을 놀리는 시간이 많다 보면 HPU는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황순하 자동차평론가는 "위기의 본질을 GM의 글로벌 전략 변경에 따른 물량 감소와 GM 내 생산기지에 머무는 한국GM의 위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군산 공장은 2013년 글로벌 GM이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과 2012년 각각 27만대와 22만대에 가깝던 생산량은 지난해 3만4000대로 줄었다.
 
군산국가공단 조감도. 공단 입주 기업의 양대 축인 한국지엠 공장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가동 중단 중이다. 이현상 기자

군산국가공단 조감도. 공단 입주 기업의 양대 축인 한국지엠 공장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가동 중단 중이다. 이현상 기자

 
 사실 부평과 군산의 운명은 뒤바뀔 수도 있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1990년 당시 대우자동차와 대우중공업은 총 350만㎡의 군산 부지를 확보했다. 당시 그룹 기획업무를 담당했던 한 은퇴 임원은 "자동차 생산 기지를 부평에서 군산으로 옮겨 가는 안을 세웠으나, 인천시와 정치권의 반대 등에 부딪혀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우가 어려워지면서 군산 부지 일부는 타타대우, 현대중공업 등으로 넘어가고, 자동차 공장도 128만㎡ 넓이에 연 생산 능력 27만대로 축소됐다. 2001년 GM의 대우차 인수 과정에서도 군산과 부평은 명암이 갈렸다. 당시 GM은 부평 공장을 낮은 생산성과 강경한 노조를 이유로 인수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을 협상 카드로 썼다. 정부는 부평을 살리기 위해 GM에 협상의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6년간 위탁 생산 후 인수라는 방식으로 부평 공장은 살아남았고, 결과적으로 군산은 GM의 주력 공장을 확보할 기회를 놓친 셈이 됐다.
 
 문용묵 지역경제과장은 "불가피하게 군산 공장을 매각해야 한다면 GM에 맡겨 둘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 달라는 것이 군산 시민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못 미더운 외국 자본 대신 국내 대기업이 나서주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국내 기업의 사정도 마땅찮은데, 군산 시민의 남은 희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군산이 낳은 소설가 채만식은 식민지 시대 미곡 수탈의 전진 기지가 된 군산의 사회상을 소설 '탁류'에 담았다. 글로벌 자본이 남기고 간 탁류를 군산은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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