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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격차’ 아프리카보다 못한 한국, 범죄 발생하면 부랴부랴 수습

중앙선데이 2018.02.25 01:00 572호 5면 지면보기
성 격차지수 144개국 중 118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남성과 여성 사이 격차란 면에서 한국은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못하다.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서나 나은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이 2006년 이래 경제·교육·보건·정치 분야를 종합평가하는 성 격차지수(Gender Gap Index·GGI)에 따르면 그렇다. 지난해에도 144개국 중 118위였다. 2015년과 2016년에도 다를 바 없어서 각각 115위, 116위였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땐
일부는 사과, 몇몇은 법적대응
이번 미투는 “폭력적 일상 공감”
이념·성 뛰어넘는 연대로 치유를

 
이 같은 ‘후진적 성 격차’는, 법조계에서 문화예술·종교계로 번져가며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는 ‘미투(#MeToo)’에서도 드러난다. 한국 여성들이 처해왔던 냉혹한 현실 말이다.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는 “여전히 똑같은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 관련 부처에서 대책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다가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며 “이번에도 그게 염려된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 비난한 80, 90년대
유사한 논란이 시작된 건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주부 변월수 사건부터다. 강제로 키스한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것 때문에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범행 장소가 상가가 밀집된 지역이고 범인이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변 피고인이 당황하거나, 공포에 떨어 혀를 깨물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징역 6월과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했다. 여성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고 2심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했다. 변월수는 이후 “재판정에서 ‘강간당해 마땅한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검사와 가해자 쪽 변호사들의 태도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 사건은 2년 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각본을 쓴 3인 중 한 명이 이윤택이다. 영화 속에서 주연배우는 이처럼 법정 진술했다. “만일 또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들한테 말하겠습니다. 반항하는 것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안 된다고, 재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입니다.”
 
정작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되기까지는 시일이 더 흘러야 했다. 그 사이 유사한 사건이 불거지면서 사회적 논란도 커졌다. 91년 30세의 여성이 2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이웃집 아저씨’를 살해한 사건과 92년 20대 여성이 13년간 자신을 강간한 의붓아버지를 남자친구와 함께 숨지게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94년에야 비로소 성폭력방지특별법이 제정됐다.
 
2000년대 조두순·김수철 등의 아동 상대 범죄가 2010년 형법 개정으로 이어진 것도 유사한 흐름이다. 당시 유기징역의 상한을 기존 15년(가중 25년)→30년(가중 50년)으로 늘리고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최근 미투 논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가족부는 어디에 있느냐”란 비판이 쏟아진 후에야 여가부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나선 모양새가 되고 있어서다.
 
조용한 무마 시도한 ‘직장 내’ 성폭력
93년 서울대 화학과의 우모 조교가 신모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소한 사건이 불거졌다.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다. 하지만 대개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조용히 처리되거나 유야무야되곤 했다.
 
2000년대 초반 한 방송사 간부에 의한 성폭력 의혹 주장도 그런 경우다. 당시 총학생회·노조·학생운동단체의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가 꾸려졌다. 여성학자인 전희경(시타)은 “‘진보’의 의미를 독점한 운동권이 스스로를 치외법권 지대로 설정하고 대의·조직·보위·동지애의 이름으로 성폭력을 은폐·재생산해온 데 대한 도전이었다”(『성폭력을 다시 쓴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성폭력 가해자 16명의 실명을 공개한 후 명예훼손이란 고소가 이어졌고 진보 진영 내부의 반발이 거셌다. 위원회는 결국 해산했다. 전희경은 “가해자는 이제 반성도 사과도 없이 여전히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며 방송사 사장에게 제출한 진성서와 여성단체들의 의견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썼다.
 
2016년 10월 이후 문단·미술·영화계로 번져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현 시인이 2016년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한국 문단 일각의 여성 혐오와 남성 문인들의 성적 추행과 폭언의 사례를 폭로했다. 이후 트위터에 ‘#문단_내_성폭력’을 달고 유명 시인·소설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일부는 사과문을 게시하기도 했으나, 몇몇은 “사실과 다르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남성 권력층 겨냥한 2018 미투
여성 검사의 성희롱 폭로에서 촉발된 미투는 고은·오태석·이윤택·배병우 등 문화예술계의 대가(大家)로 불리는 이들에게까지 번져갔다. 연극계 인사는 “그간 말이 많았으나 터져 나오지 않았던 건 너무나 막강한 사람들이어서였다”며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강유정도 “아직도 많은 피해자가 겁을 내고 있다”면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일상 영역에서 (얼마나) 폭력적으로 살아왔는가 인식의 계기가 됐고, (제기된 성폭력이) 법적 문제 이상으로 윤리적이고 인간적이란 문제란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그러기 위해선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여성계와 진보 진영이 당파성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장명선 교수는 “호주제 폐지 때는 여야를 뛰어넘었다. 이번에도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성의 문제가 아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성주의 활동가 권김현영은 『성폭력에 맞서다』에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1년형 이상의 실형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계급 남성들”이라며 “상층 계급 남성들은 대부분 성폭력이 아니라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와 감정을 통제하고 독점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반성폭력을 위한 연대는)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이 문제와 깊숙하게 연루돼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며 “성폭력을 비판하는 동시에 성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치유하고자 하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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