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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올림픽 銀 이끈 ‘손가락 들이밀기’ 신공

중앙일보 2018.02.24 17:08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왼손을 쭉 뻗어 기록을 단축한 이상호. [뉴스1]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왼손을 쭉 뻗어 기록을 단축한 이상호. [뉴스1]

‘배추보이’ 이상호(23ㆍ한국체대)의 올림픽 은메달에는 0.01초의 기적이 있었다. 기적은 힘차게 뻗은 손가락 끝에서 나왔다.  

 
24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준결승은 이상호가 펼친 여러 번의 경기 중 가장 특별한 한판이었다. 예선을 2위로 통과한 얀 코시르(슬로베니아)가 레드 코스를, 3위 이상호가 블루 코스를 선택해 경기를 치렀다.
 
이날 유난히 따가운 햇살이 내리쬔 탓에 두 코스의 설질 차이가 컸다. 직사광선에 노출된 블루 코스는 슬로프 일부가 녹아내렸다. 울창한 숲이 태양빛을 가린 레드 코스는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했다. 때문에 예선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해 코스 선택권을 확보한 선수들은 대부분 레드 코스에서 경기를 했다.
 
대한민국 설상 사상 첫 은메달을 목에 건 이후 이상헌 감독과 포옹하는 이상호. [뉴스1]

대한민국 설상 사상 첫 은메달을 목에 건 이후 이상헌 감독과 포옹하는 이상호. [뉴스1]

이상호가 블루 코스를 배정받은 데다, 상대 선수 코시르가 2014년 소치 평행회전 은메달, 평행대회전 동메달을 거머쥔 베테랑으로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해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기적 같은 역전승이었다.
 
경기 후 느린 화면에 이상호의 스노보드 플레이트가 코시르보다 살짝 늦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듯한 장면이 잡혀 패배가 예상됐지만, 전광판은 0.01초 차로 이상호의 승리를 선언했다.
 
비밀은 이상호의 손가락 끝에 있었다.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이상호는 상체를 숙이며 팔을 쭉 뻗었다. 코시르도 비슷한 동작을 했지만, 이상호의 손끝이 코시르보다 살짝 앞섰다. 이상헌 스노보드대표팀 감독은 “스노보드는 플레이트가 아니라 선수의 신체 중 한 곳이 결승선을 통과한 시점으로 기록을 잰다”면서 “(이)상호가 마지막에 팔을 쭉 뻗는 동작으로 코시르를 제쳤다. 0.01초는 손가락 한 두 마디 정도의 간격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상호의 손가락 끝 한 마디가 한국 설상 사상 첫 은메달을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이상호의 손가락 끝 한 마디가 한국 설상 사상 첫 은메달을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과거 쇼트트랙 대표팀이 ‘칼날 들이밀기’라는 변칙 기술로 올림픽 금메달을 석권하던 시절이 있었다. 선수의 몸이 아닌 스케이트 날 끝을 기록 측정의 기준으로 삼는 점을 이용해 기록과 순위를 앞당긴 성공 사례였다. 이상호는 ‘손가락 들이밀기’로 올림픽 4강전에서 승패를 뒤바꿨다. 평창=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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