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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독학한 일본어로 평창 겨울올림픽 통역했죠"

중앙일보 2018.02.24 02:47
2018 평창 겨울올림픽 17일간의 여정도 이제 끝나간다. 선수·관객·관계자 등 올림픽을 준비해온 모두가 열정으로 넘쳤던 현장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릴 때다. 특히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올림픽을 도운 1만4000여명의 자원봉사자의 감회는 남다를 것 같다. 
강릉시 웰컴센터에서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를 한 안충호(74·춘천시)씨도 이들 중 하나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혹한의 추위까지 견디며 든든히 제 몫을 해온 그다.    

올림픽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 안충호(74)씨
손녀같은 동료들과도 스스럼 없이 친해져
휴무일엔 경기장 찾아 일본 선수 사진촬영도

가족들은 안씨의 자원봉사 지원을 처음부터 강하게 말렸다. 하지만 안씨는 “오랫동안 일본어를 공부해온 만큼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행사에서 이를 활용해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안충호(74)씨. [사진 안충호]

평창 겨울올림픽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안충호(74)씨. [사진 안충호]

안씨가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건 50년 전인 대학교 신입생 스무살 때였다. 대학에 가면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한글과 어순이 같은 일본어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과 국교조차 맺기 전이었던데다 반일 감정이 심해 일본어 학원은 커녕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일본어 책을 꺼내놓지도 못했단다. 안씨는 혼자 일본어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공부했다. 고등학교에서 한국지리를 가르쳤던 안씨는 이른 아침이나 퇴근 후 틈틈이 EBS를 통해 일본어를 공부했다. 지역내 스포츠댄스나 기타동호회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도 그의 일본어 선생님이었다. 12번이나 일본에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북쪽 홋카이도부터 남쪽 가고시마까지 곳곳을 다녀왔다. 컴퓨터엔 익숙하지 않아 일본 영화나 드라마로 공부하는 요즘과는 달리 직접 일본인을 만나고 책을 보는 게 안씨만의 공부법이었다.
하지만 막상 올림픽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자 지원은 엄두가 나지 않았단다. 안씨는 “1년 전 자원봉사 모집 공고를 봤지만 일본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포기했다 추가 모집 공고를 보고 겨우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통역 자원봉사 지원자는 시험을 통과해야한다. 일본인이 안씨에게 전화를 걸어 올림픽 관련 상식을 물으면 이에 답하는 식이다. 이외에 일상적인 대화도 나눴다. 
안충호(가운데)씨는 경기장에서 촬영한 일본 스피드스케이팅 고다이라 나오 선수 사진을 인화해 일본 관광객들에게 선물로 줬다. [사진 안충호]

안충호(가운데)씨는 경기장에서 촬영한 일본 스피드스케이팅 고다이라 나오 선수 사진을 인화해 일본 관광객들에게 선물로 줬다. [사진 안충호]

안씨는 합격했고 2월 4일 강릉에 입성했다. 막상 와보니 기존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던 춘천태권도대회 등의 행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큰 규모에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단다. 통역 자원봉사는 영어 통역 5명, 중국어 1명, 일본어 1명 등 총 7명이 한 조를 구성해 활동했다. 같은 팀엔 손녀와 비슷한 나이의 여고생부터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있었다. 안씨는 “처음엔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아 쑥스러웠는데 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모였고 또 통역이라는 공통된 일을 하기 때문에 빨리 친해졌다”고 말했다.  
안충호씨가 강릉 웰컴센터에서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안충호]

안충호씨가 강릉 웰컴센터에서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안충호]

오전·야간·휴무 3교대 근무에, 숙소인 속초에서 근무지인 강릉까지 매일 왕복 2시간 거리를 오가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설 연휴도 반납했다. 안씨는 쉬는 날이면 경기장을 찾아 일본 선수들의 모습을 사진 찍고 인화해 강릉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나눠줬다. 사진을 받고 좋아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걱정은 여전하지만 안씨는 패럴림픽이 끝날 때까지 자원봉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일본어를 잘해야만 통역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처럼 회화실력이 부족해도 열린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인 만큼 젊은 친구들에게 통역 봉사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며 웃었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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