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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 버그 감염된 평창...북한에 대한 관심도 삼켰다"

중앙일보 2018.02.24 01:09 종합 8면 지면보기
한국 여자컬링팀이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접전 끝에 이긴 후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한국은 8엔드까지 7-4로 앞서다 동점을 허용했으나 연장전에서 8-7로 승리했다. 결승은 25일 스웨덴과 치른다. [연합뉴스]

한국 여자컬링팀이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접전 끝에 이긴 후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한국은 8엔드까지 7-4로 앞서다 동점을 허용했으나 연장전에서 8-7로 승리했다. 결승은 25일 스웨덴과 치른다. [연합뉴스]

‘갈릭 걸스’가 ‘평양올림픽’ 논란을 쓸어버렸다.
 

한국, 일본과 피말린 연장전
김은정 절묘한 샷, 예선 패배 설욕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

세계 언론, 한국 컬링 신드롬 주목
WSJ “북한에 쏠렸던 관심 되돌려”

평창올림픽은 지난 9일 개막했다. 대회 초반만 하더라도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의 개회식 참석, 북한 응원단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전 세계 언론은 정작 올림픽 경기보다 ‘북한 이슈’에 더 초점을 맞췄다. 일각에서는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 아니냐며 우려했다.
 
하지만 대회 중반 이후 한국 여자컬링대표팀이 평창올림픽의 주인공이 됐다. 예선에서 파죽의 8승1패를 거뒀고, 23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준결승에서 연장 끝에 일본(세계 6위)을 8-7로 꺾었다.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23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상대팀 스톤을 밀어내고 있다. 이날 대표팀은 일본팀과 연장 접전 끝에 8대7로 승리했다. [강릉=뉴스1]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23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상대팀 스톤을 밀어내고 있다. 이날 대표팀은 일본팀과 연장 접전 끝에 8대7로 승리했다. [강릉=뉴스1]

 
김은정(28)·김영미(27)·김경애(24)·김선영(25)·김초희(22)로 구성된 한국(세계 8위)은 막강이었다. 한국은 1엔드에 스킵 김은정의 정교한 8번째 샷을 앞세워 3점을 쓸어담았다. 4-3으로 앞선 5엔드는 김선영이 5번째 샷을 트리플 테이크아웃(한 번에 스톤 3개를 쳐내는 것)으로 연결하자 전광판에 ‘대박’이란 글자가 떴다. 한국은 2점을 더 보태 6-3으로 달아났다.
 
한국은 7-4로 돌입한 9엔드에 2점을 줬고, 10엔드에 김은정의 8번 샷이 아깝게 빗나가 7-7로 연장에 돌입했다. 그러나 연장전 김은정의 절묘한 샷으로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한국은 25일 오전 9시5분 스웨덴과 결승전을 치른다. 한국은 예선에서 스웨덴을 7-6으로 꺾은 바 있다.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23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후 기뻐하고 있다. [뉴스1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23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후 기뻐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은 예선에서 세계 1~5위 국가를 연파하면서 평창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1일 “(평창에서 발생한) 노로바이러스는 피했는데 컬링병에 감염됐다”고 보도했다. 조너선 청 WSJ 서울지국장은 “올림픽이 끝나면 북한 기사를 쓰는 원래 일로 돌아가겠지만 그때까지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여자 컬링에 대한 기사를 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평창올림픽 이야깃거리는 북한의 움직임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한국 컬링선수들이 관심을 선수들에게로 돌려놓았다”고 덧붙였다.
북한 응원단이 22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준결승에서 파도타기 응원을 하고 있다.[강릉=연합뉴스]

북한 응원단이 22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준결승에서 파도타기 응원을 하고 있다.[강릉=연합뉴스]

 
평창올림픽을 찾은 북한 응원단 229명은 대회 초반 절도 있는 ‘칼군무’를 펼치며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K팝 트와이스의 ‘TT’가 흘러나오는데 한복을 차려입고 부채춤을 춰 엇박자가 났다.
 
북한 응원단을 향한 관심은 대회 중반 이후 시들해졌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선 국내에 ‘북한 미녀 응원단 팬클럽’이 생겨날 정도였다. 하지만 2018년엔 북한 응원단을 북한 정권의 여성을 이용한 선전 도구로 여기면서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늘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여자컬링대표팀이 올림픽을 사로 잡았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캡처]

뉴욕타임스는 한국여자컬링대표팀이 올림픽을 사로 잡았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캡처]

 
주요 외신들 역시 북한 대신 한국 여자컬링대표팀 관련 기사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1일 “‘갈릭 걸스’가 평창올림픽을 사로잡았다. 팀원 5명 중 4명이 인구 5만4000명의 소도시 의성 출신인데, 의성 특산물 마늘에 빗대 ‘갈릭 걸스’로 불린다”고 소개했다.
 
23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연장접전 끝에 8대7로 승리 거둔 한국의 김은정(왼쪽)과 김영미가 서로를 껴안고 기뻐하고 있다.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컬링 최초로 메달을 확보한 팀킴은 25일 오전 스웨덴과 금메달을 놓고 다시 한 번 결전을 치룬다. [강릉=연합뉴스]

23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연장접전 끝에 8대7로 승리 거둔 한국의 김은정(왼쪽)과 김영미가 서로를 껴안고 기뻐하고 있다.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컬링 최초로 메달을 확보한 팀킴은 25일 오전 스웨덴과 금메달을 놓고 다시 한 번 결전을 치룬다. [강릉=연합뉴스]

프랑스 르몽드는 23일 “안경 낀 김은정의 무표정한 얼굴, 김은정이 ‘영미~’라고 외치는 모습은 인터넷상에서 각종 패러디를 양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정의 무표정한 표정을 패러디한 사진.

김은정의 무표정한 표정을 패러디한 사진.

김은정은 동그란 뿔테 안경을 끼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안경선배’란 별명을 얻었다. 김은정이 경기 내내 리드의 김영미를 향해 외치는 “영미~”는 평창올림픽 최고 유행어다.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 김은정이 23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8대7로 승리한 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릉=뉴스1]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 김은정이 23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8대7로 승리한 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릉=뉴스1]

 
국제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자컬링대표팀은 평창올림픽 기간 믹스트존에서 세 차례나 눈물을 흘렸다. 김은정은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힘든 시간이 있었다. 거기에 휩쓸려 삐끗하면 저희만 바보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김민정(37) 감독은 “한국 컬링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가시밭길을 걸어 왔다”며 눈물을 훔쳤다.
컬링대표팀은 평창올림픽을 앞둔 지난달 30일 경북컬링훈련원에서 자체훈련을 했다. 국내에서 시뮬레이션 국제경기를 못치르자 남자대표팀과 자체경기를 치렀다. [의성=박린 기자]

컬링대표팀은 평창올림픽을 앞둔 지난달 30일 경북컬링훈련원에서 자체훈련을 했다. 국내에서 시뮬레이션 국제경기를 못치르자 남자대표팀과 자체경기를 치렀다. [의성=박린 기자]

 
컬링대표팀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경북컬링훈련원에서 ‘찬밥 훈련’을 했다. 빙판 감각을 익혀야 하는 컬링은 홈 어드밴티지가 중요한 종목이다. 하지만 강릉컬링센터는 지난해 경기장 시멘트 바닥이 갈라진 탓에 개·보수 공사를 했다.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경기장에서 9일 훈련한 게 전부다. 평창슬라이딩센터 트랙을 400차례 넘게 탔던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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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 김은정이 23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8대7로 승리를 거둔 후 관중을 향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강릉=뉴스]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 김은정이 23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8대7로 승리를 거둔 후 관중을 향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강릉=뉴스]

 
여자컬링대표팀은 평창올림픽 직전까지 경북컬링훈련원에서 자체 훈련을 했다. 진천선수촌 컬링장을 훈련 장소로 제공받았지만 얼음 상태가 좋지 않아 되돌아갔다. 지난달 30일 여자대표팀은 경북컬링훈련원에서 남자대표팀과 자체 평가전을 치렀다. 컬링대표팀은 강릉컬링센터의 관중 앞에서 시뮬레이션 국제경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대표팀 선수들은 휴대전화로 15초~1분짜리 야구장 응원 소리 음성파일을 반복해 틀어놓고 소음에 대비한 가상훈련을 했다.
23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승리한 한국 선수들이 감독, 코치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강릉=연합뉴스]

23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승리한 한국 선수들이 감독, 코치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강릉=연합뉴스]

 
대한컬링경기연맹은 지난해 8월 집행부 내분으로 난파 중이다. 대표팀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표팀은 지난 10년간 고향인 의성군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컬링계 관계자는 “그동안 컬링팀에 관심이 없던 의성군 정치인들이 컬링팀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갈릭 걸스 홍보에만 열을 올려 볼썽사납다”고 꼬집었다. 컬링대표팀 선수들은 “이제 갈릭 걸스보다 예쁜 별명을 붙여 주세요”라고 말했다.
 
강릉=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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