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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서울산책] ‘수호랑’을 모른다고요?

중앙일보 2018.02.24 00:30 종합 18면 지면보기
나리카와 아야

나리카와 아야

이달초 일본에서 중학교 동창들이 놀러 왔다. 일본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는 영하 두 자리의 추위 속에서 명동이나 인사동, 동대문 등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한국에 살고 있으면 별로 안 가게 되는 곳이지만, 오랜만에 관광객처럼 쇼핑하는 것도 신선하고 즐거웠다. 특히 명동에서는 추위도 잊고 화장품을 찾아 다녔다. 한국 화장품은 일본에서 인기가 많아 선물로 사가면 좋아한다. 더 이상 손에 들 수 없을 정도로 잔뜩 샀다.  
 
일본에서는 10대 중반의 여학생들을 말할 때 ‘젓가락이 굴러도 웃긴 나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배꼽이 빠질만큼 웃고 떠들어댔다. 마치 중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며칠을 지내다 친구들이 떠날 때가 되니 아쉬웠다. 차로 친구들을 김포공항까지 배웅했는데 거기서 평창 겨울 올림픽 공식 스토어를 발견했다.  
김포공항의 평창 겨울 올림픽 공식 스토어. [사진 나리카와 아야]

김포공항의 평창 겨울 올림픽 공식 스토어. [사진 나리카와 아야]

친구들은 공식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가 눈에 들어오자 “귀엽다!(가와이~)”라고 눈을 반짝이며 다시 쇼핑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돌아 다니는 동안 한번도 올림픽 공식 스토어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 친구는 “올림픽 개막 직전인데 그런 분위기가 별로 없다. 이 즈음 한국에 오는 일본 사람이라면 평창 올림픽 관련 상품을 무엇이라도 사고 싶어할텐데 좀 아쉽다"고 말했다.
어사화 수호랑. 간이시상식에서 메달 대용으로 쓰인다.

어사화 수호랑. 간이시상식에서 메달 대용으로 쓰인다.

김포공항에서 산 수호랑 굿즈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역시나 일본 친구들의 반응이 좋았다. 다음에 일본에 들어올 때 사다 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그런데 주변 한국사람들은 내가 갖고 있는 수호랑 굿즈를 봐도 별 반응이 없다. “호랑이냐”고 묻는 정도다. “평창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수호랑”이라고 해도 “그래?” 하고 만다.
 
하긴 일본은 뭔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마스코트를 만들어서 문구류나 과자, 옷 등 여러 관련 상품을 내놓는다. 그 행사에 가지 않아도 마스코트가 예뻐서 사는 사람도 많다. 2010년 나라(奈良)에서 기자로 근무했을 때 천도(遷都) 1300년을 기념하는 큰 행사가 있었다. 나라는 서기 710년에 수도가 된 곳이다. 그 행사의 공식 마스코트가 ‘센토군’이었다. 천도의 일본식 발음이 센토다. 스님 같은 모습을 한 아이의 머리에 사슴 같은 뿔이 있는 마스코트였다. 나라 지역은 사찰과 사슴이 유명하다. 
나라의 공식마스코트 센토군.

나라의 공식마스코트 센토군.

한국 관광객들도 대부분 큰 불상이 있는 도다이지(東大寺)나 사슴이 많은 나라공원으로 간다. 특이한 외모의 센토군은 큰 이슈가 되었다. “징그럽다”는 의견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센토군의 마스코트 지정에 대항하듯 민간 마스코트도 등장했다. 센토군 관련 기사가 신문 1면에 나온 적도 있다. 그 당시 문화 담당 기자였던 나는 센토군 담당이라고 불렸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구마몬.구마모토현을 홍보하는 공식 캐릭터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구마몬.구마모토현을 홍보하는 공식 캐릭터다.

 
일본처럼 마스코트에 열광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너무 반응이 없는 것도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귀여운 수호랑과 반다비가 좀 더 활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번 유학 생활 목표 중 하나가 평창올림픽을 직접 보는 것이었다. 지난해 가을쯤 티켓을 알아봤는데 내가 보고 싶은 경기의 입장권은 생각보다 비쌌고, 날씨까지 추워지면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민하는 사이 올림픽 시기에 올림픽과는 전혀 무관한 다른 취재를 도와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결국 평창에 못 가게 됐다. 개회식날 집에서 TV를 보는데 경기 관련 뉴스보다 북한 관련 뉴스가 훨씬 많았다. 
 강릉역 앞에 세워진 올림픽 캐릭터 수호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 강릉=우상조 기자

강릉역 앞에 세워진 올림픽 캐릭터 수호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 강릉=우상조 기자

큰 화제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올림픽까지 정치색이 입혀지는 것 같아 조금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 화면에 수호랑과 반다비가 등장하면 반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창올림픽이 평화무드 속에 개최된 것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 이 평화가 올림픽 기간만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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