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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출몰이 일상인 마을 "문 5분간 쿵쿵, 외출 땐···"

중앙일보 2018.02.23 15:33
서울 정릉3동 주민인 대학원생 이모씨가 집 대문에서 약 5m 떨어진 거리에서 찍은 멧돼지 두 마리.

서울 정릉3동 주민인 대학원생 이모씨가 집 대문에서 약 5m 떨어진 거리에서 찍은 멧돼지 두 마리.

 
서울 성북구의 끝자락인 정릉3동 주민들은 외출할 때 늘 호루라기를 챙긴다. 수시로 마을에 출몰하는 멧돼지들을 쫓기 위해서다. 28가구가 사는 이 작고 조용한 마을은 보통 일주일에 2~3번, 많을 땐 매일 멧돼지가 목격되는 '멧돼지 마을'이다.
 
지난 9일 오전 8시30분쯤에는 동네 꼭대기에 있는 용화사 앞 공터에 설치된 무쇠 포획틀에 멧돼지가 잡혔다. 용화사의 주지 혜민 스님은 "절 안에서 기도 중이었는데 '쿵'하는 쇳소리가 들려 뭔가 봤더니 멧돼지였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오후 찾아간 용화사 앞에는 붉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는 "평소에도 멧돼지가 땅을 파헤친 흔적들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큰 멧돼지가 문을 5분 정도 쿵쿵 두드려 깜짝 놀랐었다"고 말했다.
 
주민 이모씨의 집 바로 옆에 있는 산자락. 이씨는 이곳에서 멧돼지를 자주 목격한다. 김정연 기자

주민 이모씨의 집 바로 옆에 있는 산자락. 이씨는 이곳에서 멧돼지를 자주 목격한다. 김정연 기자

서울 정릉3동 삼거리 옆 공터. 이곳에도 멧돼지가 종종 출몰한다고 한다. 김정연 기자

서울 정릉3동 삼거리 옆 공터. 이곳에도 멧돼지가 종종 출몰한다고 한다. 김정연 기자

 
멧돼지들은 동네와 가까운 북한산 산자락에서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지고 밭을 파헤친다. 주민들에게는 이미 일상인 것들이다. 40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대학원생 이모(43)씨는 "며칠 전에도 멧돼지 다섯 마리를 코 앞에서 봤다"며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대문과 멧돼지 발견지점 사이의 거리는 5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또 다른 주민 김모(63)씨는 "길모퉁이에 멧돼지 세 마리가 놀고 있어 옆집에 숨어있었던 적이 있다"며 "저번에는 쓰레기통 뒤에서 소리가 나길래 고양이인줄 알고 봤더니 멧돼지여서 식겁했다"고 했다.
 
주민 이옥기(69)씨의 집 담장 밑에는 멧돼지가 판 큰 구덩이 흔적이 남아있었다. 마당에 심은 백합의 뿌리를 먹기 위해 멧돼지가 땅을 헤쳐놓은 것이었다. 이씨는 "지난해에는 밭에 고구마를 100포기 심었는데 멧돼지가 일주일 내내 밭을 헤집어 놨다"며 "대낮에도 밭에서 일할 때 혹시 멧돼지가 나타나지 않을까 무서워서 둘러보게 된다"고 털어놨다. 혜민 스님은 "신도들에게 저녁 땐 가급적이면 절에 오지 말라고 한다. 신도들도 나한테 '몸조심 하라'고 항상 이야기 한다"고 설명했다.
 
멧돼지는 12월부터 2월까지가 번식기다. 이 시기에는 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주로 산 속에 머물기 때문에, 출몰 빈도가 다른 때에 비해 높지 않은 편이다.앞으로 날이 풀리면 더 많아질 거란 얘기다. 김씨는 "여름에는 대낮에도 왔다갔다 한다. 이 동네는 주로 마을 토박이인 노인들이 많아서 다들 불안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이옥기씨는 멧돼지가 담장 안 식물을 파헤치며 담장을 망가뜨리자 보강틀을 설치했다. 김정연 기자

주민 이옥기씨는 멧돼지가 담장 안 식물을 파헤치며 담장을 망가뜨리자 보강틀을 설치했다. 김정연 기자

 
멧돼지는 '엽총'이 최종 사살 수단이다. 마취총이나 일반 권총으로는 멧돼지 가죽이 두꺼워 성질만 자극할 뿐 큰 상해를 입힐 수 없다. 이때 출동하는 엽총을 가진 포수는 대부분 사단법인 '서울 멧돼지 출현 방지단' 소속 엽사들이다. 112나 119, 혹은 구청으로 멧돼지 출현 신고가 접수되면 관할 부서에서 지역 내 거주하는 방지단 소속 엽사에게 전화를 걸어 출동 요청을 한다. 따로 보수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의 형식이다. 
 
서울 성북구를 비롯해 종로구, 서대문구, 노원구 등 북한산 자락에는 멧돼지 출현 신고가 거의 매일 들어온다. 대부분은 신고 직후 멧돼지가 산으로 올라가버려 잡지 못한다. 지난해 성북구에서 잡은 멧돼지는 11마리다. 민원이 빗발치자 성북구청에서는 멧돼지 빈출지역에 포획틀을 설치하는 등 대책을 세웠지만 정확한 멧돼지 개체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우린 민원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일하는 것이고 정확한 개체수 관리는 시나 정부가 하는 업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가 파악한 북한산 일대 멧돼지 개체 수는 2016년 120마리, 지난해 110마리다. 그러나 같은 해 실제로 이곳에서 포획된 멧돼지가 각각 107마리, 71마리인 점을 감안하면 정확도가 떨어지는 수치다.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이항 교수는 "결국 멧돼지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인데 그러려면 먼저 정확한 실태를 지자체나 정부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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