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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비공식 채널' 책임진 서훈 국정원장 "나는 從北 아닌 知北"

중앙일보 2018.02.23 12:14
지난 10일 청와대. 북한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문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표정이 밝았지만, 유독 한 사람만 굳은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정보당국의 수장인 서훈 국가정보원장이다.
 
당초 서 원장은 김여정과의 접견 배석자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서 원장의 배석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접촉을 담당하는 곳이 원래 국정원과 통일부”라며 “당초 배석자 명단을 발표한 때도 조명균 통일장관 ‘등’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文 대통령이 서훈 원장 배석시킨 이유
 
청와대는 2시간 50분간 진행됐던 청와대 접견과 오찬 회동 중에서 문 대통령의 모두발언까지만 언론에 공개했다. 취재진이 모두 빠져나가자 문 대통령은 서 원장을 북한 대표단에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전달받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살펴보고 있다. 서훈 국정원장(맨 왼쪽)이 굳은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전달받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살펴보고 있다. 서훈 국정원장(맨 왼쪽)이 굳은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명균 장관과 서훈 원장을 직접 소개했던 문 대통령의 말은 이랬다.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때 북한을 자주 방문했던 분들이다. 제가 이 두 분을 (이 자리에) 모신 것만 봐도 남북관계를 빠르고 활발하게 발전시켜나가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비교적 상세한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공개한 발언록에는 서 원장의 발언은 단 한 마디도 포함돼있지 않다.
 
“북한과의 비공식 접촉은 국정원 라인”
 
서 원장이 10일 접견에 배석한 이유는 12일이 지나서야 확인됐다. 청와대가 북한과의 접촉 채널이 국정원과 북한의 통일전선부였다는 사실을 사실상 공개하면서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5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2018.2.5 [연합뉴스]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5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2018.2.5 [연합뉴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2일 “북한이 김영철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한다. 북한의 참석은 비공식 접촉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ㆍ미 간 대화에서 한국은 가운데에 있다”며 “북한과의 비공식 접촉에서는 국정원 라인이 가동될 수밖에 없고, 미국에는 중앙정보국(CIA) 라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영철 통전부장의 지위는 우리 국정원장과 유사하다”며 “서 원장이 북한 대표단장인 김영철의 카운터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원장은 25일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 때 방한하는 김영철과 별도 회동을 할 예정이다.
 
문정인 “서훈 원장이 고생하고 있더라”
 
청와대는 지난 10일 사실상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할 북한 대표단에 그의 동생 김여정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이미 지난달 파악하고 있었다.
 
9일 오후 평창올림픽플라자 내 개·폐회식장에서 진행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그 뒤에 김영남과 김여정이 서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9일 오후 평창올림픽플라자 내 개·폐회식장에서 진행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그 뒤에 김영남과 김여정이 서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리고는 국정원 라인을 통해 북ㆍ미 접촉을 중재해왔다. 서 원장은 이 기간 미국을 방문해 폼페이오 CIA 국장을 만나 개막식 때 방한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의 접촉을 직접 주선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10일 접촉 시도가 무산된 사실을 처음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은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회동을 원한다는 의사를 CIA로부터 전달받고,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접촉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의사 결정은 2주일에 걸쳐 진행됐다. 김여정의 방한은 이미 1월 중순 이전에 결정돼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지난해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1주년 기념 '한반도 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대토론회가 열렸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발언하고 있다.임현동 기자/20170927

지난해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1주년 기념 '한반도 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대토론회가 열렸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발언하고 있다.임현동 기자/20170927

 
실제로 지난달 말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인 문정인 연세대 특임 명예교수를 모처에서 따로 만났다. 문 특보는 “북한이 북ㆍ미접촉을 주선하는 우리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서훈 원장이 상당히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최근 한 특강에서는 “문 대통령의 의중은 북ㆍ미 대화를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ㆍ미 대화가 이뤄지면 한ㆍ미 연합군사훈련도 북한에 큰 지장이 없는 것 아닌가 본다. 북ㆍ미 대화를 재개하고 6자회담을 활성화해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훈 “나는 종북(從北) 아닌 지북(知北)”
 
서 원장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안보외교 분과장을 맡았다. 당시 그는 사석에서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종북이 아니라 지북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은 당연하고 한국에서도 북한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며 “기껏 북한에 들어갔던 주방장 같은 사람의 전언을 듣는 수준에서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김정은의 협상 전략을 누가 이해하겠느냐”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일 오후 청와대에서 서훈 신임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차담회를 하기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7.6.1.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일 오후 청와대에서 서훈 신임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차담회를 하기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7.6.1.청와대사진기자단

 
서 원장은 국정원에서도 대표적인 ‘대북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실무를 주도했다. 이에 앞서 1996년에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로 북한에 2년간 상주했었다.
 
4일 오후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찾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왼쪽 두번째)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을 관람하던 중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홍원 국무총리, 김관진 국가안보실장,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중앙포토]

4일 오후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찾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왼쪽 두번째)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을 관람하던 중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홍원 국무총리, 김관진 국가안보실장,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중앙포토]

서 원장은 “김정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014년 때 북한이 보내온 대화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당시 아시안게임 때 북한이 보낸 황병서ㆍ김양건ㆍ최룡해 가운데 최소한 황병서는 대화를 재개해보자는 김정은의 강력한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북한이 파견했던 ‘3인방’을 직접 만나지 않고 돌려보냈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지내가 실각한 것으로 알려졌던 황병서는 지난 15일 다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김여정의 방한까지 ‘급물살’을 타며 진행된 남북 관계 복원과 맞물린 시점이다.
 
지난해 10월 실각설이 돌았던 북한의 황병서 전 총정치국장이 지난 15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때 동행하는 장면이 조선중앙TV에 등장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실각설이 돌았던 북한의 황병서 전 총정치국장이 지난 15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때 동행하는 장면이 조선중앙TV에 등장했다. [연합뉴스]

통일부는 지난 18일 “김정일 생일기념 중앙보고대회와 16일 김정일 시신 참배 때 황병서가 4개월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다만 황병서는 이전 군복에 차수 계급장을 달고 첫 줄에 서는 대신 사복 차림으로 둘째 줄에 섰다. 또 단상에 마련된 VIP 좌석인 주석단이 아닌 관람석에 앉는 모습도 이전과는 달랐다.  
 
청와대 “결과로 보여주겠다”
 
북한이 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하는 대표단의 단장에 김영철을 지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가 천안함과 연평도, 목함지뢰 사건 등의 배후로 지목돼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22일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행사 참석을 위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대표단을 25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파견하겠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3년 3월 7일 새벽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오른쪽),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던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를 시찰했다고 8일 보도하며 공개한 노동신문 사진. 2018.2.22 [노동신문=연합뉴스]

통일부는 22일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행사 참석을 위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대표단을 25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파견하겠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3년 3월 7일 새벽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오른쪽),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던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를 시찰했다고 8일 보도하며 공개한 노동신문 사진. 2018.2.22 [노동신문=연합뉴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서 원장의 카운터파트너는 국정원과 통일부 기능을 겸하고 있는 북한의 김영철 통전부장”이라며 “천안함 등과 관련해 남남갈등 가능성은 예상했지만, 남북 평화 정착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문제는 결국 결과로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남북 대화 재개와 향후 구상하고 있는 비핵화를 위한 북ㆍ미 대화 과정에 서훈 원장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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