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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 이과 수능 ‘기하’ 제외에 뿔났다…"AI·3D프린터 개념도 못 가르쳐"

중앙일보 2018.02.23 09:00
교육부가 올해 고1이 2020년도에 치르는 수능 수학에서 기하를 제외한 것과 관련해 수학·과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 에듀웰센터에서 열린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 공청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뉴스1]

교육부가 올해 고1이 2020년도에 치르는 수능 수학에서 기하를 제외한 것과 관련해 수학·과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 에듀웰센터에서 열린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 공청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뉴스1]

올해 고교 1학년 대상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이과 계열 수학에서 '기하’가 제외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대해 과학계에선 "'기하'가 수능에서 빠지면 미래기술 변화에 대비하기 어렵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국공학한림원·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기초과학학회협의체·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 등이다. 
 

과학기술계 7개 단체 “수능에 기하 포함해라”
교육부 “학부모·교사 등 84% 기하 제외 찬성”
수학계 “교육부 설문조사 왜곡돼” 반박
수학 교사들 “수능서 제외 과목 정상수업 어려워”

이들 단체는 앞서 21일 낸 성명서에서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에서 기하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의 기초가 되는 수학을 경시하는 교육은 국가경쟁력을 낮추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단체들에 따르면 기하는 로봇·인공지능·3D 프린팅·자율주행차·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미래 시대에 주목받는 기술 개발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또 타이포그래피, 직물 설계, 산업디자인 등의 분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이런 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역량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이공계열로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들은 기하의 개념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대학에서 배우는 기초과학이나 공학에서는 사물의 구조나 움직임을 다루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필수다. 2015교육과정 중에서 공간에 대해 다루는 과목은 기하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19일 교육부는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 관련 공청회에서 자연계 학생들이 치르는 수학 과목 출제범위에서 ’기하와 벡터’를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 ‘기하’는 진로선택, ‘벡터’는 전문교과로 분리돼 있다. 정책연구를 총괄한 정진갑 계명대 교수는 당시 “기하까지 출제하면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늘고, 다양한 선택과목을 학습한다는 2015 개정교육과정의 취지와도 맞지 않아 제외하기로 했다”며 “학부모·교수·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수학 가형에 기하를 제외하는 데 찬성하는 의견이 전체 2119명 중 1790명으로 84%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자료: 대한수학회

자료: 대한수학회

하지만 수학계에서는 설문조사 자체가 왜곡돼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향숙 대한수학회장은 “대한수학회는 수학 분야에서 가장 많은 회원(4147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교육부의 수능 출제범위 설문조사에 대한 협조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더구나 설문조사 질문지에는 처음부터 ‘기하’를 제외한 채 문항을 구성해 응답자들 선택의 폭을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기하를 포함하는 것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것이다. 응답자들의 선택을 제한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이공계열 교수 중에는 수능 수학에서 기하가 제외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 많다. 황성호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기계공학은 기계를 설계하는 학문이라 3차원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2차원인 기하에 대한 개념이 필수다. 기하와 벡터에 대한 기본 개념을 모른 채 기계공학과에 진학하면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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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교사들은 수능에서 기하가 빠지면 학교 수업이 파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우창영 휘문고 수학교사는 “수능에서 빠지면 기하나 벡터 과목에 학생들이 집중하기 어렵다. 학교에서도 진도를 빨리 끝낸 후 수능 문제풀이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철 양서고 수학교사는 “기하와 벡터가 수능에서 빠지더라도 학교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이공계열 학과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기하와 벡터를 이수한 학생으로 한정하거나,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근현 교육부 과장은 “2015 교육과정의 취지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서 학습하는 것이다. 수능에서 기하 과목이 제외돼도 이공계열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은 반드시 기하 과목을 이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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