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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프리즘]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반전 마케팅의 힘

중앙일보 2018.02.23 05:00
‘톱스타 OOO의 이상형은 츤데레,’ ‘△△△, 알고 보니 츤데레.’ 요즘 TV 프로그램이나 뉴스 기사, 일상에서도 흔히 나오는 말들이다. 츤데레는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화제의 신조어 2016년 1위, 2017년 2위를 차지한 단어다. 일본 만화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퉁명스럽거나 쌀쌀맞다는 뜻인 '츤츤'(つんつん)과 귀찮게 달라붙는다는 '데레데레'(でれでれ)가 합쳐진 말이다. 무심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섬세하고 속정이 깊은 사람을 일컫는 때 흔히 쓰인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무뚝뚝하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냉정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 말하자면 반전매력의 소유자들이다. 모순적인 성격은 인간적 매력뿐 아니라 남다른 창의성으로도 연결된다. 30년 이상 창의적인 인물들을 연구해온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의 칙센미하이(Csikszentmihalyi) 교수는 ‘그들이 일하는 신비로운 과정을 관찰하며 발견한 공통점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성향들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독선적인 사람이 이따금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구글이 2011년 선보인 광고 ‘소피에게’의 한 장면. 가족애를 주제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 광고는 ‘새드버타이징(sadvertising)’의 효시로 꼽힌다. [사진 인터넷캡처]

구글이 2011년 선보인 광고 ‘소피에게’의 한 장면. 가족애를 주제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 광고는 ‘새드버타이징(sadvertising)’의 효시로 꼽힌다. [사진 인터넷캡처]

반전매력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2011년 ‘소피에게(Dear Sophie)’라는 광고를 선보였는데, 아빠가 딸 소피의 첫 번째 생일, 앞니가 빠진 날, 발레를 처음 배운 날처럼 기억하고 싶은 매 순간을 글과 사진, 동영상으로 기록해 이메일로 보내는 내용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구글이 딱딱한 데이터나 검색 기술이 아닌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광고를 선보였다’며 호평했다. 이 광고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광고, ‘새드버타이징(sadvertising)’의 효시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매년 만우절에는 엉뚱한 장난으로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 솔로들이 이상형을 찾아갈 수 있는 로맨스 지도, 마시면 지능이 향상되는 구글 드링크 등 괴짜 같은 아이디어로 재미를 선사해 만우절 팬클럽까지 확보했다. 2017년에는 네덜란드의 풍차 1만1000개를 하늘로 향하게 해 먹구름을 몰아내는 ‘구글 윈드(Google Wind)’ 프로젝트를 선보였는데, 기상캐스터, 바람 전문가까지 등장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착각할 정도였다. 구글다움(Googliness)은 혁신성과 정확성을 강조하는 고유의 정체성에 애틋함과 위트를 나누는 여유로움이 더해져 완성된다.
영국의 프리미엄 백화점 셀프리지(Selfridges)는 최근 수년간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유망 패션 디자이너를 발굴해 실험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이익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백화점의 진정한 매력은 역동적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정숙함에 있다. 창업자 해리 고든 셀프리지는 1909년 설립 당시 백화점 한편에 ‘침묵의 방(Silence Room)’을 마련했는데, 방문객들이 혼란스러운 쇼핑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고요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영국의 셀프리지 백화점이 만든 침묵의 방. 방문객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해 호평 받았다. [사진 인터넷캡처]

영국의 셀프리지 백화점이 만든 침묵의 방. 방문객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해 호평 받았다. [사진 인터넷캡처]

2013년 셀프리지는 침묵의 방을 부활시켰다. 문명의 방해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발, 휴대폰을 라커에 두고 입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화려한 소비문화와 브랜드의 허상을 되짚어본다는 의미에서 브랜드와 로고를 제거한 리바이스 청바지, 하인즈 케첩 등을 판매하는 ‘조용한 매장(Quiet Shop)’도 오픈했다. 이 제품들은 지금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온라인 경매에 붙여지곤 한다.
 
강하고 냉철한 이미지의 기업도 부드럽고 여린 모습을 보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특히 고객의 어려움과 슬픔에는 깊은 공감을 최대한 진솔하게 표현해야 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을 대표해 사과문을 발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제 아버지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셔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고 말했다. 빈틈없이 속사정을 드러내지 않는 기존 스타일과 다른 모습에 진심을 느꼈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15년 메르스 확산 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직접 나서 신속하게 사과하면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사진 중앙포토]

2015년 메르스 확산 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직접 나서 신속하게 사과하면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사진 중앙포토]

미국 뉴욕주립대 사회심리학자 아서 아론(Arthur Aron) 교수의 실험은 나약함의 표출이 관계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해준다. 처음 만난 사람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같은 얕은 수준의 대화보다 마지막으로 울음을 터뜨렸던 순간, 힘들었던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참여자들이 상대방을 훨씬 가깝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랍게도 어려웠던 경험을 공유한 이들 중 30%는 수십 년간 알고 지낸 지인보다 처음 만난 실험 파트너에게 더 강한 연결감을 느낀다고 대답했고, 이중 결혼에 이른 커플도 나왔다.
최근 불거진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에 콧대 높은 애플은 애플답게 대응했지만, 고객의 손실과 실망을 무시한 고집스럽고 무성의한 모습으로 비쳤다. 고고한 이미지가 강하고 그래서 더 좋아하는 마니아층도 확보한 애플이지만, 한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일 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선두기업이 겪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와 고뇌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더라면 응원의 목소리가 커졌을지 모른다.
 
최근 한국 성인남녀 대상 조사 결과 절반이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답했다. 20대 중에서도 이왕이면 감정을 숨기는 것이 좋다고 한 비중이 50%에 달했다. 그만큼 강인함과 엄숙함을 중시하고 유약함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회라는 의미다. 이따금 진정한 내면을 들킬 줄 아는 츤데레들이 인기를 누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베스트셀러 『취약함의 힘(The Power of Vulnerability)』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취약함을 진실, 용기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완벽한 줄 알았던 사람에게서 의외의 허술한 모습을 발견할 때,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고 호감이 상승하는 것과 같다. 기업도 우월함만을 강조하는 획일적인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 매몰되기보다 가끔은 평소와 다른 어색하거나 쑥스러운 모습을 보여 반전 매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최순화 교수 
동덕여대 국제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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