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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평창올림픽이 남긴 숙제들

중앙일보 2018.02.23 01:47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요즘 청년들의 표현대로 평창올림픽은 한 편의 힙한 드라마다. 땀과 인내로 다져 온 올림픽 스타들은 주경기장에 펄럭이는 국기들만큼이나 다양한 감동 스토리를 빚어내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와 일본 고다이라 나오의 포옹은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에서 연출되던 어색한 악수들보다 깊은 여운을 던져 줬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무대를 압도적으로 지배한 한국계 미국 선수 클로이 김의 자신감과 유창한 우리말은 글로벌 코리아가 뿜는 매력의 한 단면이다. 모두를 놀라게 한 여자 컬링팀, 거침없는 윤성빈, 여자 쇼트트랙팀이 주는 다양한 빛깔의 감동 역시 평창올림픽을 지구촌 드라마로 이끌어 가고 있다.
 

우버와 구글맵 규제로 묶어 놓고
외국인들 평창 즐길 수 있을까
88올림픽이 민주화·산업화 이룬
집단적 자부심 신고식이었다면
평창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젊은 세대가 주류로 부상한 무대

평창올림픽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스포츠가 고리타분한 외교나 정치보다 감동적이고 때론 마법과도 같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핵과 미사일 위협을 거듭하던 북한 정권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외교 공세 역시 이러한 스포츠의 마법에 기대 보려는 계산일 것이다). 늘 정치와 권력 현상을 해석하며 살아가는 정치학자로서 필자는 올림피언들의 감동 드라마는 잠시 접어 두고 경기장 안팎에서 제기되는 우리 정치의 과거와 미래의 과제를 생각해 본다. 올림픽은 바깥 세계에 우리의 활력과 문화적 힘을 보여 주는 무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기도 하기에.
 
첫째, 힙한 올림픽 드라마와 고통스러운 대비를 이루는 과거의 그림자. 모든 올림픽이 그렇듯이 이번 평창올림픽도 개최국의 기술 수준과 문화 수준을 맘껏 과시하는 기회다. 경기장 주변에서 시험 운영 중인 수소차, 개막식에 깜짝 등장한 1218대의 드론과 인면조는 우리의 첨단 기술과 스토리텔링 능력의 증거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올림픽 경기장 주변에서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유령과 힘겹게 싸우고 있기도 하다.
 
장훈칼럼

장훈칼럼

올림픽 경기장 주변을 맴도는 과거의 유령이란 바로 지나친 결정권을 틀어쥔 (준)관료조직의 규제권력과 이에 편승하는 정치권력이다. 이쯤에서 누구나 스켈레톤 경기장에서 벌어진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규정을 어긴 채 스켈레톤 경기장 출입제한구역에 들어섰던 여당 중진 의원의 사고는 낡은 권력의 익숙한 단면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일은 눈에 띄지 않는 데서 조용히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전 발전국가 시대에나 통할 규제권력이 평창과 강릉의 매력 발산 기회를 곳곳에서 가로막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 지금 평창과 강릉 일대를 누비는 수만 명의 올림픽 관광객은 전 세계 어디서나 활용 가능한 구글맵과 우버(공유택시)를 사용할 수 없다. 이들이 우버와 구글맵 없이 강원도 구석구석의 매력을 찾아다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구글맵과 우버는 한국의 관료들에게 막혀 있다. 관료들이 겹겹이 둘러쳐 놓은 규정과 절차의 미로 속에 길을 잃은 우버는 한국에 상륙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 표준들을 외면한 채 세계인을 월정사 전나무길로, 강릉 테라로사 커피로 이끄는 묘안을 짜내기는 어렵다. 이제는 곳곳에서 규제의 병목을 일으키는 관료들과 정치권력이 한 걸음 물러설 때다. 지금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은 우버 없이 길을 헤매고 있는 올림픽 관광객들뿐만이 아니다.
 
둘째, 평창올림픽에서 정치인과 관료조직이 부끄러운 구태를 드러내는 동안 미래 지향의 밝은 흐름도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 젊은 올림픽 대표선수들과 관중이 보여 주는 새로운 흐름은 국가주의의 뚜렷한 퇴조와 자유로운 개인주의의 발산이다. 메달리스트들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대표로서 국가의 명예를 위해 혹은 일본을 누르기 위해 혹은 중국을 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뛰었다”는 국가주의의 외침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선수들 스스로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시험하면서 즐거웠다는 얘기, 메달 색깔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고 그에 만족한다는 얘기 등은 곧 자유로운 개인주의 세대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주류로 떠올랐다는 밝은 증언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불과 보름 전 개막식 날까지도 지구촌이 바라보던 평창올림픽은 북핵 위협, 테러 위험, 무명의 자그마한 스키타운이라는 이미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평창은 자유롭고 거침없는 젊은 한국인, 매력 있는 자연과 정보기술(IT) 문화가 어우러진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극적 반전이 그저 한 편의 올림픽 드라마로 그치게 될지 혹은 우리 민주주의와 평화의 새로운 도약대가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장 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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