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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 서지현 땐 다음날 성명 … 이윤택 땐 7일 걸렸다

중앙일보 2018.02.23 01:16 종합 8면 지면보기
이윤택 연출감독의 성폭력 파문에 이어 공개사과 기자회견까지 연습했다는 논란이 일며 ‘연희단거리패’는 해체 수순을 밝고 있다. 22일 서울 명륜동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 문이 닫혀 있다. [연합뉴스]

이윤택 연출감독의 성폭력 파문에 이어 공개사과 기자회견까지 연습했다는 논란이 일며 ‘연희단거리패’는 해체 수순을 밝고 있다. 22일 서울 명륜동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 문이 닫혀 있다. [연합뉴스]

연출감독 이윤택(66)씨에 대한 연극계의 줄 잇는 성추행·성폭력 폭로에 장시간 입장 발표를 하지 않은 여성단체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같은 진영 인물이라고 침묵했나”
인터넷선 여성단체 행동 비판
단체 측 “왜곡된 주장” 반박

여가부는 피해자 지원 않고
뒤늦게 “미투 용기에 경의”

이씨의 성추행 폭로 글이 처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건 지난 14일이다. 이후 설 연휴(15~18일) 동안 여성단체는 사건과 관련된 어떤 성명도 내지 않았다. 19일 이씨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성관계는 있었으나 강제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발언했다. 이날 SNS에는 ‘사타구니를 만지는 성추행을 당했다’ ‘성폭행을 당해 낙태를 했다’는 피해자들의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기자회견 다음 날인 20일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씨 사건을 거론하며 ‘성적으로 평등한 조직문화가 답이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이어 21일 28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성범죄자 이윤택을 처벌하라! 문제는 성차별적 권력구조다’는 성명서를 냈다. 이씨에 대한 강도 높은 추가 폭로가 잇따르자 오후 늦게 성명을 발표했다. 그것도 처음 폭로 글이 공개되고 7일이 지나서야 여성단체가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을 폭로했을 때와 대비된다.
 
2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이윤택씨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캡처]

2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이윤택씨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캡처]

당시 여성단체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지난달 29일 서 검사가 JTBC 뉴스룸에서 성추행 피해 관련 인터뷰를 한 다음 날인 30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에는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고 철저히 사건을 조사해 가해자와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 2일에는 성폭력 근절 촉구를 위한 검찰총장 면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사건 관계자의 정치 지형에 따라 여성단체가 다른 행동을 취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여성단체들은 이윤택의 이 만행을 보고도 주** 꾹 닫고 침묵을 지키나. 문빠면 무죄냐’(bd******), ‘여성단체들과 진보논객들, 이토록 끔찍한 성추행 사건에 눈치만 보고 있는 걸까요’(jo********)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익명을 원한 법조계 인사는 “개혁의 대상으로 상징되는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서 검사의 폭로에 대해 여성단체가 발 빠르게 움직인 반면 연극계의 더 큰 부조리에 대해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부 의견 조율이 길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21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도 이윤택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세력으로 진보정당·청와대와 함께 여성단체를 지목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한 지부 관계자는 “정부 눈치를 본다는 주장 자체가 왜곡된 시선이다. 대부분의 여성단체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 단체”라며 “성명서를 낸 시점보다 어떤 관점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겠나”라고 강조했다.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이런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여성단체 활동을 중장기적인 호흡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가 한 달째 구경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피해 여성들이 불이익과 사회적 시선을 홀로 감당하고 있지만 정작 여가부는 이들이 겪는 2차 피해에 눈감고 있어서다.
 
이숙진 여가부 차관은 22일 스토킹·데이트 폭력 피해 방지 종합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 자리를 빌려 사회 각 분야에서 피해를 알린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꾸기 위해 피해 사실을 알리고 미투에 참여하신 모든 분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당장 2차 피해에 시달리며 소송비용 등을 걱정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한 문화계 인사는 “소송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막막하다. 여가부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서 검사의 변호인을 맡았던 김재련 변호사는 “지금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료 법률 지원서비스 등이 있는데 여가부에서 피해자에게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알리면 초기 상담부터 소송, 의료 지원 등 종합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원스톱센터가 있어야 한다. 현재 여가부 산하에 여성긴급전화 1366이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다. 전국적으로 센터를 늘려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중열 여가부 대변인은 “27일께 지난해 11월 발표한 공공기관·민간기업 성희롱 종합대책을 보완해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기존의 상담·지원제도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제도가 어떤 것이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사건을 진상조사하고 재발 방지, 피해자 보호를 전담할 정부의 컨트롤타워도 모호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부처별로 개별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검찰청은 대규모 성폭력진상조사단을 꾸렸고, 법무부는 성범죄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서 검사 사건과 함께 검찰·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직권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달부터 신고·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성폭력 예술인에 대한 작품 지원을 배제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위원회 차원에서도 관련 법을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하겠다. 국무총리실 내에 별도의 전담기구를 두도록 제안하는 등의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단체의 미비한 대응이라고 문제 삼으면 자칫 여성단체나 여가부만의 문제로 호도돼 본질적인 ‘강간문화’의 문제가 흐려질 수 있다. 사법부와 정부부처가 머리를 맞대 정책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조한대·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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