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웹소설 비트코인

(11) 스타 탄생

중앙일보 2018.02.23 01:05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릭은 컴퓨터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성스러운 제국을 만드는 황제의 모습을 했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활달한 인물이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옆에 있는 린다는 그의 익살맞은 모습을 보며 웃는다. 컴퓨터에는 릭이 만든 비트코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깔렸었다.

 
“신비스러운 블록체인이여. 신비스러운 비트코인이여.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금단의 에덴동산이여. 여러분, 비트코인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해커들은 물러가세요. 감히 신성한 땅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면 안 됩니다. 해커의 참여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여기에 참여하려는 자들은 성수를 이마에 뿌리고 오세요. 그리고 'b'자를 그려 주세요. 아멘.”

 
그의 주문에 린다는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누구에게나 비트코인을 하사하는 황제이니라. 다만 조건이 있지. 수고하고 짐을 진 자들은 나를 따르라. 노동의 신성함을 모르는 자도 물러서거라. 두들겨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 두들겨서 답을 구하는 자에게는 릭 황제의 금쪽같은 선물이 하사품으로 전달될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문을 연 거래는 기록된다. 기록이 지속해서 바뀌면 참가자들의 거래 장부는 계속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릭은 그 부분에 초점을 두었다. 그가 만든 블록체인은 유인을 기본으로 한다. 일련의 거래나 채굴 행위에 금전적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수학 문제를 풀어 비트코인을 채굴하거나 네트워크 거래의 참가자(노드)로서 거래가 있을 때, 즉 장부를 업데이트할 때 비트코인을 받게 된다.

 
“이 성스러운 만찬에 초대된 빌. 너는 이제 비트코인 세계의 왕관을 받게 된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느니라. 자, 너의 디지털 지갑에 첫 번째 비트코인을 넣어 보자.”

 
우리는 모두 긴장감을 갖고 비트코인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컴퓨터에 깔린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고 ‘1번 노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첫 번째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릭은 그것을 내 전자 지갑에 담아 주었다. 나를 위해 디지털 ‘지갑’을 만들어 생일 선물로 준 릭에게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신기해서 뛸 듯이 기뻐했다. 일확천금을 번 기분이었다. 나와 릭, 린다의 합작품으로 비트코인이란 스타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왔다. 빌이 기쁜 목소리로 말한다.

 
“일단 현재의 비트코인 컴퓨터 네트워크에는 사토시 나카모토만 있는 거야. 당분간은 좀 외로울 거야.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나 하겠니. 사실 그전에도 이런 시도는 있었어. 번번이 실패했으니. 사람들은 뭐 그저 그런 뉴스라고 생각할 거야. 그러나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단 법이잖아. 저번에 네 논문을 보낸 방법을 차용하자. 이번에도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으로 비트코인의 탄생을 알리는 글을 쓰는 거야. 이제 현실의 빌과 가상의 사토시 나카모토는 철저히 분리되어 사는 거야. 네가 반정부 인사로 몰려 FBI나 CIA의 수사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아. 너는 이제 익명으로 약을 파는 인물이 되어야 해.”

 
릭은 내게 비트코인의 가치도 정해서 알리면 좋겠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그러면서 월가에서 주가를 분석할 때 어떻게 하는지를 물었다.

 
“글쎄. 사람들은 주식 시장을 돈 놓고 돈 먹기라고 하지만.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처럼 가치 투자하는 사람도 있지. 그의 이야기를 떠나서 주식시장에서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분석법이 필요하고 적정주가에 대한 나름대로 생각을 가져야 하지. 주식에서는 기본적 분석, 기술적 분석, 수급 분석이 중요해.”

용어사전 > 워런 버핏(Warren Buffett)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의 최고경영자(CEO).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의 최고경영자(CEO).

1930년 미국에서 태어나 증권 세일즈맨인 아버지 아래 성장한 워런 버핏은 콜롬비아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평가투자(value investing)라고도 불리는 과학적 주식투자 방법을 세계금융계에 소개한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1976)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1956년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한때 미국 최고의 갑부 위치까지 올라섰던 워런 버핏은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로 평가받고 있다. 1961년 Dempster Mill Manufacturing Co. 회장이 되었으며, 1965년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Inc.)를 인수했는데, 1967년 소형 보험회사 2개를 매입하면서 투자지주회사로 변모하게 된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 후 Bluechip Stamp, See's Candy, Buffalo News, Geico Insurance 등을 인수했다.
 
워런 버핏은 가치 있는 주식을 발굴해 매입하고 이를 오랫동안 보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신경제와 인터넷 기술주의 주가가 급등할 때 1980년대의 일본처럼 미국 주식이 버블로 인해 터져 버릴 것이라는 버블론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후 인터넷 주와 신경제에 대한 거품론이 확산되고 나스닥 시장이 하락하자, 많은 인터넷 주의 급격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기업이 내재하고 있는 가치만을 따져 투자종목을 선정했던 워런 버핏의 평범한 투자전략이 다시 인정받게 되었다.
 
워런 버핏은 뉴욕에서 2,000km 이상 떨어진 자신의 고향 내브래스카 주 오마하를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주식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는다고 해서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 때나 얼굴을 내밀 뿐 거의 외부 접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오랜만에 일장 연설을 했다. 내 전공이기에 무척 쉬웠다.

 
“기본적 분석이라 함은 현재의 사업구조와 미래 재료의 영향을 고려하는 거야. 그래서 추후 기업이 현금창출을 얼마나 할 수 있는가를 분석하는 거야. 기술적 분석은 차트에 기반을 둔 가격분석인데. 글쎄 이걸 중시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나 나는 참조를 해서 매매를 하지. 수급분석은 사고파는 주체들에 대한 분석을 말해.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주가가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주식시장은 많은 사람이 모여서 거래를 하는 것이고 지극히 이성적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광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

 
릭은 그렇다면 비트코인의 가격은 어떻게 정해야 할 것인지 물었다.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지 않았어. 무엇이든지 수급이 중요하지. 누군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했는데. 그건 웃기는 이야기고. 만약 황금이 돌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아무도 안 믿잖아. 그런데 비트코인을 아무도 안쳐다 본다면 가치는 0이야. 주식의 경우는 회사라는 기초 자산이 있잖아. 그 회사의 현재와 미래가치를 보고 사람들이 판단하는 건데. 이건 나 역시 잘 모르겠어. 국가라면 돈을 찍어 1달러, 10달러, 100달러 뭐 이렇게 하는데. 그리고 국가 간에는 환율이라는 것으로 돈이 교환되잖아. 뭐 굳이 내재 가치를 말한다면 신뢰 아닐까?”

 
“신뢰?”

 
“그것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그 순간 릭이 말한다. 마치 다시 세계를 지배하는 황제의 기분으로 호령하는 듯하다.

 
“빌, 그대에게 전권을 위임하노라. 주식의 작전 세력이 되라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이렇게 멋진 블록체인 기술에서 탄생한 비트코인을 멋진 매력 덩어리로 만들어야 해. 왜냐하면 이건 세상에서 일찍이 있어 보지 못한 혁명의 순간이야. 그리고 이번 비트코인을 만들면서 블록체인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았어. 거기에 대해서는 너에게 나중에 말해줄게. 블록체인은 분명히 지금의 인터넷을 능가하는 기술이 될 거야.”

 
잠시 머뭇거리다가 빌에게 내 생각을 털어놓았다.

 
“음 이건 지금으로써는 솔직히 그 자체가 가치를 창출한다고 말할 수 없어.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해. 최소한 주식의 기본적 분석은 여기에 적용되기 어렵고 수급의 원리가 적용되는 거야. 글쎄, 주식으로 치면 가치주라기보다는 성장주지. 스토리를 만들어 올라가는 주식도 많거든. 가격변동의 결과물로 나타나는 기술적 분석은 주식에는 매우 중요한데 이 경우는 사례가 없으니 그 역시 적용하기는 어려워. 결국 인기를 먹고 사는 대상이 될 운명인데.”

 
수급분석. 가상화폐를 사려는 수요와 공급의 분석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생각에 임의로 가치를 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블랙박스처럼 아무도 모르는 것이리라.

 
생각을 조금 더 했으나 도무지 어떤 가격으로 해야 할지 참고할 기준이 없었다. 보상의 개념으로 처음에는 채굴이 쉽다는 릭의 말만 귓전에 맴돌았다. 지급수단이고 하나의 가상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결제 수단이라면 처음부터 높은 가격에서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물가안정도 고려하고 2100만개란 숫자도 생각하여 낮은 금액으로 정하고 싶었다. 릭의 의견을 따라 최소 단위는 내 이름을 딴 1 사토시로 하였다. 1사토시는 0.00000001 BTC(비트코인의 단위)이다.

 
“음. 너무 비싸면 그러니. 1BTC를 1센트 미만으로 하자. 좀 더 생각해 보고 정확한 숫자를 정할게. 1센트도 안 된다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야. 중요한 것은 이것을 우리가 창조하였다는 거야. 그리고 이 지갑에 들어 있는 것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것이야. 우리가 만든 아나키스트의 세계. 아무런 계급도 없는 평등한 세계시민의 번영을 위한 세계. 그 세계로 내가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은 아주 감사한 일이야. 이 축복은 다 너희 부부의 덕택이다.”

 
릭 역시 가격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고 내가 정한 대로 따르려고 했다. 그리고 보충 설명을 했다.

 
“빌, 현재 비트코인을 가진 사람은 너뿐이야. 우리는 나중에 참여할 거야. 네가 전송할 사람을 찾아야 해. 그게 너의 첫 번째 미션이야. 현재는 지불 수단으로 전혀 쓸 수 없기에 가격이 의미는 없어, 앞으로가 중요해. 음, 전에 말했던 것처럼 코인의 양은 계속 줄어드는 식으로 발급이 된다. 처음 4년 동안은 10분당 50개. 그 후로는 10분당 25개, 2140년에는 공급량이 0이 되는 형식이야. 처음에 누가 이것을 돈이라 생각하겠니. 우리가 채굴을 유도해야지. 처음에는 네가 채굴을 할 수밖에 없어,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게 처음에는 어렵지 않아. 네 컴퓨터로 채굴이 가능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비트코인이 인기를 얻는다면 채굴이 어려워지지. 사람들이 우리 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현재로써는 가장 중요해. 신뢰의 바다로 생각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고개를 끄덕였다. 릭 부부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포도주를 들이켜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헤어질 무렵 릭이 말했다.



“자, 여기서 블록을 캐는 거야. 일단 캐서 너의 지갑에 담아둬. 창세기가 생각나네. 제네시스(Genesis) 블록을 만드는 거야. 50개 비트코인 ‘블록’을 만드는 거야. 재미있을 거야. 황금을 처음 캐는 빌. 그대는 신뢰로 가는 약속의 땅에 제대로 착지해야 한다네. 비트코인을 널리 알릴 의무를 너에게 부여하마. 너 이외의 사람을 네트워크에 초대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하도록 기도하마.”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릭의 지시로 제네시스 블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프린트하였다. 릭네 부부와 함께 하는 작업이라 재미가 있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 왔다. 그들과 헤어지는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이제 내게는 비트코인의 왕국을 건설할 의무가 주어졌다.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속세에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땅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6일 동안 프로그램을 돌리고 함수를 풀며 10분 단위로 4만3000개 수준의 비트코인을 캤다. 혹시 이것이 황금 덩어리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릭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중개인을 거치지 않는 지급결제 수단이라는 이상을 향하여 한발 한발 나아갈 것이다. 비트코인을 채굴해서 계정에 적립하는 것은 컴퓨터에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실행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채굴에 너무 열중한 것이었나? 이상한 꿈을 꾸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전 세계의 유저들이 서로 접속하려고 난리였다. 그들은 '중앙은행을 무너뜨려라'는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채굴을 위해 상당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특수 창고같이 생긴 곳에 대형 컴퓨터가 여럿 있었다. 누군가 비싼 전문 장비라고 소리를 쳤다. 꿈에서 깬 후 창밖을 보다 산책을 한다. 아침 공기가 매우 차다. 정신을 차리고 집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