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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 시계부터 팬티까지…아이스링크에 날아든 선물들

중앙일보 2018.02.23 00:52
 
지난 16일 평창 겨울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이 펼쳐진 강릉 아이스 아레나.  
일본의 하뉴 유즈루 선수가 연기를 마치는 순간 객석에서 수많은 ‘곰돌이 푸’ 인형이 아이스링크로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노란색으로 물든 아이스링크. 외신들은 “하뉴 유즈루가 곰돌이 푸의 비를 내리게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피겨선수 김연아 현역시절에도 볼 수 있었던 익숙한 풍경이다. 2000년대 말부터 각종 국제대회를 석권한 김연아 선수 경기 후에 꽃과 인형 선물이 아이스링크를 메우곤 했다.   
현역 선수시절 경기 후 팬들이 던져준 꽃과 인형선물을 줍고 있는 김연아. 선물들은 대부분 비닐포장된 것들이다. [중앙포토]

현역 선수시절 경기 후 팬들이 던져준 꽃과 인형선물을 줍고 있는 김연아. 선물들은 대부분 비닐포장된 것들이다. [중앙포토]

경기장이 선물로 메워지는 모습은 다른 종목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다. 운동경기 이전에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선수들의 예술공연에 팬들이 찬사와 경의를 표할 수 있도록 한 피겨스케이팅만의 독특한 문화다.  
 
미니어처 술병, 루이뷔통 가방도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받은 선물들은 종종 SNS 등을 타고 소개되곤 한다.
션 래빗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래빗 인스타그램]

션 래빗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래빗 인스타그램]

미국 피겨선수인 션 래빗은 올 시즌 싱글 프로그램 곡으로 더 챔프스의 명곡 ‘테킬라’를 사용했다. 그런데 지난 1월 쇼트 프로그램 연기를 마친 그에게 특별한 선물이 전달됐다. 뽁뽁이로 단단하게 포장된 12병들이 테킬라 미니어처였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테킬라 병 사진을 올렸다.  
션 래빗이 트위터에 올린 테킬라 미니어처 사진.

션 래빗이 트위터에 올린 테킬라 미니어처 사진.

 
1984년 사라예보 겨울 올림픽과 88년 캘거리 겨울 올림픽을 2연패 한 옛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는 팬들이 던져준 선물더미에서 명품 롤렉스 손목시계를 발견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남자 피겨 동메달리스트가 된 제프리 버틀(캐나다)는 루이뷔통 가방을 받았고, 88년 캘거리 올림픽 남자 피겨 동메달리스트인 데비 토마스(미국)에겐 경기 후 도미노 피자 박스가 날아들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1980년대 세계 피겨를 석권했던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 아름다운 외모, 여기에 고난도 기술이 더해져 당시 피겨 스케이팅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중앙포토]

1980년대 세계 피겨를 석권했던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 아름다운 외모, 여기에 고난도 기술이 더해져 당시 피겨 스케이팅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중앙포토]

 
유희왕 카드 세트 직접 챙긴 남자선수
지난해 올림픽 선발전에 출전한 일본의 다나카 게이지 선수. 유희왕 카드세트(원 안)를 들고 있다.

지난해 올림픽 선발전에 출전한 일본의 다나카 게이지 선수. 유희왕 카드세트(원 안)를 들고 있다.

유희왕 카드 세트

유희왕 카드 세트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 일본대표로 남자피겨 싱글에 출전한 다나카 게이지 선수도 특별한 선물을 받은 선수 중 한 사람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일본의 올림픽 대표선수 최종 선발전에서 연기를 마친 그를 향해 스탠드에서 파란 상자 하나가 날아왔다. 파란 박스의 정체는 유희왕카드 스페셜세트. 평소 링크에 던져지는 선물은 플라워걸 혹은 스위퍼로 불리는 어린 스케이터들이 회수한다. 그런데 파란색 박스를 발견한 다나카 선수는 달려가 직접 선물을 챙겼다. 이 장면을 목격한 일부 팬들 사이에선 “다나카 선수가 유희왕 듀얼리스트(카드게임 애호가)임에 틀림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팬레터도 흔한 선물 중 하나다. 하지만 간혹 대담한 선물을 던지는 팬들도 있다.
2014년 소치올림픽 남자 싱글 은메달리스트이자 이번 평창대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패트릭 챈(캐나다)은 여성용 레이스 팬티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캐나다 ‘CBS 스포츠’에 따르면 일부 팬들이 ‘패트릭에게 팬티를 보내자’는 캠페인을 펼친 적이 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잠시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였다. 당시 패트릭 챈은 “어쩌면 판정의 새로운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 내 연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던져주신 (팬티) 개수를 보면 알 수 있다”며 팬들의 응원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창올림픽 남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에서 종합 8위에 오른 패트릭 챈.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남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에서 종합 8위에 오른 패트릭 챈. [연합뉴스]

 
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과 98년 나가노 올림픽 남자 싱글 은메달에 빛난 엘비스 스토이코(캐나다)도 미국 ESPN과의 인터뷰에서 “경기 후 아이스 링크에 속옷이 날아온 적이 있다. 쇼트 프로그램을 마치자 팬티가 링크 위에 떨어졌는데, 다음날 프리 연기 후엔 브래지어가 떨어져 있었다. 속옷엔 이름과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21일 평창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을 마치고 인형을 집어들고 인사하는 메드베데바. [연합뉴스]

21일 평창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을 마치고 인형을 집어들고 인사하는 메드베데바. [연합뉴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쇼트 프로그램을 마친 뒤 팬이 던져준 인형 하나를 집어 들고 링크 밖으로 나간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그는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갈라쇼에서 애니메이션 주인공 ‘세일러문’으로 변신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메드베데바는 "그러자 일본 팬들이 세일러문 관련 용품들을 보내왔다"며 자신의 SNS에 인증샷을 올렸다.  
일본팬들을 위해 세일러문 복장으로 갈라쇼를 한 메드베데바. [베드베데바 인스타그램]

일본팬들을 위해 세일러문 복장으로 갈라쇼를 한 메드베데바. [베드베데바 인스타그램]

 
그렇다면 아이스링크 위에 던져진 수많은 인형은 어디로 보내질까. 하뉴 선수는 경기가 열린 지역의 어린이 관련 시설 등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다른 선수들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선물을 제외하고는 기부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제이슨 브라운 선수는 팬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매번 도널드 맥도널드 하우스에 기부하고 있다.  
 
자신이 받은 인형 선물들을 맥도날드 하우스에 기부하고 있는 미국의 제이슨 브라운 선수. [브라운 인스타그램]

자신이 받은 인형 선물들을 맥도날드 하우스에 기부하고 있는 미국의 제이슨 브라운 선수. [브라운 인스타그램]

9.11 직후엔 미국서 꽃다발 선물 금지하기도 
스타에게 보내는 적극적인 팬심도 좋지만 링크에 선물을 던질 때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링크가 훼손되지 않도록 꽃다발이나 인형처럼 가볍고 표면이 부드러운 선물을 골라야 하며 아이스링크에 꽃잎이나 선물 장식 같은 부속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투병한 비닐로 완전히 봉해진 것만 던져야 한다. 꽃잎 등이 아이스링크에 떨어지면 곧이어 연기하는 선수들에게 방해가 되고, 때론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어린 플라워걸들이 치우기 버거운 큰 선물도 링크에 날아들곤 한다.

때론 어린 플라워걸들이 치우기 버거운 큰 선물도 링크에 날아들곤 한다.

 
실제로 미국 피겨스케이팅협회(USFSA)는 1988년 “아이스링크는 아름다운 꽃밭이기 이전에 스포츠 경기가 이뤄지는 경쟁의 장”이라며 꽃을 던지는 행위를 가급적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USFSA는 2001년에도 9.11 테러와 잇단 탄저균 사건이 나오자 경기장에 꽃 반입을 금지시켰다. 당시 작은 동물 인형은 검사를 마친 것에 한해 링크로 던질 수 있도록 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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